[스페셜2]
[특집] ‘12·12 군사 반란은 쉽게 재현되지 않았다’, <서울의 봄> 제작기 ①
2023-12-08
글 : 임수연
글 : 이유채
이모개 촬영감독, 이성환 조명감독, 장근영 미술감독, 정재훈 VFX 슈퍼바이저, 황효균 CELL 대표가 말하는 <서울의 봄> 제작기

일촉즉발의 밤, 그 어둠의 공기를 담아

<서울의 봄>은 1979년 12월12일로 돌아가 그날의 분위기를 재현하고자 하는 영화다. 그렇기에 <헌트> 같은 장르영화가 되어서도 <아수라>처럼 김성수 감독의 개성이 녹아들어서도 안됐다. 이모개 촬영감독은 “김성수 감독에게 <서울의 봄>은 이미지가 중요하지 않은 영화”였다고 설명한다. “조금 과장해서 말하면 김 감독은 다른 감독보다 레퍼런스 이미지를 100배 많이 준비하는 분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하나도 없었다.” 대신 10·26 사태부터 12·12 군사반란까지 당시 상황을 담은 몇권의 책이 길잡이가 됐다. 박정희 전 대통령 사망 당시 실제 뉴스에 배우들이 연기한 허구의 영상을 이어 붙인 오프닝 시퀀스는 당시 시대상을 재현하기 위해 필름 촬영까지 염두에 두기도 했었다. 몇 차례 등장하는 총격 신도 액션영화처럼 멋지게 연출하기보다는 “이 상황이 리얼하게 느껴지게끔” 만드는 것이 관건이었다.

이성환 조명감독은 “1979년 12월12일, 그날의 공기를 한번 담아보자”라고 의기투합한 스탭들과 함께 레퍼런스를 공부하기 시작했다. “시대와 사건에 관한 영상이나 사진이 상당히 많이 남아 있었다. 그것들을 찾아보면서 해의 각도, 빛의 광질까지 똑같이 맞춰서 재현하고자 노력했다. 일반적인 영화 작업에서 쓰는 영화용 조명, 전체를 조망하는 라이트는 배제하려고 했다. 실제 현장에서는 자동차 헤드라이트, 가로등, 실내등 등 실존하는 프랙티컬 라이트를 주로 활용했다.”

<마약왕> <남산의 부장들>을 작업한 정재훈 VFX 슈퍼바이저는 <서울의 봄>으로 다시금 1970년 말을 배경으로 한 작품을 맡았다. “시기랑 장소가 특정되기 때문에 고증을 아예 피해 갈 수는 없고, 그렇다고 해서 고증에 집착하면 한계가 생기니 그 중간쯤을 잡아달라”는 김성수 감독의 어려운 요청을 항상 염두에 두고 전체 작업을 컨트롤했다.

진압군과 반란군의 대비

<서울의 봄>은 141분 러닝타임 동안 수십명의 인물이 가진 욕망과 이해관계를 엮어내는 영화다. 하룻밤 사이에 벌어지는 일을 한정된 공간에서 담아내는 데다 비슷한 군복을 입고 있으니 누가 쿠데타를 일으키는 반란군이고 누가 이를 막고자 하는 진압군인지 헷갈릴 수 있다. 이성환 조명감독은 “반란군의 공간은 야욕 있는 악당들이 몰려 있는 소굴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 욕망을 강조하는 어둡고 붉은빛을 썼다. 그들이 바퀴벌레처럼 보이길 원해서 얼굴을 기름지고 번들번들하게 보이도록 라이팅을 했다. 반면 수도경비사령관실과 B2 벙커와 같은 진압군의 공간은 칙칙하고 외로운 느낌이 강조되도록 푸른빛을 썼다”. 포스트프로덕션 단계에서 수정된 신도 있다. 이모개 촬영감독은 “고증을 따라 찍다 보니 국무총리 공관과 육군참모총장 공관 정문이 똑같아 보이더라. 그래서 전자는 차가운 화이트톤으로, 후자는 옐로톤으로 바꿔서 서로 다른 편으로 보이게끔 했다”는 비하인드를 들려줬다.

탐욕의 공간, 명분의 공간

김성수 감독은 12·12 사태를 “탐욕과 명분의 싸움”으로 바라보았다. 욕망이 더 큰 욕망을 불러오면서 세력을 키워나갔고, 명분을 지키고자 한 사람들은 하나둘씩 떠나 결국 소수만 남게 된다. ‘탐욕’과 ‘명분’은 <서울의 봄>에 등장하는 공간을 구분하는 키워드이기도 하다. 장근영 미술감독은 70~80년대 당시 뉴스와 사진 기록물을 리서치하며 ‘탐욕’과 ‘명분’이란 대명제를 표현할 수 있는 이미지를 만들어나갔다. “벽체 색깔과 질감 그리고 조명과 소품이 대비되게끔 매칭했다. 30경비단은 대표적인 탐욕의 공간이다. 굉장히 붉은 우드톤을 써서 탐욕의 의미를 과감하게 부여했다. 천장에 있는 굵은 몰딩과 격자 패턴은 깊은 욕망을 보여준다. 통신 보안실 유리를 한색으로 설정한 것도 욕망을 표현하기 위해서다. 수경사는 따뜻한 우드와 앰버톤을 집어넣되 이태신(정우성)이 고립된 느낌을 주기 위해 유리벽으로 공간을 나누었다.” 육군본부 B2 벙커는 영화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세트 중 하나지만 탐욕과 명분보다는 형식적이고 어중간한 권위를 보여주는 데 집중했다. 상단에 검은 현판을 배치해 위에서 아래로 짓누르는 느낌을 표현하고자 했다. 진압군의 뜻이 하나로 모이지 못하고 결국 12·12 사태를 막는 데 실패한 맥락을 보여주는 장치 중 하나다. ‘명분의 공간’에 해당하지만 의도적으로 반대의 비주얼로 세팅된 공간도 있다. 공수혁 소장(정만식)을 마지막까지 지키다 오진호 소령(정해인)이 목숨을 잃는 특전사령관실이다. 장근영 미술감독은 “이곳에서 벌어진 사건이 무척 무겁게 다가왔다. 명분은 부대의 마크나 대치하게 될 사람들과 찍은 사진으로 보여주되 가장 어두운 우드색을 써서 흑색에 가깝게 표현했다”고 설명했다.

전두광과 이태신의 첫 만남

전두광(황정민)과 이태신(정우성)의 첫 만남은 긴 복도를 자랑하는 조선대학교 본관 1층에서 촬영했다. 정재훈 VFX 슈퍼바이저는 작업하기 가장 까다로웠던 신으로 주저 없이 이 복도 신을 꼽았다. “창이 여러 개 나 있는 복도를 두 인물이 걸어가면서 대화를 하다 보니 머리에 닿는 빛들이 시시각각으로 변했다. 그 빛을 고르게 잡아주는 것이 중요했다.” 이성환 조명감독 역시 이 신의 촬영을 앞두고 고민이 많았다. “굉장히 영화적인 신”이라고 판단한 그는 “첫 만남의 텐션이 느껴지도록 기본적으로 창밖에서 인공조명을 많이 썼다. 전두광이 향하는 복도 끝은 창문을 다 막아서 어둡게 처리했고, 반대로 이태신이 향하는 복도 끝은 강한 햇살이 들어오게 처리해” 강한 대비를 주었다.

무리를 휘젓는 전두광, 홀로 움직이는 이태신

이태신은 전형적인 슈퍼히어로라기보다는 ‘진짜 군인’의 이상향에 가까운 캐릭터다. 다만 그처럼 올곧게 신념을 지키며 신군부에 맞서는 인물이 거의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극 내내 그는 외롭게 보인다. 이모개 촬영감독은 “기본적으로 악당이 더 많이 나오는 영화에서 이태신은 관객이 거의 유일하게 마음을 줄 수 있는 캐릭터”라고 설명했다. 그래서 전두광과 달리 사람들로부터 고립된 상황을 강조하면서 관객이 그를 더 응원하고 지지하고 싶게끔 만들었다. “전두광은 무리 속에서 사람들을 휘젓고 다니는 컷이 많다. 반면 이태신은 사람들과 멀리 떨어져 혼자 서 있는 모습을 많이 담았다. 주변에 있던 사람이 하나씩 사라지면서 그의 외로움이 더욱 부각된다.” 전두광과 이태신의 이미지는 사적인 공간에서도 대비된다. 가령 전두광 집의 난로는 검정색이지만 이태신의 집은 따뜻한 초록색으로 배치했다. 이태신과 아내가 함께 밥을 먹는 신도 따뜻하게 연출됐다. “밥 먹을 때 창문에 서린 성에, 주전자의 김은 모두 VFX로 추가된 것”(정재훈 VFX 슈퍼바이저)이다.

행주대교 위 외롭게 선 이태신

서울로 진입하는 2공수를 막기 위해 이태신이 혈혈단신 행주대교를 막아서는 시퀀스는 구미에 있는 2차선 다리에서 촬영했다. 이성환 조명감독은 홀로 선 이태신의 심정을 분명하게 표현하고자 했다. “그 직선 길에서 이태신이 할 수 있는 선택은 압박 아니면 후퇴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가 물러서거나 칠흑 같은 강으로 뛰어내릴 인물은 아니지 않나. 어디로도 갈 데가 없는 그의 외로움을 드러내고 싶었다. 보통 강 신 작업을 할 때는 강이 어느 정도 보이도록 라이팅을 만드는데 이번 영화에서는 그러고 싶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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