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특집] ‘전두환이 아닌 전두광을 만들어라’, <서울의 봄> 제작기 ②
2023-12-08
글 : 임수연
글 : 이유채
이모개 촬영감독, 이성환 조명감독, 장근영 미술감독, 정재훈 VFX 슈퍼바이저, 황효균 CELL 대표가 말하는 <서울의 봄> 제작기

세종로를 가로지르는 바리케이드

반란군과 진압군이 마지막으로 대치하는 세종로 시퀀스는 겹겹이 쌓인 바리케이드로 두 진영을 가르는 거대한 벽을 표현한다. 김성수 감독이 프리프로덕션 단계부터 구상해왔던 결정적 이미지다. 이 시퀀스는 광양시에서 부지만 빌린 뒤 아스팔트를 깔고 벽을 세워서 작업했다. 대부분의 차는 CG로 작업한 결과물이다. 강조되어 잡히는 이순신 동상 역시 모두 CG로 만들었다. 새벽 시간대라 이순신 장군의 얼굴이 안 보이는 게 맞지만 정재훈 VFX 슈퍼바이저는 “나라를 지키러 가는 이태신의 심정이 장군의 얼굴에서 느껴지길 원한 감독님의 의도”에 맞춰 얼굴 윤곽이 제대로 보이도록 밝기를 조절했다. 수도경비사령관 지위를 박탈당한 이태신이 반란군을 향해 홀로 바리케이드를 넘어가는 신에서는 “불가능할 것 같으면서도 결국 극적으로 넘어가는 느낌이 살도록” 바리케이드와 철조망의 개수를 늘려 프레임을 꽉꽉 채웠다.

이태신은 <비트>처럼, 하나회는 <아수라>처럼

“<서울의 봄> 편집본을 처음 봤을 때 ‘<비트>와 <아수라>의 장점이 잘 만났다’고 생각했다.” 이모개 촬영감독에 따르면, 이태신을 바라보는 시선이 <비트>와 유사하다면 전두광을 중심으로 한 하나회는 <아수라>의 난장을 연상시킨다. “김성수 감독은 인물들이 대화할 때 말의 내용보다 표정이 중요하다는 얘기를 많이 했다. <아수라> 역시 말다툼을 할 때 파생되는 감정과 헤게모니 싸움이 핵심이 되는 영화다.” 김성수 감독과 이모개 촬영감독이 함께 <아수라>를 찍었던 경험은 <서울의 봄>에서 전화 통화만으로도 갈등을 고조시키는 긴장감을 만드는 토대가 됐다.

전두광의 위화감을 피하지 않았다

누군가는 우려한다. ‘그분’을 모티브로 한 캐릭터가 주인공인 영화를 141분 동안 보는 것은 너무 고통스럽지 않겠냐고. 하지만 <서울의 봄>은 오히려 클로즈업을 피하지 않고 이용하는 길을 선택했다. 이모개 촬영감독은 “영화를 재미있게 만드는 사건들은 전두광이 있는 반란군에서 주로 발생한다”는 점을 언급했다. “그들의 속내와 욕망을 거리를 두지 않고 오히려 밀착해서 찍으려고 했다. 전두광이 빠른 결단을 내리는 순간을 놓치지 않고 담아냈다. 원래 악당은 영화의 재미를 위해 기능적인 역할을 하지 않나. 그의 외모가 주는 위화감도 영화를 위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이성환 조명감독은 전두광의 정면이 처음 드러나는 클로즈업 신을 촬영할 때 생각해둔 컨셉을 정확히 기억했다. “호아킨 피닉스의 조커처럼 보이길 원했다. 그래서 역광을 받아 얼굴이 잘 안 보이게 처리했다. 그랬을 때 앞으로 관객이 이 인물을 궁금해할 거라 판단했다.” 전두광이 “빛 앞에 나와야 할 때랑 숨어야 할 때를 너무나 정확하게 알고 있는 캐릭터라 그에 맞춰 조명도 때로는 직설적으로 때로는 적나라하게 간 측면이 있다”.

전두환이 아닌 전두광을 만들어라

<서울의 봄> 예고편이 공개되자마자 가장 화제를 모은 것은 ‘전두환을 삼킨’ 황정민의 분장과 연기였다. 배우가 연기를 위해 진짜 머리를 민 게 아니냐는 추측도 있었지만 다행히(?) 이는 특수분장의 힘이다. 황효균 CELL 대표에 따르면 전두광의 비주얼은 콧망울을 붙여서 코평수를 넓히고 눈썹부터 시작해 일회용 실리콘을 씌운 후 다시 숱이 적은 가발을 붙여 만든 결과물이다. “배우들이 대사를 치거나 감정을 잡을 때 눈썹과 이마에 주름이 생긴다. 두꺼운 실리콘을 씌우면 자연스러운 표정이 나올 수 없다. 그래서 배우의 이마 주름 위치와 숫자에 맞춰 실리콘을 얇게 제작했다.” 중요한 것은 배우가 표현하는 것은 전두광 캐릭터이지 실제 전두환은 아니라는 점이다. 실제 인물을 연상시킬 수 있는 일부 특징을 가져가되 배우 황정민의 얼굴이 완전히 사라져서는 안됐다. 특수분장이 필요한 촬영은 총 29회차. 환정민이 전두광 캐릭터로 변신하는 데 소요된 시간은 평균 2시간30분 정도였다. 정재훈 VFX 슈퍼바이저는 김성수 감독이 첫 만남에 “이 영화는 관객들이 전두광의 머리를 가발이라고 생각하는 순간 끝이다”라고 강조한 만큼 전두광의 헤어 리터치에 공을 쏟았다. 각오하고 들어갔지만 주인공이다 보니 컷 수가 워낙 많아 힘에 부치기도 했다. “뾰루지 하나까지 일일이 지워가면서 전두광이 나오는 대부분의 컷을 리터치했다.”

욕망을 배설하는 화장실

화장실은 가장 원초적인 욕망을 대변한다. <서울의 봄>에서 두번 등장하는, 변기가 빼곡한 남자 화장실은 전두광의 추악한 권력욕을 상징한다. 장근영 미술감독은 “공간의 깊이는 캐릭터가 가진 욕망의 그것을 보여줄 수 있다. 의도적으로 깊숙하게 들어가는 이미지로 표현했다”고 세트를 설명한다. 정재훈 VFX 슈퍼바이저는 전두광이 소변 보는 컷을 특히 신경 썼다. “감독님께서 계산한 물줄기의 형태와 양을 정확하게 구현해내야 했다. 그래서 팀원들이 물병에 물을 넣어서 쏴보는 테스트를 수없이 반복했다. 화장실에서 테스트를 하다가 감독님을 만난 팀원들의 말에 따르면 그렇게까지 열심히 하는 모습에 감독님께서 감동을 받으셨다고 하더라. (웃음)”

가로등 불빛 하나도 놓치지 않고

<서울의 봄>의 디테일은 스치듯 지나가는 가로등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정재훈 VFX 슈퍼바이저는 복사, 붙여넣기 식의 CG를 절대 용납하지 않는 김성수 감독의 집념에 맞춰 “등장하는 모든 등의 밝기, 모양, 크기, 색깔에 미세하게 차이를 두고 다 다르게 보이게끔 했다. 자동차 헤드라이트의 광량 역시 마찬가지였다. 힘들었지만 그렇게 작업하는 게 맞다는 걸 배웠다. 세상에 똑같은 게 어디 있겠나.” 창문 너머로 보이는 70년대 한국의 모습을 실제처럼 구현하는 데에도 신경을 많이 썼다. “전두광과 노태건(박해준)이 대화하는 보안사 너머의 배경은 실제 경복궁과 비슷한 위치에서 찍었다. 전두광이 정상호 총장을 찾아가는 신에서 창문 너머의 배경을 찍을 때는 아예 화이트를 대놓고 찍었다. 원래 CG를 넣을 때는 그린이나 블루스크린을 대는데 아무래도 색깔이 묻다 보니 부자연스러운 느낌이 있어서 화이트로 갔다.”

정재훈 VFX 슈퍼바이저가 꼽는 최고의 디테일 신은 한남슈퍼 신이다. “이태신이 한남동 공관촌에 택시를 타고 들어올 때 보면 한남슈퍼라는 마켓이 하나 잡힌다. 감독님의 유년 시절에 실제로 있던 곳이다. 그걸 똑같이 재현하고 싶었다. 그 슈퍼 사진을 구하려고 한남초등학교 동창회 회장님에게까지 연락했지만 결국 못 구했다. 레퍼런스는 없어도 최선을 다했는데 감독님이 보시자마자 ‘저거는 진짜다’, 그렇게 말씀해주셨다. 정말 기뻤다.”

김성수 감독의 카메오 출연

<서울의 봄>에서는 김성수 감독을 볼 수 있다. 12·12 사태 당시 19살이었던 김성수 감독은 한남동 육군참모총장 공관쪽으로 향하는 장갑차를 보기 위해 군인들이 지키고 선 육교에 올라갔다가 총소리를 들었다. 감독의 실화를 인상 깊게 들은 정재훈 VFX 슈퍼바이저는 소년 김성수를 모델로 한 캐릭터를 극에 넣었다. “도망 나온 국방장관(김의성)이 택시를 잡는 신이 있다. 그 신 위쪽을 보면 시민 세명이 못 건너가도록 군인들이 막고 선 고가가 있다. 자세히 보면 그 시민 중 한명이 군인과 대화하고 있는데, 이건 언젠가 김성수 감독님께 들었던 감독님의 소년 시절 기억을 재현한 거다. 나중에 감독님께서 아시고는 정말 만족해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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