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타]
[인터뷰] 진퇴양난의 모성, <스위트홈> 시즌2 이시영
2023-12-20
글 : 정재현
사진 : 최성열

<스위트홈> 시즌1에서 서이경(이시영)이 보여준 짜릿한 액션과 애통한 눈물을 기억하는 시청자라면, <스위트홈> 시즌2의 이경이 반가운 동시에 낯설 것이다. 그린홈 아파트를 떠나 군대에 입대한 이경은 배 속의 아이와 함께 남편 상원을 찾기 위해 밤섬 특수재난기지로 향한다. 여의치 못한 상황에서 출산까지 하게 된 이경은 끔찍한 세상에 태어난 자신의 분신이 낯설고 또 두렵다. 부모만이 줄 수 있는 사랑의 기회가 이경에게는 허락되지 않는다. 이경은 황폐한 아포칼립스만큼이나 피폐한 마음을 애써 눌러둔 채 언제나 그랬듯 고독하고 묵묵하게 싸운다. 눈앞에 도사린 괴물과도, 가슴속에 똬리 튼 죄책감과도.

- 누구보다 <스위트홈> 시즌2를 기다린 것으로 안다. 시즌2와 3의 제작 확정 소식이 들렸을 때 어떤 기분이었나.

= 이경이 소화해야 하는 감정의 폭이 깊고 어려워 겁이 나긴 했다. 다시 <스위트홈>의 세계로 들어가기 전 이응복 감독님의 얼굴을 뵙고 축하도 할 겸 미팅을 가졌는데, 감독님께서 배우 한명 한명의 의견을 모두 들어주셨다. 감독님이 내게 궁금해하신 점은 이경의 모성이었다. 감독님이 엄마는 아니다 보니 아이를 가진 엄마의 입장이 궁금하셨던 것 같다. 감독님과 한참 대화를 나누었는데 새벽 5시가 되어도 이야기가 끝나지 않았다. 그래서 감독님이 “시영, 네가 생각하는 걸 알려줘”라며 숙제를 주셨다. 이 숙제는 배우로서 나의 해석을 기반으로 캐릭터가 풍성해질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감독님이 내가 해온 숙제를 이경 캐릭터에 많이 반영해주셨다.

- 시즌1 속 이경의 마지막 대사인 “스스로 살아남아요, 그런 세상이니까”가 많이 회자됐다. 코로나19가 확산되던 시점에 시청자들에게 큰 인상을 남겼으며, 시즌1과 시즌2를 잇는 대사기도 하다.

= 이경이 해줄 수 있는 최선의 응원이다. 세상이 흉흉하기 때문에 눈물이나 감정에 호소하지 않고 냉정하게 조언하지만, 그 속엔 이경의 따뜻한 진심이 담겨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시즌2에서는 이경이 자기의 응원에 부응하지 못하는 상황에 놓이지만 말이다. 시즌1의 촬영이 95% 정도 끝났을 때 코로나19 팬데믹이 시작됐다. 그래서 우리끼리 “독감 같은 게 돈다는데?”라고 이야기했던 기억이 난다.

- 시즌1 당시 이경을 <스위트홈>의 세계관을 확장해주는 캐릭터라 명쾌하게 요약한 바 있다. 이시영이 정리하는 시즌2의 서이경은 어떤가.

= 시즌3까지 이경을 관통하는 주제는 ‘엄마가 된 이경’이다. 홀로 분투하던 이경의 세상에 아이가 들어오며 다른 차원의 고난과 역경이 생겼다. 더구나 이경이 괴물로 변하며 시즌2가 끝나기 때문에 시즌3 속 엄마 이경은 또 다를 것이다.

- 이경의 모성을 전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 3화의 출산 시퀀스다. 상징적인 장면이지만, 배우에겐 설렘과 부담을 동시에 주었을 듯한데.

= 그 신이 <스위트홈> 시즌2의 전체 첫 촬영이었다. 힘든 신을 먼저 찍어야 마음이 놓일 것이라는 조언도 있었지만, 현실적으로 빙판 위에서 찍어야 하기 때문에 날이 따뜻해지기 전(<스위트홈> 시즌2의 첫 촬영은 2월 말 이루어졌다.-편집자) 처음으로 찍을 수밖에 없었다. 빙판에서 바지를 입고 출산하는 걸 다른 영화나 드라마에서 본 일이 없다. 그런 장면을 세상에 남길 수 있다는 것에 정말 감사했다.

- 이경의 주요한 감정적 동인인 모성에 관해 다각도로 고민한 흔적이 연기에 고스란히 드러난다.

= 이경은 내가 낳은 아이가 세상에 해가 될 수도 있는 현실에 막중한 책임감을 느꼈을 것이다. 사실 시즌1에서 이경이 임신 사실을 알았을 때, 배 속 아이를 어떻게 키우겠다는 이경만의 계획이 있었다. 이경은 아이의 욕망을 거세한 채 양육하기로 결심했다. 엄마로서 사랑을 주면 아이에게 감정과 욕망이 생길 테니 감정 없이 아이를 키우고 ‘엄마’라고 부르는 것도 금지한 채 오직 생존의 법도만 가르치겠다는 마음을먹었다. 얼마나 가슴이 아팠을까. 내가 태어나서 가장 잘한 일이 내 아이를 출산한 것이다. 아들 정윤이를 보기만 해도 행복하고 무얼 더 못 해줘서 안달이다. 원초적 감정마저 차단한 채 양육의 행복을 모르고 사는 운명은, 이경에게도 아이에게도 극심한 불행이다. 그런데 세상에 태어난 아이는 인간 같지 않은 아이다. 이때 이경은 또 한번 생각했을 것이다. ‘나의 욕망 때문에 괴물 같은 아이가 태어난 건 아닐까?’ 이경은 아이에게 미안했을 것이고, 아이가 타인을 괴물로 만들었을 때는 세상에 미안했을 것이다. 게다가 이경은 괴물이 되는 것을 가장 무서워하기 때문에 아이를 사랑하지만 만지지도 못한다. 정말 진퇴양난의 모성이다.

- 깊고 복잡한 딜레마에 놓인 어머니를 연기한 <스위트홈> 시즌2를, 정작 정윤군은 아직 나이가 어려볼 수 없다.

= 열흘 정도 부산에서 촬영한 적이 있는데, 정윤이도 나도 서로를 너무 그리워해서 정윤이가 부산에 내려왔었다. 피 칠갑한 배우들이 가득한 현장을 정말 무서워했다. 게다가 그날 하필 내가 괴물 분장을 하고 있어서 아이가 경악했던 기억이 난다. 심지어 나를 못 알아봐서 안아준다고 해도 거부하더라. <스위트홈>의 세계는 디스토피아 그 자체다 보니 이를 표현하기 위해 세트 바닥에 나뒹구는 낙엽이 많았다. 그런데 정윤이가… 그 낙엽을 다 줍고 다녔다. (일동 폭소)

- 밤섬 기지에서 임 박사(오정세)와 대치하는 장면에서 <남자사용설명서>가 떠올랐다. 오정세 배우와 작품 속에서 10년 만에 재회했는데.

= 오정세 배우와 막역한 사이다. 감독님한테도 농담으로 “정세 오빠 너무 웃긴 사람이라 임 박사 안될 것 같은데요?”라며 놀리기도 했다. (웃음) 현장에서 정세 오빠를 만나고 정말 깜짝 놀랐다. 매드 사이언티스트의 광기와 코미디, 그 간극을 어쩜 그렇게 여유롭게 오가는지 놀라울 따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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