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타]
[인터뷰] 표현의 설득력, <스위트홈> 시즌2 이진욱
2023-12-20
글 : 이자연
사진 : 최성열

편상욱 몸속에 정의명(김성철)의 영혼이 들어갔다. 때문에 <스위트홈> 시즌2에서 이진욱에게 주어진 가장 큰 미션은 1인2역에 가까울 만큼 다른 인물을 그려내는 것이었다. 그린홈 아파트 주민들과 다 함께 생존하기 위해 악전고투해온 편상욱은 어느덧 차현수(송강)의 반대편에 서서 인류와 재앙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을 던진다.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가’가 아닌, ‘살아남을 이유가 있는지’ 묻는 편상욱의 심연을 들여다보았다.

- 시즌2에서부터는 정의명의 영혼이 몸속에 들어간 편상욱을 연기한다. 이 차이를 그려내는 과정에 어떤 고민을 담았나.

= 사실상 다른 캐릭터를 맡은 것이나 다름없다고 생각했다. 편상욱 몸에 들어간 정의명은 완전히 정의명 같지도 편상욱 같지도 않을 거라 생각했다. 교집합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두 인물이 하나로 뒤섞일 때 어떤 괴리감이 드러날까를 가장 많이 고민했다. 그때 어차피 육신이 편상욱의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내가 정신적으로 온전히 정의명에 몰입해도, 얼굴과 표정은 편상욱의 것이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둘을 동시에 나타낼 수 있을 거라 판단했다. 스스로 납득하고 나니 그 뒤로 크게 어려움은 없었다.

- <스위트홈> 시즌1이 폐쇄된 집단 안에서 벌어지는 재난 상황을 보여줬다면 시즌2는 인간의 존재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건넨다. 선과 악으로 나뉜 차현수와 정의명의 입장 차이는 곧 이번 시즌의 주요 메시지이기도 하다.

= 정의명이 추구하는 세계는 설득력이 있다. 인간은 역사적으로 다른 생물에게 파괴적으로 접근해왔다. 정의명의 말마따나 이제 더이상 소수가 아닌 괴물이 인간보다 더 큰 힘을 지닌다면 지구의 주인이 인간이어야 할 이유는 없다. 인간이 지구를 정복하고 지배한 기간도 지구의 관점에서 보면 정말 짧다. 공룡보다 짧다. 깊은 상처를 가진 정의명이 괴물이 되자마자 낙원으로서의 디스토피아를 꿈꾼 건 자연스러운 반응이라 생각한다. 정의명은 인간의 극단적인 어둠을 보고 그게 인간의 본성이라고 믿었을 것이다. 음흉한 속내가 있다기보다는 자기만의 편협한 논리 위에서 단순명료하게 판단한 것에 가깝다.

- 차현수와의 대치를 극적으로 드러내기 위해 계속 액션을 선보인다. 1화에서부터 좁은 자동차 내부에서 벌이는 전투를 선보였는데.

= 자동차 내부에서 싸우는 장면은 워낙 한정된 공간에서의 액션이라 어렵긴 했다. 이때 효율성과 자연스러움을 높이기 위해 감독님이 특별한 장치를 준비해주셨다. 실제 자동차는 아닌데 자동차처럼 움직일 수 있는 거대 장비를 마련한 것이다. 일종의 놀이기구처럼 생겼다. 덕분에 실내 액션의 미세한 떨림이나 기울어짐 등이 진짜처럼 구현됐다. 액션 자체가 어렵진 않았다. 경험이 쌓이면서 생겨난 요령도 있고 워낙 액션과 잘 맞다. 그보다는 상상에 의지하여 싸우는 장면들이 어려웠다. 차현수가 각성한 뒤 날개를 펼쳐 각자의 기술로 전투를 벌이는 장면이 있는데 신체적 접촉 없이 타격감을 나타내기가 쉽지 않았다. 이렇게 실체가 없는 상태에서 감정까지 담아내야 할 때가 아직까지도 어렵다.

- 시즌2에서는 정의명의 캐릭터를 강조하기 위한 다소 과장된 표정과 어투를 활용한다.

= 이응복 감독님과 정말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정의명이 자기 인격을 버리고 완전히 반대편으로 넘어간 상태지만 원래 편상욱의 몸이 기억하는 것들에 잡아당겨지는, 일종의 완력을 두드러지게 보여주고 싶었다. 자기도 모르게 문득문득 튀어나오는 감정과 같다. 확실히 평범한 면모는 아니다. 캐릭터성이 강하고 증상처럼 나타나는 제스처를 취한다. 정의명의 경험이 일반적인 것들은 아니라 납득하기는 어렵지 않았다.

- 시즌2와 시즌3를 연달아 촬영한 소감은.

= 훨씬 좋았다. 호흡을 쉬었다 하는 것보다 몰입하기도 분석하기도 좋았다. 시즌을 연달아 촬영해도 <스위트홈> 시리즈가 워낙 등장인물이 많아서 분량에 대한 압박이 상대적으로 덜한 편이다. 특히 시즌1 때 OTT에 대한 보편적인 이해가 크지 않은 상태에서도 많은 사람들의 관심과 호응을 받아서 촬영 현장의 분위기가 끈끈하고 화기애애했다. 하나의 작품으로 모두가 마음을 맞춰나갈 수 있어 좋았다.

- 이응복, 박소현 감독과 가장 오랫동안 의논한 부분이 있다면 무엇인가.

= 긴 공백 이후에 시즌2가 나오는 만큼 캐릭터마다 비주얼적 쇼크를 어떻게 보여줄 수 있을지 논의를 많이 했다. 의상이나 분장 등 외형적인 부분에도 신경을 썼다. 내면적으로는 정의명에게 편상욱을 몇 퍼센트 정도 포함시킬 것인지 길게 이야기했다. 정의명에게 사로잡힌 편상욱도 내적으로는 고군분투를 하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정의명이 그런 대사를 한다. “잘못 먹었”다고. 정의명이 이동하고 싶어도 이동하지 못하는 순간이 나오는데 그게 바로 편상욱의 개입이다. 본인이 직접 저지른 일이 아니어도 자신의 몸으로 벌어진 일에 대한 책임이 느껴진다.

- <스위트홈> 시리즈는 갑작스러운 재난과 함께 위기에 처한 인간을 어느 선까지 수용할 것인지 묻는다. 생존자들끼리의 이런 논의가 현실에 어떤 메시지를 줄 수 있을 거라 생각하나.

= 다름을 인정하기 쉽지 않은 세상이다. 집단마다, 개인마다 손익 기준이 다르기 때문에 갈등이 불가피하다. 분쟁은 반드시 일어나기 마련이다. 더 많은 식량을 얻기 위해서, 더 유리한 위치를 선점하기 위해서 등 다양한 목적으로 피할 수 없는 싸움이 벌어진다. 그런 점에서 <스위트홈>은 빈 도화지 같은 상황에서 이 갈등을 어떻게 좁혀나갈 수 있는지 세세하게 보여준다. 날것만이 남은 원초적인 상태로 돌아가 문명사회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또 그 과정에서 서로간의 다름과 충돌을 어떻게 수용할 수 있는지 철학적인 질문을 건넨다. 정답은 정해져 있지 않다. <스위트홈> 시즌2를 통해 시청자들이 각자의 답변을 생각해볼 시간을 가지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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