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항적이던 10대 소녀 은유는 이복오빠 은혁(이도현)이 죽었다는 사실을 부정하며 시즌2를 시작한다. 이전보다 한결 차분하고 무게감 있는 얼굴로 배우 고민시는 그린홈 아파트를 벗어난 소녀의 심리적·태도적 변화를 자연스럽게 보여준다. <스위트홈> 시즌2의 변화와 질주 속에 자기만의 한획을 더한 고민시를 만났다.
- <스위트홈> 시즌2는 시즌1보다 더 음울하고 무거운 분위기로 진행된다. 은유에게 어떤 심리적 변화가 생겼다고 분석했나.
= 감정 자체가 엄청나게 깊어졌다. 시즌1은 딱 그 나이대에 맞는 사춘기 고등학생 같았다. 표현도 서툴고 행동보다는 말이 앞섰다. 반면 시즌2에서는 말수가 많이 줄어들었다. 그리고 말보다 행동을, 행동보다 생각을 먼저 한다. 섬처럼 혼자 있지만 누구도 잃고 싶지 않다는 슬픔 섞인 결연한 마음도 두드러진다. 외적으로는 중성적인 변화가 돋보인다.
- 슬픔이 계속 누적되는 와중에도 은유는 다른 사람에게 자기 마음을 드러내지 않는다.
= 시즌1부터 은유는 남들 앞에서 자신의 두려움이나 걱정을 내비치지 않았다. 처음 괴물을 봤을 때에도 아무도 없는 화장실에서야 공포를 체감할 뿐이다. 특히 누군가 도와줘야 할 일이 생길 때 가장 크게 무너져내린다. 정체를 알 수 없는 것들에게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없어 무력감을 느끼기 때문이다. 마음을 내어준 가족과 이웃을 잃으면서 내성이 생기는 듯하지만 결국 은유도 누적된 상실감을 폭발시킨다.
- 복잡하고 깊어진 은유의 감정은 특히 눈빛과 목소리에 잘 담겨 있다.
= 그 지점을 잡아내기까지 정말 오랜 시간이 걸렸다. 대사 톤에 관해서 이응복, 박소현 감독님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시즌1보다 더 냉철하고 강인해 보일 수 있도록 변화를 드러내야 했다. 가령 이런 점들이다. 시나리오에 적힌 “뭐해?”라는 대사에 평소 은유라면 하이톤으로 끝을 올렸겠지만, 시즌2의 은유는 “뭐 해” 하고 끝을 끊으며 음을 낮췄다. 그 외에도 걸음걸이부터 칼을 손에 쥐는 모습, 가방을 메는 형태까지 하나하나 디테일을 염두에 두면서 연기했다. 감독님들은 디렉션이 무척 섬세하고 구체적이다. 머릿속에 청사진이 뚜렷해서 내가 때로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으면 그 연기가 나올 때까지 어떻게든 감정을 끌어내주셨다.
- 지수(박규영)와의 연대도 눈에 띈다. 상실을 경험한 사람끼리 서로의 감정을 이해하지만 그렇다고 그 둘이 유난스레 친절하거나 다정하지 않다.
= 은유로서 가장 애착이 가는 인물은 은혁과 지수다. 지난 시즌에서 이 둘과의 유대 관계가 유난히 돈독했다. 투닥거리는 사이에 나도 모르게 쌓이는 정서들이 있지 않나. 재헌(김남희)의 죽음 이후 홀로 울고 있는 지수에게 은유는 초코바를 준다. 초코바로 그렇게 뭐라고 했던 은유가 무려 초코바를 준 것이다. 그리고 지수와 “끝까지 살아남”자고 약속한다. 그랬던 은유가 지수의 희생을 눈앞에서 바라보았을 때 어땠을까. 아마도 은유는 그때 변했던 것 같다. 더 이상 불리한 상황을 바라보고 있지만은 않겠다고, 자신을 희생하면서 세상을 떠나는 사람들을 모른 척하지 않겠다고 결심했을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지수가 은유에게 남겨준 것이기도 하다.
- 디스토피아 설정상 계속 누군가를 떠나보내야 하는 상황에 감정 소모가 컸을 텐데.
= 후반부에 현수가 “다른 사람들은 잘 지내냐”고 묻는 질문이 참기 어려울 만큼 슬펐다. 이웃들이 어떻게 떠나갔는지 설명해줄 때, 과거의 장면을 하나하나 떠올려야 하는 게 은유에게 무척 고역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내내 생각했다. 은혁이 빨리 나타났으면 좋겠다고. 어서 눈앞에 나타나 은유의 버팀목이 되어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촬영했다. 모두가 궁금해했던 은혁에 관한 이야기는 시즌3에서 본격적으로 이어질 예정이다.
- 제44회 청룡영화상에서 신인여우상을 수상했다. 축하한다. 믿을 수 없다는 듯 두리번거리다 주변 사람 따라 박수치는 모습이 화제가 되기도 했는데.
= 나중에 내 모습을 보고 충격받았다. (웃음) 조금이라도 예상했으면 더 괜찮은 모습으로 준비하고 있었을 텐데. 내가 그런 표정과 행동을 하고 있는지 꿈에도 몰랐다. 마침 배우를 비추는 카메라의 화면이 나오지 않아서 내가 어떻게 나가는지 더더욱 알 수 없었다. 그때 나를 향해 웃어주고 박수 쳐주던 사람들의 얼굴이 하나하나 실시간으로 기억난다. 너무 따뜻했다. 순식간에 다른 세상에 빨려 들어갔다 나온 느낌이었다.
- 영화 <밀수>를 함께한 김혜수 배우가 마지막으로 진행을 맡은 청룡영화상에서 받는 신인여우상이다.
= 춘자(김혜수)를 바라봤던 옥분(고민시)이 다시 현실에서 만나는 것 같아 감동적이었다. 다음 날 김혜수 선배님께 문자를 보냈는데 음성메시지로 긴 답변을 주셨다. “신인상을 받는 민시를 두눈으로 직접 볼 수 있어 행복했다”고. 너무 뭉클하고 감동적이었다. <밀수>를 통해 많은 것을 얻었지만 그중에서도 선배 배우들과의 인연을 얻게 된 게 가장 큰 행운이다. 30대를 시작하는 해여서 그 의미가 더 크게 다가온다.
- 마지막으로 <스위트홈> 시즌2는 괴물화라는 갑작스러운 재난이 인간 중심적 역사를 향한 처벌이 될 수 있다는 의견을 제시한다. 이 주요 메시지를 시청자가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 시즌2 초반에 괴물이 등장할 때 군인들이 쏘는 총에 사람들이 맞아서 죽는다. 따지고 보면 괴물은 죄가 없다. 여기서부터 그 경계가 모호해진다. 누가 선이고 누가 악일까. 또 누군가는 악의적인 욕망으로 괴물이 되고, 누군가는 순수한 욕망으로 괴물이 된다. 괴물 모두를 악의 집단으로 뭉뚱그릴 수 없는 이유다. 아직 괴물이 되지 않았지만 악한 인간도 존재하지 않나. <스위트홈> 시즌2는 쉽게 일반화할 수 없는 선과 악의 기준을 개개인에게 묻는다. 그런 이야기를 나눠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