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인터뷰] “노량해전은 100분짜리 오케스트라였다”, <노량: 죽음의 바다> 김한민 감독
2023-12-29
글 : 임수연
사진 : 오계옥

김한민 감독은 <한산: 용의 출현>과 <노량: 죽음의 바다> 촬영을 마치고 여수시 돌산에 아예 집을 구했다. 이순신 장군이 관할한 5관 5포 중 하나였던 방답진(조선 시대 왜구 방어의 최일선 수군진이었다.-편집자)이 자리했던 곳으로 과거 거북선도 이곳에 있었다. 삶의 터전까지 이순신과 근접해 있었던 김한민 감독과 함께 일을 하거나 주변에서 지켜본 이들은 그가 지난 10년간 이순신과 그의 해전을 영화화하는 일에 미쳐 있는 것처럼 몰두했다고 증언한다. 그리고 그가 가닿고자 했던 지점은 내내 같은 곳을 향하고 있었다. 김한민 감독에 따르면, <난중일기>를 자주 읽으면서 이순신 장군에 대해 잡았던 상 자체는 <명량>을 시작하기 전이나 <노량: 죽음의 바다>를 마친 지금이나 똑같다고 한다. 그렇게 치열하게 감독이 스크린에 옮겨내고자 하는 이순신의 신념은 궁극적으로 무엇이었을까. 이순신의 마지막 전투, 노량해전을 담은 ‘이순신 3부작’의 피날레를 장식하는 <노량: 죽음의 바다> 개봉을 앞두고 김한민 감독을 만나 긴 대화를 나눴다.

- <한산: 용의 출현>과 <노량: 죽음의 바다>를 거의 동시에 진행했다. 아무래도 제작비 절감 차원이었나.

= 오히려 제작비 절감 효과는 크게 보지 못했다. 다만 이런 효과는 있었다. 항상 팀워크를 맞출 만하면 촬영이 끝나서 아쉬웠다. <한산: 용의 출현>을 끝내고 두달 반 정도 리세팅을 한 후 <노량: 죽음의 바다>에 들어가니 확실히 스탭들의 팀워크는 훨씬 좋았다.

- 준비 과정에서 가장 집중적으로 참고한 사료는 무엇이었나. 당시 명나라와 도요토미 히데요시 정권, 에도 막부 관련 자료도 찾아봤어야 했을 듯한데.

= 박학다식하게 책을 많이 읽는 건 중요하지 않았다. 내가 다루고자 하는 해전이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가, 그 의미를 생각할 때 어떤 자료를 찾아봐야 하는가를 생각했다. 노량해전의 경우 정치 상황이나 여러 사건이 이순신으로 하여금 싸움을 회피하게 했을 텐데 왜 그토록 치열하게 싸움에 임하려고 했는지 궁금했다. 그게 노량해전의 본질이자 <노량: 죽음의 바다>의 주제가 된다. 그래서 가장 본질이 되는 화두를 담고 있는 책들을 찾아봤다. 답을 알아가는 과정에서 이순신 관련 책을 쓴 저자나 연구자들도 많이 만났다. 그들은 내가 이 질문을 던졌을 때 미처 이런 생각을 하지 못했는지 무척 당혹스러워했다. 하지만 이 답을 찾아내지 못하면 이 영화를 만드는 의미가 없었다. 영화에 나오는 대사, 이순신 장군(김윤석)이 “여기서 전쟁을 멈춘다면 더 큰 원한을 불러올 것이고, 열도 끝까지 쫓아가서 완전한 항복을 받아내야 한다”고 말씀하셨을 것이라 확신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리고 이에 맞는 개연성과 당위성에 따라 노량해전을 설계했다. 그러다 보니 해전이 거의 100분 가까이 전개되어야 하더라. 촬영이 무척 치열하고 고통스러웠고 풀어야 될 기술적인 숙제도 많았지만 장군님 말씀에 대한 확신을 갖고 헤쳐나갈 수 있었다.

- 왜군 최고지휘관 시마즈(백윤식)와 선봉장 고니시(이무생), 명나라 수군 도독 진린(정재영)과 부도독 등자룡(허준호) 등의 캐릭터는 사료를 읽을 때 어떻게 해석했나. 각각의 나라에서 해당 인물을 평가한 맥락과 배경이 있는데 한국인의 입장에서 타국 장수들에 어떻게 접근했는지.

= 각국의 입장에서, 그들 각자의 입장에서 캐릭터를 봤다. 그들이 어떻게 생각하고 행동했느냐가 인물을 만드는 근간이 됐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들의 상황에 무지해서는 안됐다. 왜국은 전국시대 때 백가쟁명식으로 싸웠던 역사가 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라는 칼잡이 밑에서 순응하며 그에게 복속된 상황이 이어졌기 때문에 그 잔재가 많이 남아 있다. 때문에 다이묘마다 입장이 다르다는 것이 내게 큰 화두가 됐다. 시마즈가 고니시를 구하러 온 이유는 무엇일까. 옛날 사극을 보면 일본인이 일본인을 돕는 것은 당연하다는 듯이 묘사되지만 그것만으로는 설명이 되지 않는다. 그들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졌기 때문에 시마즈가 노량해전에 참여한 것이라 해석했다. 고니시가 시마즈에게 보낸 밀서의 내용이 무엇이었길래 시마즈를 설득할 수 있었는지 많이 고민했다. 영화에 나온 것은 이 정도면 시마즈가 움직일 수 있겠다며 내 식으로 찾아낸 답이다. 명국의 진린은 정재영의 표현을 빌리자면 좌고우면하는 인물로 실리를 추구한다. 처음에는 이순신을 이기기 위해 포악한 모습도 보였다가 그의 품성을 알고 점차 존경하게 된다. 이순신을 명나라에 천거하기도 하고 그가 죽었을 때 땅을 구르면서 안타까워한다. 명나라가 멸망한 후 진린의 후손이 조선으로 귀화하고 정착해 지금의 광동 진씨가 되기도 했다.

- 임진왜란 후반부에 접어들면 이순신은 맨정신으로 버티기 힘든 개인사를 여러 차례 겪는다. 그렇기에 거의 죽으러 가는 심정으로 전투에 출전하는 것처럼 보이는 순간도 있다.

= 이순신의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가장 사랑하는 셋째 아들 이면이가 죽었고 6년 동안 함께했던 동료들은 죽거나 사라졌을 때쯤 노량해전을 치렀다. 이 사람의 멘털을 유지해준 것은 과연 무엇이었을지 궁금했다. 조선은 신에게 의지할 수 있는 풍토가 마련되어 있었던 것도 아닌데 어떻게 그같은 덕성과 품성을 쌓을 수 있었을까. 성리학적 유교 사상의 어떤 바탕이 이순신에게 깊이 천착되어 가능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더라. 조선왕조 500년이 가장 완성적인 유교적 군자상을 추구하는 사회였다면, 아이러니하게도 문인이 아닌 무인인 이순신에게 그 화신이 나타났다. 성실, 공경, 정직 등 성경신의 정신이 한꺼번에 장군에게 자리 잡은 것이다. 그렇기에 어떤 위급하고 고독한 상황에서도 꿋꿋하게 노량해전을 준비할 수 있었다.

그 북소리의 의미

- 더이상의 희생을 막아야 하지 않겠느냐는 명나라 진린과 일본 고니시의 입장은 일부분 설득력이 있다. 실제로 정치와 무관한 일본의 평범한 병사들이 그저 살아서 집에 돌아가고 싶다며 죽음에 내몰리는 풍경을 보면 많은 생각이 든다.

= 이순신은 침략자가 존재하는 전쟁이라면 그들이 온당히 처벌받고 완전한 항복을 받아내는 것이 다음 세대를 위해서도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이순신은 현재를 매듭짓지 못하면 미래가 불행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결국 역사적으로 비극은 반복되고 일제강점기가 오지 않았나. 노량해전에서 장군이 돌아가시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더더욱 완전한 항복을 받아내기 위해 이후에도 노력했을 것이다.

- 전쟁은 현재 진행형 아닌가. 지금 시대에 이순신 장군의 신념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이라고 보나.

= 한국전쟁도 아직 종결되지 않았다. 남북이 분단된 상황에서 많은 부작용과 폐해가 나타나고 그 속에서 많은 이들이 갈등하며 싸우고 있다. 전쟁이 완전한 결말에 이르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런 지점에서 완전한 항복을 받아내서 전쟁을 온전히 종결해야만 한다는 이순신의 정신은 지금 시대에도 필요하다.

- 아마도 대다수 관객은 “내 죽음을 적에게 알리지 말라”고 알려진 이순신의 유언이 어떻게 영화적으로 구현됐을지 궁금해할 것이다. 정확히 같은 대사가 나오지는 않는다. 대신 이순신의 북소리가 그의 마지막 말을 이미지적으로 형상화한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실제 유언은 북소리 위에 배치된다.

= 장군의 정확한 말은 “싸움이 급하니 내 죽음을 내지 말라”였다. 장군의 죽음을 적은 물론 아군에도 알려서는 안된다. 그리고 내가 <노량: 죽음의 바다>를 만들고자 했던 본질, “이 전쟁을 이렇게 끝내서는 안된다”는 말을 더한 후 돌아가시게끔 극적 장치를 만들었다. 장군의 유언을 사후에 보여준 것은 자신의 죽음을 알리지 말라는 장군의 유지를 충실히 받든 것이다. 실제로 이를 관객도 체험하게끔 하고 싶었다.

- 시마즈가 이순신의 북소리를 들으며 괴로워하는 신은 상상력을 발휘한 결과물인가.

= 실제로 장군이 북을 치다 돌아가셨다. 역사에 기록된 독전(督戰)의 북을 극적으로 극대화하는 게 영화감독이 할 일 아니겠는가. 이를 위해서는 시마즈와 고니시라는 수신자가, 북소리를 격려와 응원으로 받아들이는 진린이 필요했다.

- ‘이순신 3부작’은 모두 같은 구성을 갖고 있다. 해상 전투를 나가기 전 정치·외교적 상황을 보여준 후 후반부에 본격적인 전투가 시작된다. 관객이 기대하는 스펙터클은 후반에 몰려 있기 때문에 자칫 중반까지 전개가 지루하게 느껴질 수 있다.

= 빌드업을 잘 쌓아놔야 뒷부분 해전도 재미가 있다. 이미 끝난 전쟁에서 각국의 입장과 각자가 취하는 행동, 생각을 뚜렷하게 보여주려고 했다. 그들의 이해가 상충했을 때 어떤 상황이 펼쳐질지 고민했다.

- 100여분의 해상전 대부분이 야간 신이다. 한국영화에서는 처음 있는 시도였다. 결과물이 어떻게 나올지 모르는 상황에서 실제 역사 그대로를 재현하는 결단을 내릴 수 있었던 이유는 뭔가.

= 역사적인 야간 전투를 낮 전투로 바꿀 수는 없지 않나. 결단이 아니라 표현을 해야만 하는 ‘머스트’의 문제였다. 기술적인 고민의 가장 중요한 핵심은 실내에서 찍어야 한다는 것이었고, 대규모 세트가 필요했다. <명량>처럼 실제 바다에서 찍게 되면 도저히 그 많은 변수를 다 통제할 수가 없다. 단일한 광원뿐만 아니라 전체 조명을 어떻게 할 것인가가 중요했고 세트 천장을 모두 LED로 도배했다. 그러다 보면 제작비가 상승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규모의 경제를 위해 <한산: 용의 출현> <노량: 죽음의 바다> 모두 아이스링크 실내 세트장에서 찍게 된 것이다.

- 긴 밤이 지나고 해가 떠오를 무렵 펼쳐지는 백병전을 롱테이크로 찍었다.

= “감독님, 이게 꼭 필요한가요?”라는 질문을 처음에 많이 받았다. “어, 필요해. 나는 이순신이 전쟁의 한가운데 서서 그 모습을 지켜봤으면 좋겠어.” 오래전부터 계획을 짜며 치밀하게 준비하고 리허설을 거듭해 완성한 신이다. 시간과 비용은 물론 사방이 크로마키인 환경 안에서 찍어야 하기 때문에 사방에 카메라를 설치하고 촬영하는 등 요구되는 장치도 많았다. 실제 결과물은 몇번 나뉜 컷을 CG로 이어 붙여 롱테이크 느낌이 나게끔 한 것이다. 100% 만족스럽지는 않지만 계획의 90% 이상은 구현해냈다.

- 클라이맥스에서 이순신이 죽은 동료 병사들의 환영을 보는 숏들은 자칫 감정을 강요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럼에도 이 연출을 밀어붙인 이유는.

= 이순신이 보는 환영은 가장 치열한 난전 속에서 반드시 나와야 할 필요가 있었다. 연출의 컨셉과 설계가 잘 부합해 작동하면 관객이 따라올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다. 콘트라스트가 세게 대비되는 게 중요하다 보니 사운드도 가장 극적으로 대조되게끔 설계해야 했다. 처음에는 비트감 있는 사운드로 생각했는데 막상 편집을 하고 보니 처연함을 보여주는 쪽으로 작업하는 게 더 어울리겠더라. 그래서 신디 내지 신스 음악을 먼저 깐 뒤 환영을 볼 때는 사운드를 뮤트하는 방식으로 연출했다.

- 물살을 이용한 <명량>이나 학익진과 거북선이 등장하는 <한산: 용의 출현>과 달리 <노량: 죽음의 바다>는 해전을 대표하는 전술의 존재감이 약하다. 때문에 전투의 전개 양상을 설계하는 데 고민이 많았겠다.

= 일단 역사적 사실을 살펴본 뒤 영화의 리듬과 극적인 당위성에 따라 어디에 포커싱을 해야 할지, 무엇을 확대하고 줄일지 판단해나갔다. 노량해전에서 재미있는 지점은 관음포에 적들이 빠져들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전반부와 후반부를 나누는 중간 지점에 이를 배치했다. 사운드 밸런스도 중요했다. 전체 전개와 리듬에 맞게 앰비언스와 이팩트 등을 계산하지 않을 수 없더라. 영화를 만들다 보니 이것은 100분짜리 오케스트라였다. 지휘자가 작품의 성격과 자신의 해석에 맞게끔 지휘해야 하는 오케스트라 말이다.

다음 이야기가 향할 곳은

- 에필로그는 다음 작품을 위한 초석인가. 광해가 주인공인 작품을 준비 중인가.

= 조선 시대 정치 외교를 다룬 드라마를 만들어보고 싶다. 광해보다는 오히려 다른 인물을 다루게 될 것이다. 한음 이덕형이 주인공이다. 임진왜란 시기 강화 협상에서 그가 어떤 역할을 했는지 보여주는 드라마다.

- 10년 넘게 ‘이순신 3부작’에 매달렸다. 앞으로도 계속 조선 시대를 다룰 예정인가. 다른 장르를 연출할 계획은 없나.

= 조선이 아닌 다른 역사를 다룰 수도 있다. 그렇게 하나의 파트가 있고, 다른 파트에서는 SF도 고려하고 있다. 사극도 시간적 배경이 과거일 뿐이지 우리가 어떤 시공간을 꾸며나가는 작업 아닌가. 미래도 똑같다. 사극을 만들던 사람이 SF에 도전한다는 게 자칫 붕 떠 보일 수 있지만 일관된 맥락을 갖고 있는 작업이다. 최근 내가 20대 때 너무 좋아했던 소설 <듄>을 영화화한 드니 빌뇌브 감독과의 대담에서 나눈 대화가 참 좋았다. 다음에 그를 찾아가 한번 더 긴 대담을 요청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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