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인터뷰] 7년의 바다, <노량: 죽음의 바다> 김윤석 인터뷰
2023-12-29
글 : 박수용 (객원기자)

압도적인 대승에도 웃을 수 없다. 여명이 밝아오는 수면 위로 흐르는 것은 승리의 전율 대신 셀 수 없이 많은 희생을 반추하는 짙은 비애다. 이 탄식의 무게는 단지 그날 밤 기록된 죽음에 대한 애도가 아니다. 그간 이순신(김윤석)과 나란히 싸웠던 동료 장수들, 이름 없이 사라져 간 병사들과 백성들의 몫을 합한 7년간의 비극의 총량이다. 그래서일까. 인터뷰 내내 김윤석은 ‘7년’이라는 단어를 유독 자주 입에 올렸다. 그의 시선은 노량 바다의 풍경을 넘어 왜란 전체의 풍파를 고스란히 받아낸 한 인간의 기구한 운명을 향해 있었다. “성웅의 이미지 이면의 이순신은 너무나 불행한 인간이다. 그렇게 압도적인 승리를 거두고도 모함과 치욕에 시달리다 가족도 잃고 결국 전장에서 자신의 목숨까지 잃지 않나.” 김윤석은 위대한 장군의 최후 대신 그저 “7년간의 전쟁을 겪고 살다 간 50대 군인의 죽음”을 그리고자 했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난전의 잔향이 온전히 가라앉은 뒤에야 이순신의 최후를 비춘다. “영웅의 죽음을 위대하게 묘사하고 싶지 않았다. ‘싸움이 급하다, 결코 이 전쟁을 이렇게 끝내지 말라’는 마지막 대사의 의지를 진실하게 표현하고자 하는 김한민 감독님의 의도에 공감했다.”

김윤석의 이순신은 과묵하고 근엄했다는 역사적 기록에 충실하다. 그럼에도 떠오르는 해 앞에서 전사한 동료들과 아들의 환영을 마주할 때만은 속절없이 눈물을 흘린다. “이것이 본인이 마지막으로 보는 해라는 어떤 숙명적 예감을 느끼지 않으셨을까. 그 감정에 빨려들어가다 보니 장면을 찍는 내내 내가 눈을 한번도 깜빡이지 않았다더라.” 김윤석은 인터뷰 내내 이순신과 관련된 수많은 기록을 놀라울 정도로 자세하게 짚어나갔다. 인간 이순신의 심리적 고통을 체화하기 위한 노력의 증거였다. “단순히 기록을 외우는 것보다 당시의 사회상과 삶의 가치를 파악하려 했다. 예로 노비 병사의 시신까지 모두 수습해 장례를 치러주었다는 기록이 있다. 인간으로서의 도리를 중시하는 올곧은 분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53살의 이순신을 연기하는 일은 50대 중반의 베테랑 배우에게 더욱 각별한 경험이었다. “이순신 장군도 7년이나 전쟁이 지속될 줄은 모르셨을 것이다. 그 지난한 시간 속의 인연과 이별이 노량해전의 이순신을 만들지 않았나. 나의 지난 세월도 여전히 지금의 나와 함께하고 있다는 감각을 느낀다. 이것이 운명이고 인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 <미성년>을 연출한 감독의 시각에서도 <노량: 죽음의 바다>의 제작 현장은 큰 영감의 원천이었다. 몰입도 높은 해전 시퀀스를 창조한 VFX 기술력에 새삼 감탄했다며 “뛰어난 아티스트이자 전문가들과의 협업”의 힘을 실감했다고 밝혔다. “좋은 영화에서는 사람의 삶이 보여야 한다”고 말하는 김윤석. 7년간의 희생을 기억하며 올바른 끝맺음을 위해 북을 울리는 ‘현장’(賢將)의 면모가 어느덧 그에게서도 엿보인다.

사진제공 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롯데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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