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인터뷰] 차갑게 만나 뜨겁게 끌어안는 관계, <로기완> 김희진 감독
2024-01-12
글 : 김소미
사진 : 최성열

단편영화 <수학여행> <MJ>에서 소외된 이들의 내면에 일렁이는 섬세한 감정들을 포착했던 김희진 감독이 조해진 작가의 소설 <로기완을 만났다>를 영상화한 작품으로 장편 데뷔에 나선다. 한국영화아카데미 재학 시절 신인 창작자를 찾던 임승용 용필름 대표와 인연을 맺은 김희진 감독은 여성 기자의 시점으로 탈북민 로기완의 행적을 좇는 소설을 벨기에 브뤼셀에 새로 정착한 로기완 중심의 이야기로 각색했다. “인간의 존엄성을 말하는 원작 소설의 메시지는 충실히 살리면서 멜로드라마적 분위기를 가미했다. 소설에는 없던 마리라는 여성 캐릭터도 생겨났다.” 김희진 감독은 유럽에서 난민 지위를 받고자 애쓰는 실제 탈북민들을 취재하고, 케이트 에번스의 그래픽 노블 <그림으로 읽는 유럽의 난민: 구호 현장에서 쓴 생생한 기록>을 살피며 “낯선 언어, 추위, 기약 없는 기다림 속에 놓인 사람들이 느낄 막막함과 쓸쓸함”을 피부에 새겨나갔다. 김희진 감독이 중시하는 것은 “캐릭터 그 자체의 깊이와 매력, 그리고 그들 사이의 관계”다. 배우 송중기가 누아르 <화란>에 이어 척박한 환경에서 생존해야 하는 인물을 연기하며 필모그래피의 분명한 전환점을 만들어낼 만한 작품인 <로기완>은 “아름답고 여려 보이지만 절대 꺾이지 않는 굳건함도 느껴지는” 배우의 묘한 양면적 매력을 극대화했다. “삶의 진창 속에 있으면서도 결코 낙담하지 않으며 품위를 지키는 인물”이란 것이 로기완에 대한 감독의 설명. “기완이 마리에게 밥을 차려주는 장면에서 그가 지닌 깊이가 드러난다. 생존 본능만 앞세우기 쉬운 나날들 속에서도 기완은 정갈한 이북 음식으로 나름대로 신경 쓴 식단을 꾸린다.” 송중기는 북한에서 장교로 있다 2000년 탈북한 백경윤 북한말 전문가의 코치를 받아 자강도 사투리를 구사해 색다른 면모를 보여주기도 한다. 한편 오디션을 통해 첫눈에 김희진 감독에게 낙점된 최성은은 “기완처럼 상처를 지닌 인물로 삶의 의욕을 잃은 상태에서 기완과 마주했다가 그를 통해 이내 생명력을 회복하는” 벨기에 국적의 한국인 사격 선수 역을 맡았다.

배우 조한철은 마리의 아버지, 배우 김성령은 기완의 어머니를 연기한다. “조한철 배우는 삶의 상처로부터 아직은 침잠해 있는 한 남자의 고독한 모습을, 김성령 배우는 기존의 도회적인 이미지가 아닌 매우 강인하고 따뜻한 모습을 보여줄” 예정이다. 특히 김성령은 “인자하고 푸근한 전형적인 어머니상에 갇히지 않는 모성을 대단히 강렬한 인상으로 새겨넣는다”. 첫 장편영화 작업을 마무리해 넷플릭스에 납품까지 마친 김희진 감독은 후련해 보였다. “앞으로도 인생 대부분은 고통으로 채워져 있지만 그럼에도 가끔 살 만한 순간이 있다고 말하는, 우리 삶에 도움이 되는 이야기를 만들고 싶다.”

<로기완>의 이 장면

“로기완이 처한 현실은 녹록지 않지만 그럼에도 삶에 숨통이 트이는 순간들을 잘 보여주려고 했다. 이상희 배우가 연기한 선주가 기완에게 식사를 대접하는 장면이 있는데, 밥상 앞에서 인물들이 서로 마음을 열고 비로소 어떤 우정을 나누게 된다. 배우가 직접 고심해서 만들어낸 디테일한 동선과 호흡을 보면서 나 역시 마음이 푸근해지고 만 장면이다. 좋은 영화에는 마음을 울리는 식사 장면이 있다고 생각한다. 나도 한번쯤은 그런 장면을 연출해보고 싶었다.”

제작 용필름 / 감독 김희진 / 출연 송중기, 최성은, 조한철, 김성령, 이일화, 이상희 / 제공 넷플릭스 / 공개 202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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