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1년에 태어나 1970년에 첫 장편 데뷔작 <잃어버린 면사포>를 만들고 2002년에 60번째 영화 <아리랑>을 완성한 이후까지 한국영화사에 새겨진 이두용의 시간은 너무도 길고 깊다. 그 일부의 순간이라도 붙잡아보고자 이두용 감독의 활동이 담긴 몇개의 사진을 정리했다. 그는 언제나 ‘현업 영화감독’임을 자부했던 현재형의 창작자였다.
<씨네21> 875호 ‘박력과 쾌감, 이두용 감독전’
2012년 이두용 감독은 한국영상자료원의 이두용 특별전을 앞두고 <씨네21>과 만났다. 이두용 감독의 왼편에 짙게 드리운 그림자는 마치 <최후의 증인>에서 만끽했던 흑백의 콘트라스트를 보는 듯하다. 앞서 그는 2011년 부산국제영화제 행사에서 본인을 “한물간 감독 이두용입니다”라고 소개하며 “시대별로 그 시대를 풍미하는 감독들은 따로 있다. 젊은 세대와 달리 우리 세대가 할 수 있는 영화도 분명히 있다”라고 시대의 흐름을 겸허히 언급한 바 있다. 시간에 따라 자연스레 들고 사라지는 빛과 어둠을 적확히 포착할 줄 알았던 이두용 감독을 사진으로 만나보자.
<뉴욕 44번가> 촬영 현장
가히 이두용의 전성시대라 할 수 있는 70년대 중반 사진이다. 이두용 감독은 한번의 미국 로케이션으로 <아메리카 방문객>과 <뉴욕 44번가>를 만들어 개봉했다. 사진에서 끌어안고 있는 남녀는 <뉴욕 44번가>의 주연배우 마리안 엘렌, 한소룡(한지일)인데, 그 위쪽을 보면 이두용 감독이 디렉팅 중이다. 이두용 감독은 당시 세계를 오가며 한국형 무술영화에 매진했던 이유를 “유엔에 가입한 나라에서 1만달러씩만 받아도 한국영화 제작 현실을 뒤바꿀 수 있다고 생각”했다고 회고하기도 했다.
<아리랑> 촬영 현장
<아리랑> 촬영 현장의 이두용 감독. 노년에 접어든 이두용 감독은 <씨네21> 368호의 <아리랑> 관련 인터뷰에서 언제 영화에 대한 깨우침이 있었냔 질문에 망설임 없이 “바로 지금”이라고 답했다. 100년 전 만들어진 나운규의 <아리랑>을 현재화하려는 작업, 그리고 늘 현재의 영화감독이길 바랐던 이두용 감독의 목소리는 울창했다.
<씨네21> 368호 나운규의 <아리랑> 리메이크한 이두용 감독
이두용 감독은 <아리랑>의 후반작업이 한창이던 2002년 9월 <씨네21>을 찾았다. 당시 이두용 감독은 나운규의 원작과의 비교에 대해 “원작의 복원에 뜻이 없고 이두용식 <아리랑>임”을 강조했다. 또한 나이가 들어 연출력이 노쇠해가지 않느냐는 세간의 우려에 “나는 지금에야 어린 시절 담장 뛰어넘어가서 보던 꿈같은 영화를 만들 수 있을 것 같다”고 힘주어 밝혔다.
<씨네21> 649호 2008년 한국영상자료원 핸드프린팅 행사
2008년 4월10일 한국영상자료원이 연 한국 최고의 영화인 35명 선정을 기념한 핸드프린팅 행사에서 만난 이두용 감독과 박찬욱 감독의 모습이다. <씨네21>과의 인터뷰에서 이두용 감독은 “<최후의 증인>을 중심으로 내 영화를 후배 감독들이 인정해준다는 사실이 기쁘다”라며 “후배들의 의미 있는 도움에 말할 수 없이 행복”하다고 밝히기도 했다.
<씨네21> 635호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에서 특별전 연 이두용 감독
2008년 1월 서울아트시네마의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에서 이두용 감독의 특별전이 열렸다. 이 특별전에선 개봉 당시 검열로 삭제된 <최후의 증인>이 154분 원본 그대로 상영돼 화제를 모았다. 당시 <씨네21>과 만난 이두용 감독은 과거 사건에 관해 “한창 젊을 때라 더 울분이 컸고 그냥 영화계를 떠나고 싶었다. 그런데 누군가의 밀고 탓에 그렇게 됐다고 생각하니까 오기가 생겼다”며 이 일이 <피막>을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고 들려주었다.
<씨네21> 878호 2012년 한국영상자료원 이두용 특별전
2012년 10월26일부터 11월23일까지 한국영상자료원 시네마테크KOFA에선 이두용 감독의 특별전이 열렸다. 무려 38편의 연출작이 상영됐다. 이두용 감독은 당시 특별전을 두고 “반평생 영화작가로 살아 행복”했으며 “은퇴란 없고 앞으로도 끊임없이 영화 만들기에 노력하겠다”라고 소감을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