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에세이] 순종 너머의 청춘과 성장, <바튼 아카데미>가 학교에 ‘갇힌’ 아이를 일으켜세우는 방식이 촉발한 기억에 대하여
2024-02-23
글 : 이자연

내가 다닌 고등학교 음악 선생님 이름은 빠올로였다. 학년 초 이탈리아 유학 시절 이름으로 자신을 불러달라는 자기소개를 한 뒤 학생들은 그의 실명을 잊은 채 지냈다. 빠올로는 이런 말을 자주 했다. “우리 딸은 꼭 실업계 고등학교를 보낼 거야. 이런 일반고 절대 안 보내.” ‘이런 일반고’는 무엇일까. 우리 학교는 지역에서 공부 잘하는 아이들이 모이는 곳으로 유명했다. 어른들이 만든 규제를 의심 없이 순응했고 청소 시간에 꾸역꾸역 흘러나오는 영어 방송을 무시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그러는 사이 우리는 베토벤 가곡 (그대를 사랑해) 원곡을 암송하는 음악 수행평가를 치렀다. 이히 리베 디히 조 비 두미 암 아벤트 움트 안 모르겐. 40명이 조금 안되는 아이들이 한명씩 차례로 나와 노래를 불렀고 한명의 낙오 없이 외계어 같은 가사를 악착같이 외워왔다. 칭찬을 기다리던 착한 아이들을 바라보며 빠올로가 물었다. “여기 이 노랫말 뜻 아는 사람 있어? 가사는 죄다 완벽하게 외워왔는데 왜 이게 무슨 의미인지 묻는 사람이 없니?”

<바튼 아카데미>는 1970년의 혼란에도 크게 흔들리지 않는, 부유한 가정의 자제들이 모인 고등학교 바튼 아카데미가 배경이다. 심술궂은 역사 교사 폴에게 좋은 성적을 받지 못한 학생들은 그에게 온갖 험담을 쏟아붓지만 폴은 역사의 진정한 즐거움을 체득하지 못하는 아이들이 그저 한심할 뿐이다. 영화 속 바튼맨들은 순하다. 어른들에게 쉽게 순응하고 순종적이다. 크리스마스 연휴 동안 집에 갈 수 없는 상황에 분노해 담배를 피우거나 싸움을 저지르는 일탈 기회를 엿보다가도 도서관 청소라는 겁박 앞에서 빠르게 사죄한다. 학교 밖으로 나가 바튼맨이라는 정체성을 밝힘과 동시에 ‘철부지 도련님’이라는 멸칭을 듣는 것도, 폴이 “바튼맨은 베트남전쟁에 가지 않아. 코넬에 가지”라는 일갈을 남기는 것도 이를 설명한다. 학교 안 아이들은 온실 속 화초처럼 예측 가능하고 평탄하게 자라왔다. 저항은 10대의 미덕이라 했던가. 이 말에 따르면 바튼 아카데미 학생들은 그 나이대의 자연스러운 치기와는 거리가 멀다. 그리고 빠올로가 말한 ‘이런 일반고’의 속성이란 아마도 이것과 비슷했던 것 같다.

반윤희 신드롬과 싸이월드, <거침없이 하이킥!>과 <커피프린스 1호점>이 아이들을 관통하는 사이 조용한 모범생 사이에도 유행은 번진다. 발목보다 한뼘 정도 짧은 리바이스 카고 바지와 아디다스 후드티. 형형색색 화려한 레스포삭 가방과 아디다스 슈퍼스타 운동화. 손으로 입매를 가리며 웃는 게 공식 포즈가 될 즈음 손재주가 좋은 아이들은 교실 TV다이 뒤편에 헤어살롱을 여는 보부상이 되었다. 물론 학교는 이를 가만히 두고 보지 않았다. 언제부턴가 등교할 때마다 학생부장 선생님이 가방 검사를 실시한다는 소문이 무성했다. 타깃도 랜덤이다. 이 말은 규제의 기준도 딱히 존재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선생님이 보기에 고데기를 들고 다닐 것 같은 아이들, 옷 매무새가 공부 정진, 폐관 수련과는 거리가 멀어 보이는 아이들의 가방을 강제로 열어젖혔다. 다른 친구들의 뜨거운 시선을 감내하는 것도, 땅 위로 떨어진 물건을 주워담는 것도 그 학생의 몫이다. 여기저기서 볼멘소리가 높아질 즈음엔 또 다른 소식이 업데이트되었다. 누가 뺨을 맞았네, 그래서 귀에서 피가 났네 하는 이야기가 들려왔고 그렇게 아이들은 이전보다 더 가방 문을 쉽게 열었다.

평화로운 불안이 들쑥날쑥 이어지던 어느 날 경제 과목의 A 선생님이 씩씩거리며 교실에 들어섰다. 그는 학교에서 유일하게 야간자율학습을 진짜 자율로 운영하는 선생님이었다. 몇몇 아이들은 존중받는 느낌을 선물처럼 여겼고, 또 몇몇 아이들은 방치당했다며 담임을 비난했다. 그는 우리에게 가방 검사에 대한 의견을 나열하기 시작했다. 수업은 뒷전이었다. 일생일대의 전투를 치르고 온 전사처럼 분노로 콜록거렸다. 한참 열변을 토하던 선생은 진짜 분노해야 할 사람을 찾았다는 듯 우리를 응시했다. 그리고 가방 검사를 하는 것이 아무렇지 않느냐고 물었다.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너희 정말 괜찮니? 다시 물었다. 여전히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그건 너희 거야. 너희 것을 너희가 사수하지 않으면 누가 지켜주니? 이게 지금 가방만 얘기하는 것 같아?”

그건 내가 고등학생이 되어 처음으로 들은 고등(高等)한 질문이었다. 내가 아니면 과연 누가 나를 지켜줄까. 책상 바깥에 진짜 삶이 있을 거라 믿으며 인내했건만 책상 한가운데에도 내가 답해야 할 질문이 있었다. <바튼 아카데미>의 폴과 앵거스는 크리스마스 방학을 맞아 가까운 보스턴으로 여행을 떠난다. 그곳에서 앵거스는 심신미약, 치매, 망상 등 정신 질환을 앓는 아버지를 찾는다. 미성년자이기 때문에 안전문제로 금지되었던 면회는 폴과의 동행으로 수월하게 이뤄진다. 영화는 선생과 학생에게 둘만의 비밀 ‘앙트레 누’(entre nous, 우리끼리의 이야기)를 만들 기회를 반복해 준다. 전적으로 앵거스가 폴에게 의지하는 방식이다. 보스턴을 향할 때에도, 아버지 면회를 해야 할 때에도, 심지어 크리스마스 파티에 초대받을 때에도 앵거스는 폴의 허락을 받아야 한다. 그런데 이 허락받는 활동은 몹시 능동적이고 독립적이다. 앵거스가 무작정 보스턴으로 떠나버리기보다 보스턴을 가고 싶다고 요청하고, 아버지 면회를 가는 와중에도 임시 보호자를 거리낌 없이 동행시키면서 앵거스는 자신의 입장과 생각을 폴에게 관철시킨다. 논리의 힘이 떨어지고 말주변이 없을지언정 그는 자신이 내린 판단에 쉽게 물러서지 않는다. <바튼 아카데미>는 어쩌다 학교에 ‘갇힌’ 아이를 이런 방식으로 일으켜세운다. 주어진 규율과 제약 안에서 할 수 있는 것을 스스로 생각하고 요구하도록 독려한다. 다시 나의 학창 시절로 돌아가볼까. A 선생님이 우리에게 원한 것은 가방을 열지 않는 것이었을까. 교문 앞에서 선생님과 맹렬히 싸우길 바랐을까. 그보다는 자신의 생각을 명확하게 말하는 것. 납득되지 않는 것에 대해 순순히 따르지 않을 것. 모르는 노래 가사의 뜻은 질문할 것. 이 당연한 것들을 바랐을 것이다. 평범한 여느 날처럼 흘러갔지만 돌이켜보면 학교에서 절대 가르쳐주지 않는, 선생님과 우리의 앙트레 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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