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29일 서울 성수동에 문을 연 ‘무비랜드’는 MZ 소비자에게 사랑받는 브랜드 디자인 회사 ‘모베러웍스’에서 운영한다. 그만큼 부티크 호텔 같은 세련된 분위기를 자랑하며 오렌지색을 키 컬러로 써 내부에 아늑함을 더했다. 전체 3층 규모로 1층은 매점과 티켓 부스, 2층은 라운지, 3층은 상영관인 구조다. 운영시간은 목요일에서 일요일, 오후 3시부터 밤 10시까지다. 핫 플레이스가 밀집한 동네에 터를 잡은 무비랜드는 과연 얼마만큼 사람들의 발길을 모을 수 있을까. 새로운 극장은 관객을 기다리고 있다.
무비랜드 극장주 모춘, 소호 인터뷰 - '이야기’란 키워드가 중요하다
서울 성수동의 젊은 극장주를 상상하면 소위 힙한 공간에서 커피 한잔 마시며 영화란 무엇인가에 대해 종일 노닥대는 모습을 떠올릴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난 3월12일, 개관 3주차에 만난 무비랜드 극장주 모춘과 소호는 청소하고 회의하느라 바빠 전날 열린 아카데미 시상식도 챙겨보지 못했다고 털어놨다. 라인프렌즈에서 디자이너와 기획자로 일한 모춘과 소호는 2019년 브랜딩 스튜디오 모베러웍스를 차린 뒤 2년간의 준비 끝에 극장 사업으로 비즈니스를 확장했다. 어떻게 극장이 존폐 위기를 겪던 코로나19 시기에 극장주가 되기로 결심한 걸까. 왜 편집숍이 아닌 극장일까. 궁금증을 가득 안고 이들에게 대화를 청했다.
- 야구 팬의 최종 꿈은 구단주란 말이 있지 않나. 시네필이라서 극장주가 되고 싶었던 걸까.
모춘 영화를 좋아하긴 하지만 시네필이라는 말은 거창하다. 온라인을 중심으로 활동하면서 물리적인 공간을 갖고 싶다는 마음이 커진 게 먼저였다. 사업적으로 다음 단계에 들어서야 할 시기에 놓이면서 우리 팀의 정체성인 ‘이야기’를 고도화할 필요성을 느끼기도 했다. 영화는 이야기의 총체이고, 극장은 이야기를 파는 곳이니 자연스럽게 극장 사업을 해보자는 쪽으로 내부에서 의견이 모였다. 영화 업계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 보니 코로나 상황에도 일단 뛰어들었다. 그리고 우리는 상상을 현실로 옮기는 과정에서 엄청난 시련을 겪는다. (웃음) 각종 행정절차와 민원 처리 업무가 그렇게나 많을 줄 상상도 못했다. 3층짜리 건물의 건축과 인테리어를 끝내는 데 2년, 상영 소스 문제를 해결하는 데 1변인이기에 보여줄 수 있는 다른 무언가가 있다고 믿는다.
- 구작 상영이 원칙이다. 그래서 3월 상영작으로 모춘이 큐레이션한 <대부>와 <빽 투 더 퓨쳐> 시리즈, <개들의 섬>을 선보였다. 이 기준대로라면 흥행작 <파묘>와 곧 개봉하는 <범죄도시4>를 틀지 못하는 건데 수익성 측면에서 아쉽진 않나.
모춘 메이저 업체에서 신작 배급을 제안했지만 거절했고 후회도 없다. ‘이야기’란 키워드가 그만큼 중요하기 때문이다. 앞으로 우리 팀이 궁금한 인물을 매달 큐레이터로 선정해 그가 영향을 받은 작품 4편을 상영할 계획이다. 4월엔 크리에이터 문상훈씨가 주인공이다. 브랜딩을 하면서 확실히 배운 게 하나 있다. ‘저 회사는 이러이러한 가치와 메시지를 전달하는 곳이야’라는 확고한 인식이 생기면 사람들은 그 회사가 하는 일에 기꺼이 돈을 지불한다는 것이다. 당장은 큐레이션 상영작만으로 유지가 가능할까라는 의문이 들 수도 있겠지만 우리 식으로 무비랜드의 브랜드 정체성부터 구축해나갈 것이다.
소호 새로운 경험을 원하는 사람들에게 통할 거라고 생각한다. 요즘 극장에서 만날 수 없는 영화를 보러 이곳을 찾아와서 티켓 부스에서 표를 받고 2층 라운지에서 구경하다가 3층 상영관으로 올라가는 전 과정이 관객에게 특별한 기억으로 남는다면 무비랜드는 다시 찾고 싶은 매력적인 공간으로 자리 잡을 것이다.
- 올해 계획이 궁금하다.소호 3월부터 1년 동안 왓챠가 선정한 영화를 무비랜드에서 트는 캠페인을 진행한다. 이번 프로젝트처럼 뜻이 맞는 브랜드에 공간을 대여해주는 방식을 장기적인 수익모델로 가져가려 한다. 극장이라는 커뮤니티가 주는 유대감과 소속감을 관객들에게 심어줄 방법을 연구해서 재방문율을 높이고 안정되면 멤버십 운영도 해보려 한다. 어떻게든 버티고 유지해서 1주년을 맞고 싶다. 그때 <씨네21>이 다시 취재와줬으면 좋겠다.
1층 입구의 티켓 부스. 극장주 모춘은 직원과 관객이 자그마한 틈 사이로 티켓을 주고받던 그 시절의 정을 지금 관객도 느꼈으면 하는 마음으로 이 공간을 만들었다. 온라인으로 예매한 관객은 이곳에서 이름을 말하면 간단한 이용 안내와 티켓을 받을 수 있다. 키오스크를 이용한 전자 발권이 추세인 가운데 이러한 직접 수령 방식은 젊은 관객에게 이색 체험으로 다가간다.
1층 매점 옆에 붙은 기념품숍. 여기서는 스티커, 머그컵, 배지 등 모베러웍스가 디자인한 위트 있는 굿즈를 구매할 수 있다. 그중 으뜸은 유료 실크 프린트 서비스다. 선택한 그래픽 문구를 개인 소장품이나 판매하는 티셔츠, 가방에 찍어달라고 요청하면 직원이 즉석에서 제작해준다. 이런 식의 ‘놀이’는 무비랜드의 차별점 중 하나다.
2층 라운지는 “대기하는 시간이 지루하지 않도록”(모춘) 구성했다. 선반에는 마스코트인 새 형상의 캐릭터 ‘필름모조’를 비롯한 각종 “수작업 조형물”을 채워넣어 구경하는 재미를 살렸고 의자와 소파는 미감과 사용감을 고려해 특별 제작했다. 앞으로도 무비랜드는 ‘머무는 즐거움’을 강점으로 키워나갈 계획이다.
피라미드 내부에 들어와 있는 듯한 3층 상영관은 30석 규모다. 스크린은 블룸즈베리랩, 서버는 돌비 IMS 3000, 오디오는 QSC 3WAY 시스템을 쓴다. 특히 심혈을 기울인 것은 의자다. 보통 상영관 의자보다 2배 비싼 프리미엄 가죽 의자를 들였고 부드러운 벨벳 천을 덧씌웠다. 작은 스크린이라는 한계를 “앉았을 때의 기분 좋았던 기억”으로 돌파하겠다는 전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