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의 공장을 지나, 영화여 훨훨 날아라
이상한 여름이 찾아왔다. 1관에서는 은하계를 가로지르며 추락과 급상승을 오가는 우주선들이 아찔한 추격전을 벌이고 2관에서는 집채만한 외계인이 지하철을 통째로 집어삼키고, 팔이 1천개쯤 달린 외계인이 검은 옷의 사나이들과 한판 대결을 벌이며 3관에서는 범죄를 미리 예방하는 완벽한 시스템이 마련된 근미래의 사실적 풍경이 한눈에 펼쳐진다. <스타워즈 에피소드2: 클론의 습격> <맨 인 블랙2> <마이너리티 리포트>가 선사하는 이 예사롭지 않은 여름풍경을 만든 진짜 주인공은 그러나, 조지 루카스도, 윌 스미스도, 스티븐 스필버그도 아니다. 감독의 머릿속에 있는 상상의 세계가 관객의 눈앞에 펼쳐지기까지, 이 일련의 작품들은 특수효과를 담당한 ILM(Industrial Light+Magic)이라는 마법사의 손을 통해 세상과 조우할수 있었다. 1975년, <스타워즈> 시리즈를 구상하던 조지 루카스의 야심 아래 탄생한 이후 지난 27년간 가장 파워풀한 ‘디지털이펙트하우스’로서의 명성뿐 아니라 실력까지 유지하고 있는 ILM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그들이 만들어낸 꿈의 장관들과 사랑스러운 피조물들을, 최근 <스타워즈2>를 끝내고 의 막바지 작업이 한창인 그 마법사의 성으로 직접 찾아들어가 살펴보았다.
“어떤 이가 상상할 수 있는 것은 다른 이가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이다”(Anything one man can imagine other men can make real)- 쥘 베른
위풍당당한 금문교를 건너 북쪽으로 20여분 정도 달려간 조용한 도시 산 라파엘, 커너가 3160번지에 위치한 ILM(Industrial Light+Magic)은 ‘27년 전통의 세계 최강 특수효과업체’라는 그들의 명성과 걸맞지 않게 어딜 둘러봐도 그 흔한 현판 하나 찾아볼수 없었다. 하긴 MIB(맨 인 블랙) 본부도 그렇지 않았던가. 그저 무심한 뉴욕의 회색건물로만 보이는 그 안에 지구로 모여든 각양각색의 외계인들이 시끌벅적 입국심사를 기다리고, 상황모니터 넘어 잠복근무중인 마이클 잭슨이 처량한 표정으로 “저는 언제 정식요원으로 임명시켜주실 건가요?”라고 묻는 기막힌 풍경이 숨어 있으리라고 그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동네 도서관 같은 야트막한 1층짜리 건물이 미로처럼 얽힌 ILM의 외관 역시 그 옛날 은하계의 치열한 전투나 익룡이 날아다니고 공룡이 걸어다니는 쥐라기 시대의 진풍경을 만들어내는 곳이라고는 쉽게 상상하기 어려울 만큼 화장기 없는 첫인상을 남겼다. 다만 심드렁하게 철제의자에 앉아 신문이나 읽던 MIB의 경비원과 달리 ILM의 현관을 지키는 청년은 꽤나 꼼꼼하게 방문객의 신원을 체크하고 가슴팍에 유치원 아이들 같은 이름표를 붙여 들여보낸다는 것을 제외한다면.
괴짜집단, <스타워즈>를 만들다
1975년, 로스앤젤레스 반나이스공항 근처에는 이상한 건물 하나가 들어섰다. 뭐하는 곳인지 도저히 감을 잡을 수 없는 이곳에는 한무리의 젊은이들이 쉴새없이 들락날락거렸고 밤새 불이 꺼지지 않는 날이 태반이었다. 무슨 ‘밤샘기도’ 종교집단도 아니고 평범한 노동자들로 보기에도 뭔가 이상했다. 출퇴근시간도 일정치 않았으며 태도나 복장상태 역시 심상치 않았다. 이상한 장비들이 들어가고 나가고 뭔가 ‘쿵덕쿵덕’ 만들어지는 소리가 들릴라치면 가끔 흥청망청파티가 열리기도 했다. 그리고 1년 반 뒤, 이 괴짜집단은 자신들을 닮은 희한한 물건 하나를 세상에 내어놓았다. 지금은 특수효과사의 고전이 되어버린 조지 루카스의 <스타워즈>였다.
잠시 1920년대 초반으로 거슬러올라가보자. 당시 몸집을 키워나가던 대부분의 할리우드 거대 스튜디오들은 로케이션에 들어가는 경비를 절감시킬 목적으로 무대장치, 무대도구, 축소모형들을 제작하는 스튜디오 내 자체 특수효과 작업소를 운영했다. 그러나 1950년 대법원이 영화의 제작과 상영을 분리하는 법을 통과시킨 이후 독립영화사들은 스튜디오의 도움없이도 야외촬영을 통해 자유스럽게 영화를 만들 수 있게 되었다. 물론 관객 역시 더이상 스튜디오가 붕어빵 찍듯 찍어내는 단조로운 세트화면에 만족하지 않았다. 이때 위기에 몰린 대형 스튜디오가 제거대상 1호로 삼은 것이 바로 특수효과부였다. 세트촬영의 붐과 함께 일자리를 얻었던 특수효과 기술자들은 하루아침에 길 밖으로 내몰리게 된 것이다. 젊은이들은 더이상 특수효과 따위에 관심을 두지 않았고 이들의 기술적 노하우 역시 그렇게 길 위로 흩어졌다.
하여 1975년, 두 번째 영화 <청춘낙서>의 성공으로 스튜디오의 신임을 얻은 조지 루카스가 ‘옛날옛날 은하계에서’ 탄생한 “현대의 신화” <스타워즈> 시리즈를 만들고자 했을 때 그의 꿈을 가시화시킬 수 있는 방법은 전무했다. 이것이 조지 루카스가 자신만의 새로운 특수효과 작업소인 ILM을 차릴 수밖에 없었던 이유였다. 존 딕스트라, 데니스 머렌, 스티브 거얼리 같은 젊은 기술자들이 “조지 루카스란 감독이 <스타워즈>란 영화를 제작하기 위해 사람을 모집하고 있다”는 말을 듣고 LA로 몰려들었다. 그들에게는 과거 특수효과 기술자들과 같은 현장경험은 없었지만 넘치는 에너지가 있었고 1년 반의 끊임없는 도전과 시행착오 끝에 <스타워즈>를 탄생시킬 수 있었다. 정교하게 제작된 모형이나 다채로운 캐릭터를 비롯 ILM에서 최초로 만들어낸 모션컨트롤 시스템을 이용해 스크린을 매끄럽게 가로지르며 날아가는 우주선 같은 <스타워즈>의 장관은 관객으로 하여금 진심으로 ‘새로운 시대의 도래’를 열광케 했다. 루카스가 안전하게 다음 작업에 착수할 수 있었던 것은 물론 ILM의 지붕 아래 모여들었던 사람들이 흩어지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물어볼 필요도 없음이다.
1978년 LA에서 샌프란시스코의 산 라파엘로 옮겨진 뒤 ILM은 수많은 창조적인 기술혁신과 함께 시각효과 부분의 진화를 주도했다. 미니어처, 모델링, 매트페인팅, 블루스크린이나 특수분장 같은 고전적 특수효과의 바탕 위에 모션컨트롤 카메라의 도입이나 아날로그 형태의 합성기술인 옵디컬합성 등 진보적인 특수효과 기술을 발전시키는 개척자의 역할을 마다하지 않았고 80년대 이후부터는 몰핑이나 인벨로핑 그리고 필름스캐닝 등의 소프트웨어 기술을 발전시켜 실사영화에 컴퓨터그래픽과 디지털 이미지를 도입하는 것을 주도했다. 그렇게 ILM은 지난 27년간 14번의 아카데미 시작효과상과 16번의 기술공로상을 수상하며 관계자들에게는 특수효과 모델의 모태로, 관객에게는 꿈을 눈앞에 펼쳐보여주는 마법사의 집으로 ‘가문의 명성’을 더해왔다.
<맨 인 블랙2>, 개성있는 캐릭터들의 집합
다크베이스가 위엄있는 첫 인사를 건네는 좁은 통로를 통과하면 마치 대학 복도 같은 공간이 펼쳐진다. 복도를 중심으로 앙쪽에 다닥다닥 붙어 있는 작업실에는 한명 또는 두명의 직원들이 분주히 뭔가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프로듀서, 아트디렉터, 모형제작자, 무대기술자, 애니메이터, 편집기술자, 카메라 오퍼레이터 등을 포함한 공식적인 직원은 1400명 정도지만 실제로 ILM의 작업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대략 2천명 규모. 이들에게 가장 시급한 작업은 7월4일 미국 내 개봉을 앞둔 <맨 인 블랙2>다. 전편 마지막에서 자신의 기억을 소멸시켜주길 바랐던 요원K(토미 리 존스)는 평범한 우체국 직원 케빈으로서의 삶을 살고있다. 이미 베테랑 요원으로 자리잡은 요원J(윌 스미스)는 K를 찾아가 MIB에 대한 기억을 찾아주려 애쓴다. 그리고 두 사람은 다시 팀을 이루어 지구에 침입한 악녀 셀리나와 그의 무리들과 한판 대결을 펼친다.
45∼50명 정도의 애니메이터들이 10개월가량 작업한 이 영화는, 스탭들이 개봉 때쯤이면 이미 어딘가로 사라질 것을 대비하여(ILM은 하나의 프로젝트가 끝나면 작업에 참여했던 직원들에게 한달 이상의 유급휴가를 허한다) 세계 언론을 미리 불러모았다. “여전히 작업중”이라는 이유로 33분 정도로 편집된 <맨 인 블랙2>의 일부를 공개한 소니픽처스는 ILM 자체 시사실에서의 영화상영 뒤 취재진들을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마법사들의 방’으로 안내했다. <맨 인 블랙2>에 등장하는 모든 외계인 캐릭터들의 컨셉을 총괄한 팀 맥로글린은 <맨 인 블랙2>에서의 가장 큰 차별점은 “단순히 ‘피조물’(creature)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각각의 명확한 태도(attitude)를 가진 캐릭터로서의 성격을 확고히 했다는 것”을 꼽았다.
이중 애교스런 꽃 한 송이를 머리에 달고 있지만 뉴욕의 지하철 한량을 통째로 삼켜 으스러뜨리는 놀라운 식성을 가진 제프나 지구에 떨어지는 날 빅토리아 시크릿 광고를 본 뒤 속옷 모델 같은 육감적 몸매로 변신한 최대 악녀 셀리나, 배낭에 쌍둥이 얼굴을 담고 다니는 ‘머리 두개 외계인’ 등이 가장 눈길을 끄는 캐릭터. 전편에 이어 더욱 마초적인 모습으로 등장하는 웜가이들이나 더 시끄러워진 강아지 프랭크 외에도 대두맨, 옥수수얼굴, 로버트문어, 상어입, 눈 하나 혹은 셋 달린 외계인 등도 모두 한 캐릭터당 몇달 이상의 작업을 거쳐 탄생되었다. 제프의 경우만 해도 “너무 위협적이지는 않게”라는 제작진의 요구에 따라 15버전 이상의 기초 드로잉이 만들어졌을 정도다.
리듬앤휴에서 일하다 7년 전 ILM으로 적을 옮긴 스위스 출신의 TD(기술감독) 나타샤 드보는 블루스크린에서 촬영된 실사와 CGI(컴퓨터생성 이미지)를 배경 위에 합치고 대강 2300가량이 사용되는 여러 이펙트들의 방향이나 질감 등을 계산하고 랜더링하는 기술적 과정 전체를 책임졌다. 최근 ILM 웹사이트(www.ilm.com)에 자신의 단편 를 선보이기도 했던 ILM의 수석 시각효과슈퍼바이저 톰 버티노는 “거의 모든 작업은 32개 이상의 과정을 거쳐서 완성된다. 어떤 숏은 랜더링에 꼬박 하루가 걸리기도 한다”며 고단한 작업에 대한 푸념을 털어놓다가도 “이 모든 것들이 가능한 것도 바로 여기 모인 정말 능력있는 사람들이 시너지를 일으켰기 때문”이라며 ILM의 ‘맨파워’에 대한 자랑을 잊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