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묘>는 미국행 비즈니스 클래스에 탑승한 내가 지금껏 본 가장 매력적인 두 인물에게서 시작한다. 영화의 시놉시스나 트레일러를 미리 접하지 않았더라면 커다란 스크린에 등장한 두 인물을 한국인 무녀와 그 제자라고 여기지 않았을 것이다. 두 사람은 망자와 소통하는 법을 아는 사람들이라기보다 흡사 런웨이 모델에 가까워 보인다. 이들은 고급 패션잡지에서나 볼 법한 인물과 유사하다. 장재현 감독의 영화에서 이런 놀라움은 겨우 시작에 불과하다.
우리는 이내 이화림(김고은)과 윤봉길(이도현)이 한국계 미국인 가족의 부름으로 갓 태어난 아기에게 일어나는 기이한 현상을 밝혀내기 위해 미국에 왔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화림은 원혼이 그 가족을 쫓고 있다는 것도 알아낸다. 영화의 롤러코스터는 이제부터 시작이다. 무녀가 말하길 불길한 일은 이미 아기의 아버지에게도 일어나고 있다고 한다. 아기의 어머니는 귀를 의심하지만 관객이 이미 짐작하듯 이 무당은 그저 그런 보통의 무당이 아니다. 화림은 가족들을 훼방놓는 원혼을 없애줄 것을 약속한다. 한국으로 돌아온 화림은 묫자리 판매 전문인 지관 상덕(최민식)과 장의사 영근(유해진)과 만나 아기에게 깃든 원혼 퇴치를 도와달라 부탁한다. 이것이 악몽의 시작임을 그들이 깨닫는 건 오래 지나지 않아서다.
공포를 드러내는 두개의 방식
내게는 <파묘>를 보고 싶었던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첫 번째 이유는 내가 공포영화를 좋아해서다. 시네필은 호러 장르를 낮춰 보는 성향이 있다. 공포영화는 관객을 놀라게 하는 경우가 거의 없고, 이 장르의 영화를 만들어내는 공식은 늘 똑같다. 특히 요즘의 초자연적 현상을 다룬 공포영화는 싸구려 점프스케어나 큰 사운드에 의존한다. 하지만 내가 공포영화에 접근하는 방식은 아주 순수하다. 나는 안전한 환경 속에서 위험을 느끼고 싶다. 영화관 안에서 가능한 한 큰 소리로 비명을 지르다 보면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고, 잘 만들어진 공포영화는 바로 그러한 경험을 선사한다. 두 번째 이유는 인도네시아 영화관에서 상영되는 한국 공포영화가 극히 적다는 사실 때문이다. 이곳에서 접할 수 있는 한국에서 제작된 콘텐츠는 <더 문>이나 <범죄도시> 시리즈 같은 대형 스펙터클영화 아니면 드라마 정도다. 정말로 이 영화를 보고 싶었던 마지막 이유는 몇몇 사람들이 <파묘>를 내가 보았던 가장 무서운 공포영화 중 하나인 나홍진 감독의 <곡성>과 비교했기 때문이다.
<파묘>의 전반부는 극심한 공포심을 건드리는 면에 있어서 인정할 만하다. 나는 장재현 감독이 긴장감을 조성하는 방식이 아주 마음에 든다. 작금의 공포영화는 악령을 반복적으로 보여줌으로써 영화 속 악역을 무기화하는 경향이 짙다. 개인적으로 좋은 호러 무비라고 생각하는 것은 적절한 때에 악령을 등장시켜 공포감을 자아내는 영화다. 스크린에 드러나는 존재보다 상상 속 존재가 훨씬 더 두렵고 무섭다. 그래서 오니의 모습을 전부 보여주지 않기로 한 장재현 감독의 연출은 무덤 아래 시체가 정말로 나를 사로잡으려는 것만 같이 느껴진다. 카메라가 한자리에 머물면서 ‘원혼이 무슨 일을 저지를지’를 기대하게 하는 방식은 영화에서 실제로 어떤 사건이 벌어지는 것보다 위협적이다.
대단히 아쉽게도 <파묘>의 후반부에는 그런 공포가 생략되어 있다. 물론 장재현 감독은 무시무시한 오니의 모습을 창조하는 데 일말의 자비심도 보이지 않는다. 그뿐 아니라 감독은 오니가 어떤 잔인한 일을 저지를 수 있는지를 등장 즉시 관객에게 보여준다. 그렇지만 이런 장면들은 눈을 뗄 수 없었던 <파묘>의 전반에 비해 긴장감이 떨어진다. 전혀 다른 두 가지 방식의 공포 때문에 <파묘>는 내게 각기 다른 두편의 영화처럼 느껴진다. 후반부에 드러나는 공포는 전반의 스토리와 명백하게 연결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두 내러티브의 변곡선이 매끄럽게 이어지지 않는다고 느끼게 한다. 마치 ‘한국 괴담’이라는 제목의 새로운 시리즈에서 두편의 에피소드를 시청한 것 같았다.
전반적으로 이 영화를 향한 내 기대가 충족되지 못했어도 나는 여전히 <파묘>가 재미난 영화라고 생각한다. 주연배우는 자기 역할을 충실히 수행한다. 최민식은 특별히 뭔가를 하지 않더라도 극적 기운이 감돌고, 김고은은 한국 무당을 설득력 있게 소화해낸다. 나는 김고은이 원한다면 언제든 혼을 불러낼 수 있을 거라고 믿게 되었다. 전에는 본 적 없는 제대로 된 굿판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파묘>는 성공적이다. 무당이 굿하는 장면은 공포영화에서 완전히 새롭지는 않아도 <파묘>의 굿 시퀀스는 너무나 매혹적이어서 영화의 후반부는 신경 쓰이지 않을 정도다. 장재현은 카메라의 위치 선정이나 컷을 편집하여 긴장감은 물론 독보적인 장면으로 만들어 낼 줄 아는 감독이다. <파묘>는 여느 호러 장르가 그러는 것처럼 눈앞에서 악령을 삽으로 파내는 장면보다, 지관이 묫자리를 선정하는 등의 한국 전통의례를 다양한 관점에서 보여줄 때 가장 흥미로운 영화임이 드러난다.
무당의 스타일, 배우의 인지도가 지닌 영향력
<파묘>의 인도네시아 배급사인 피트 픽처스는 지난 4월20일까지 260만명 이상의 관객이 이 영화를 관람했다고 발표했다[1]. 이 수치는 모두의 기대를 넘어선 것이다. 인도네시아에서는 국내영화에 100만명 이상의 관객이 들면 대흥행작으로 간주한다. 개봉 시 한정된 영화관에서 상영되었던 한국의 공포영화가 260만명 이상의 관객수에 도달했다는 사실은 극히 이례적인 일이다. <파묘> 이전에 인도네시아에서 최다 관객수를 기록한 한국영화는 70만명의 관객이 관람한 <기생충>이다[2]. 하지만 <기생충>이 큰 관심을 받을 수 있었던 데에는 나름의 몇 가지 근거가 있다. <기생충>이 칸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했다는 이유도 있지만 이미 인도네시아 전역의 시네필 사이에 이름이 알려진 봉준호 감독의 작품이기 때문도 있었다. <파묘>를 관람한 관객수가 100만명 이상에 도달할 수 있다는 사실은 연출자가 누구인지와 관계없이 인도네시아 관객의 호러 장르를 향한 애호를 분명히 각인시킨다. 이해를 돕기 위해 덧붙이자면 천만 관객을 돌파한 관객수 1위의 자국영화는 <무용수 마을의 대학생 봉사활동>이라는 공포영화다[3].
상당히 오랫동안 인도네시아 영화 관객의 선호는 호러 장르에 치우친 경향을 보여왔다. 조코 안와르 감독의 <사탄의 숭배자>는 2017년 400만명 이상의 관객 동원으로 박스오피스 기록을 깼으며[4], 인도네시아 영화관에서 공포영화는 마를 날이 없었다. 요즘에는 매달 적어도 한편의 공포영화가 개봉한다. 2024년 인도네시아 국내영화의 상위 흥행작 10편 중 8편이 공포영화다. 최근 개봉한 조코 안와르의 신작 <무덤 속의 고통>, 키모 스탐보엘의 <무용수 마을의 바다라우히> 같은 공포영화는 지난 4월11일 개봉 이후 각각 300만명 이상의 관객수를 기록했다[5]. 호러 장르를 향한 관객의 욕구는 현재 진행형으로, 인도네시아 영화 팬들의 식탁에는 언제나 공포영화가 즐비할 것이다. 게다가 인도네시아의 관객들은 화제성을 가진 주류영화에 이끌리는 경향을 보인다. 유행에 뒤처질까 두려워하는 FOMO(fear of missing out) 증후군과 같은 심리는 인도네시아 관객들 사이에 널리 퍼져 있다. 단 이틀 만에 관객 5만명이 <파묘>를 관람했고, 다음날 관객수는 배로 늘었다. 피트 픽처스는 소셜미디어 계정을 통해 <파묘>가 2월28일 개봉 이후 2주도 채 지나지 않아 100만명의 관객을 돌파했다고 알렸다. X(전 트위터)나 인스타그램 같은 SNS 플랫폼에서 이 영화에 대한 긍정적인 리뷰가 공유되면서 개봉 이후 한달도 지나지 않아 200만명의 관객수를 모으는 데 기여했다.
인도네시아에서 <파묘>가 호평받고 있다고 믿는 마지막 근거는 이 영화가 가진 독특한 위상과 K콘텐츠를 향한 인도네시아 사람들의 숭배에 있다. 호러 장르 콘텐츠의 풍성함에도 불구하고 <파묘>는 무당을 쿨하고 힙한 캐릭터로 묘사한 첫 번째 공포영화라는 점에서 도드라진다. 국내영화든 할리우드 제작 영화든 간에 대다수의 공포영화에서 무당들은 <파묘>의 무당만큼 멋있지 않다. 다른 영화의 무당들은 깨끗한 물과 비누를 기피하는 사람들처럼 그려진다. 여타 공포영화에서 이들은 전형적으로 기기괴괴한 모습을 하고 있다. <파묘>의 K팝 아이돌 같은 무당은 이 영화에 독보적인 지위를 부여한다. 바로 이것이 영화의 출연진이라는 이 영화의 가장 큰 매력으로 우리를 이끈다. 최민식은 유명한 배우이기는 해도 인도네시아에서만큼은 누구나 아는 이름이 아니다. 그렇지만 김고은과 이도현은 인도네시아 관객들이 브라운관으로도 자주 접할 수 있는 얼굴이다. 김고은이 출연한 <도깨비> <더 킹: 영원의 군주> <유미의 세포들> <작은 아씨들>은 이미 많은 인도네시아인이 집에서 즐겨 시청한 한국 드라마다.
타이밍이 전부라는 사실 또한 무시할 수 없다. 이도현은 지난해 <더 글로리>와 <나쁜 엄마>의 출연 이후, 인도네시아 사람들에게 새로운 얼굴로 각인되었다. 이도현은 온통 검은색 의상과 장발의 헤어스타일, 놀라운 표정 연기와 멋들어진 타투로 호러 장르에 관심이 없던 관객들조차 이 영화를 즐길 수 있도록 만든 주요한 이유로 자리매김했다. 그의 수려한 외모는 <파묘>의 흥행 가도에서 결코 외면할 수 없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글쎄, 이렇게나 훤칠하고 근사한 남자가 악귀를 내쫓는 장면을 영화관의 커다란 스크린으로 볼 수 있다는데 누가 공포 따위를 신경이나 쓴단 말인가?
필자 소개
찬드라 아디트야 - 작가 겸 영화감독. 현재 집필한 저서 <When Everything Feels Like Korean Drama>의 발간을 앞두고 있다.
[1] https://www.instagram.com/p/C58F9ENSUAk/?utm_source=ig_web_copy_link&igsh=MzRlODBiNWFlZA==
[2] https://www.liputan6.com/regional/read/5547745/geser-parasite-exhuma-jadi-film-korea-terlaris-di-indonesia-dengan-lebih-1-juta-penonton#:~:text=Sebelumnya%2C%20film%20Parasite%20meraih%20sebanyak%20700.000%20penonton%20di%20Indonesia.
[3] https://www.cnnindonesia.com/hiburan/20230109070655-220-897722/kkn-di-desa-penari-jadi-film-indonesia-pertama-tembus-10-juta-penonton
[4] https://seleb.tempo.co/read/1031829/pengabdi-setan-jadi-film-terlaris-2017-geser-warkop-dki-reborn-2
[5] https://id.wikipedia.org/wiki/Daftar_film_Indonesia_tahun_20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