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비드(루이 카렐)가 친구 윌리(라피엘 퀴나르)와 걸어가며 고민을 털어놓는다. 내용인즉 자신의 애인인 플로렌스(레아 세두)에게 도무지 매력을 느낄 수 없다는 것이다. 반대로 그를 열렬히 사랑하는 플로렌스는 데이비드에게 자신의 아버지 기욤(뱅상 랭동)과 인사를 나눌 것을 제안한다. 그렇게 부녀와 딸의 남자 친구, 남자 친구의 친구가 조우하는 상황이 <더 세컨드 액트>에서 펼쳐진다.
‘제2막’이라는 제목처럼 영화는 인물, 배경 설명과 같은 도입부 없이 ‘더 세컨드 액트’라는 레스토랑에 곧장 인물들을 불러모은다. 때문에 이 네 사람이 실은 배우이며 앞서 말한 줄거리가 극 중에서 촬영 중인 영화의 설정이란 사실은 불시의 순간 갑작스레 밝혀진다. 미장아 빔(mise en abyme)이라는 형식 안에서 현실과 가상의 경계를 흐리는 시도는 이미 익숙하다. 다만 <더 세컨드 액트>에선 배우의 발화를 통해 카메라의 존재를 지속적으로 인지시키면서도 외부의 개입을 최소화한다. 가령 배우들이 계획되지 않은 대사, 행동을 할지라도 ‘컷’을 외치는 목소리가 없다. 배우들은 각자의 개인사를 자유자재로 촬영 현장에 끌어들이고 이과정은 중계되듯 롱테이크로 보여진다. 이들의 폭주에 제재를 거는 것도 배우 자신이다. 이들은 자정작용을 하듯 현재 촬영 중임을 고한 뒤다시 데이비드와 윌리, 플로렌스, 기욤으로 분해 극을 이끈다. 이 기묘한 넘나듦이 독특한 유머를 발생시키는 틈새가 된다.
캉탱 뒤피외 감독은 <믿거나 말거나, 진짜야> <디어 스킨> 등 이전 연출작에서 여러 장르적 특색을 섞는 실험을 시행해온 창작자다. <더 세컨드 액트>에선 영화, 영화 제작 과정, 나아가 연기까지 메타적으로 다루고자 하는 의도가 두드러진다. 실제 각본은 정교하게 구성됐을지 모르나 결과물만 놓고 보자면 시간과 장소, 갈등과 같은 기본적인 조건만 갖춰놓고 그 안에서 배우들이 주체적으로 극을 꾸려가는 상태를 지켜보는 모양새가 됐다. 당연하게 혹은 신성하게 여겨졌던 영화의 수많은 요소가 이 과정에서 풍자의 대상으로 변모한다. 제4의 벽도 쉽게 허물어진다. 주연배우들이 돌발 행동을 할때 엑스트라들은 “이것도 영화의 일부야?”라며 조심스레 질문한다. 끝과 시작, 의도와 비의 도, 현실과 가상… 모든 게 모호하고 불확실하게 작동하는 세계. 그 와중에도 카메라는 멈추지 않는다.
제77회 칸영화제 개막작이 상영될 때 극장의 반응은 뜨거웠다. 기욤이 “더이상 이 이상한 영화 못 찍겠다”며 탈주하거나 윌리가 개인적인 가치관을 적나라하게 역설하는 순간마다 관객들의 폭소가 터져나왔다. 하나 윌리의 일부 발언에는 혐오 표현이 담겨 있다. 풍자가 목적이었더라도 소재를 택하고 그것을 전복하는 상황의 묘사는 더 섬세했어야 한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해외평도 다소 갈리는 추세다. 실험적 시도와 아이디어 자체에 찬사를 보내는 한편 영화를 더 세밀하게 다듬었어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프랑스 매체는 대체로 우호적이다. <프리미어>는 “배우들의 케이오 승리를 인정한다”며 이들의 연기력에 찬사를 보냈고 프랑스 주간지인 <텔레마라>는 “이상적이고 흥미진진한 개막작”이라고 평했다. 굴곡진 지점이 존재하지만 그럼에도 목표한 형식적 실험에 충실한 작품임을 증명하면서 <더 세컨드 액트>는 칸영화제의 문을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