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칸국제영화제]
[칸 개막 레포트] 칸영화제는 명예를 안고 미래로 갈 수 있을까?
2024-05-17
글 : 임수연
제77회 칸영화제의 개막 풍경과 다양성 회복을 위한 노력
개막식에 참석한 심사위원 고레에다 히로카즈, 에바 그린, 피에르프란체스코 파비노, 카밀 코탄, 쥘리에트 비노슈, 명예 황금종려상 수상자 메릴 스트리프, 심사위원장 그레타 거윅, 나단 라바키, 릴리 글래드스턴, 후안 안토니오 바요나, 오마르 사이, 에브루 세일란(왼쪽부터).

제77회 칸영화제는 개막 날부터 3일 연속 비가 왔다. 프랑스 남부 해안 도시는 일교차가 크기 때문에 간편히 걸칠 수 있는 아우터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잊었다면 영화제 내내 감기 몸살과 사투를 벌였을지도 모르겠다. 올해는 영화 제가 열리는 팔레 데 페스티벌(이하 팔레)도 다소 한산하지 않을까, 저널리스트 배지를 받거나 상영관 입장을 기다리는 줄도 예년보다 짧지 않을까 기대했지만 궂은 날씨도 칸의 열기를 막지는 못했다. (공식 드레스 코드에 맞춘) 턱시도나 이브닝드레스를 입고 비를 맞으며 티켓을 구하는 이들은 칸영화제에서만 볼 수 있는 진풍경이다.

공교롭게도 며칠째 이어지는 비바람은 올해 영화제를 지배하는 긴장감과도 잘 어우러진다. 이번 칸영화제는 개막 전부터 프랑스 문화예술계에서 뒤늦게 시작된 미투(#Metoo) 물결이 집결된 상징적인 장소로 주목받았다. 지난해 성폭행 가해 사실이 연이어 폭로됐던 배우 제라르 드파르디외는 오는 가을 재판을 앞두고 있고 최근 프랑스 국회의원들은 공연예술계 성폭행 실태 조사에 동의했다. 5월14일 배우 이자벨 아자니, 쥐디트 고드레슈 등 147명의 여성 인사들은 <르몽드>에 포괄적 성폭력 방지법 제정을 촉구하는 기고문을 냈다. 지난해 조니 뎁의 복귀작 <잔 뒤 바리>를 개막작으로 선정하면서 논란이 됐던 칸영화제는 이제 어떤 방식으로든 정치적 스탠스를 취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 올해 경쟁부문 상영작 22편 중 여성감독 연출작은 단 4편(앤드리아 아널드의 <새>, 코랄리 파르자의 <더 섭스탠스>, 파얄 카파디아의 <우리가 빛으로 상상하는 모든 것>, 아가테 리딩거의 <와일드 다이아몬드>)으로 이는 총 21편 중 7편을 차지했던 지난해보다 퇴보한 결과 라는 평가가 이어졌지만 칸영화제는 <바비>의 그레타 거윅이 미국 여성감독 최초로 심사위원 장으로 호명된 것을 내세우고 있다. 주목할 만한 시선 섹션의 문을 여는 단편영화 <모이 아우 시>는 배우 쥐디트 고드고드레슈가10대 시절 남성 감독들에게 당했던 성폭행 피해에서 시작해 1천여명의 목소리를 담은 다큐멘터리다. 성폭행가해자로 지목된 남성 배우, 감독, 제작자 등 10명의 이름이 적힌 비밀 명단이 존재하고 칸영화제는 이들이 연루된 작품을 경쟁부문 상영작에서 제외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는 소문도 흘러나왔다.

메릴 스트리프에게 명예 황금종려상을 건네는 쥘리에트 비노슈.

이같은 분위기에서 올해 개막식의 하이라이트, 명예 황금종려상의 주인공으로 메릴 스트리프가 호명된 것은 두 가지 의미를 갖는다. 첫째, 심사위원장 그레타 거윅과 명예 황금종려상 시상자 쥘리에트 비노슈 그리고 메릴 스트리프가 한 프레임에 모여 칸영화제가 지지하는 여성 연대를 보여준다. 둘째, 최근 영미권 영화가 강세였던 칸영화제의 경향을 이어간다. 수상자로 등장한 쥘리에트 비노슈는 메릴 스트리프를 “국제적인 보물”이라 수식하며 “당신은 우리가 영화계에서 여성을 보는 방식을 바꾸었다”고 눈물을 흘렸다. 메릴 스트리프는 1988년 <어둠 속의 외침>으로 칸영화제 여우주연상을 받을 당시를 떠올렸다. “나는 이미 세 아이의 엄마였고 곧 마흔살을 앞두고 있었다. 나는 내 커리어가 끝났다고 생각했다.” 또한 심사위원석에 앉아 있던 그레타 거윅에게 <프란시스하>에 자신의 딸 그레이스 거머가 출연했다며 그들 사이의 인연을 복기했다. 특히 결혼과 출산 이후 경력 단절을 맞닥뜨리는 경우가 많은 업계에서 메릴 스트리프의 존재는 많은 여성 영화인이 가능한 미래를 꿈꿀 수 있는 임파워링이 된다.

동시에 이는 미국과 프랑스 영화계의 정치 역학으로도 읽을 수 있다. 최근 칸영화제는 영미권 영화들의 오스카 레이스 시작점 같은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 지난해 황금종려상 수상작 <추락의 해부>와 심사위원대상 수상작 <존 오브 인터레스트> 그리고 칸에서 최초 공개된 마틴 스코세이지의 <플라워 킬링 문>은 모두 아카데미 시상식 작품상 후보에 올랐다. 올해 경쟁부문 상영작 중 절반가량은 영어 영화다. 무엇보다 지난 몇년간 칸영화제가 가장 공들이는 초청 명단은 할리우드가 낳고 성장하고 전설이된 미국 거장 감독들인 것처럼 보인다. 2년 전 <미래의 범죄>에 이어 데이비드 크로넌버그 감독의 신작 <더 슈라우드>가 경쟁부문에서 상영되고,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는 1974년 <컨버세이션>이 황금종려상을 받은 지 50년 만에, <지옥의 묵시록>이 같은 상을 수상한 지 45년 만에 <메갈로폴리스>로 칸을 찾는다. 매체의 변화가 가져온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일 수 있다. 극장 영화의 미래를 묻는 시대에 칸에는 스타가 절실하고 할리우드에는 칸영화제의 오랜 역사가 담보하는 명성이 필요하다.

올해 경쟁부문 심사위원단 9인의 모습.

한편 메릴 스트리프와 쥘리에트 비노슈, 그레타 거윅의 연대는 분명 위대하고 상징적이지만 여전히 배제된 동양인 여성의 자리를 끊임없이 의식할 수밖에 없다. 칸의 진보적인 행보에는 분명한 불균형이 감지된다. 칸영화제 경쟁부 문에 초청된 네명의 여성 중 두명은 프랑스(코랄리 파르자, 아가테 리딩거), 한명은 영국(앤드리아 아널드) 출신이다. 경쟁부문 상영작으로 고려되던 어느 아시아영화는 지아장커의 신작이 대신 리스트에 오르면서 최종 명단에서 제외됐다는 소문이 들린다. (아시아영화는 일종의 쿼터제가 작용하기라도 한단 말인가?) 2007년 여우주연상 수상자이자 2014년 심사위원으로 한번 더 레드카펫을 밟았던 전도연의 신작은 올해 칸영화제에 초청되지 않았다. 지금까지 칸영화제가 수상자를 심사위원으로 부르고 또 그들의 차기작을 영화제에 초대하는 그림을 수없이 봤지만 이러한 예외도 존재한다.

공교롭게도 올해 팔레 및 크루아제트 거리 일대를 도배한 공식 포스터 역시 서구권이 소비하는 아시아영화의 한계를 보여준다. 올해 공식 포스터는 1991년 칸영화제 비경쟁부문에서 상영된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8월의 광시곡>의 한 장면이다. 히로시마 원폭의 희생자였던 할머니가 전쟁과 폭력에 맞선 사랑에 대한 믿음을 손자 세대에게 전하는 이야기를 담았다. 히로시마 원폭 피해자로서의 일본을 휴머니즘적인 필치로 포장한, 자국 중심주의적인 시선에 대한 비판을 피할 수 없는 영화가 칸영 화제의 공식 포스터를 장식해도 괜찮을지, 충분히 문제제기가 가능하다. 칸영화제는 올해도 정치적 올바름과 다양성, 반전과 휴머니즘을 표방하고 있지만 표면적 이미지만 취하고 그본질을 파고들지 못하는 건 아닌지, 누군가는 물어야 한다. 오랫동안 특유의 보수성으로 비판받았던 칸영화제가 과거를 쇄신하고 진보를 택하겠다는 정치적 입장을 취한다면, 그 선택을 이번 시상식을 통해 보여줄 의지가 굳건하다면, 이는 개막식의 반쪽짜리 페미니즘을 넘어선 무언가가 되어야 할 것이다.

<퓨리오사: 매드맥스 사가> 칸영화제 현지 반응

퓨리오사의 전사를 담아 새로운 에픽의 시작을 알리는 <퓨리오사: 매드맥스 사가>가 5월15일 오후 7시(현지 시각 기준) 칸영화제 뤼미에르 극장에서 최초 공개됐다.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 이후 9년 만의 프리퀄이다. 전세계 기자들과 영화인, 일반 관객들은 상영이 끝난 뒤 7분 넘게 이어진 기립 박수로 화답했다. 전반적인 반응은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만큼의 걸작은 아니지만 충분히 훌륭한 블록버스터란 호평이 주를 이뤘다. <인디와이어>는 “<퓨리오사: 매드맥스 사가>가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보다 더 나은지는, <퓨리오사: 매드맥스 사가>가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를 보다 더 좋은 영화로 만든다는 명백한 사실보다 덜 중요하다”며 이번 영화가 역대 최고의 프리퀄 중 하나라고 극찬했다. “사구를 질주하는 와중에 디테 일에 과도한 주의를 환기시키는 것은 정확한 교향곡처럼 펼쳐지는 영화의 리듬을 방해한다. 특히 <퓨리오사: 매드맥스 사가>가 맥시멀리즘 복수극으로 휘어지고 그 폭력성이 드라마와 불가분의 관계로 이어지며 1천대의 엔진이 한꺼번에 흔들리는 전율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종종 박찬욱 감독이 떠오르기도 했다.” <인디펜던트>는 <퓨리오사: 매드맥스 사가>가 “속도와 우아함 그리고 폭발적인 폭력을 결합한 샘 페킨파의 서부극을 모방”하고 때때로 찰스 디킨스의 작품을 닮았다고 평했다. 반면 전편만큼 만족스럽지 않은 것을 넘어 <퓨리오사: 매드맥스 사가>에 실망감을 드러낸 매체도 일부 있었다. <타임>은 “이야기를 하는 것 같지 않은 스토리 텔링으로 가득 차 있다”며 시나리오의 문제를 지적했다. “감금됐던 퓨리오사(애니아 테일러조이)가 탈출하고 몇년 뒤, 예전의 납치범들은 그가 10년 전 그들의 손아귀에서 벗어났다는 것을 이제야 깨달은 것처럼 과장된 충격으로 반응한다.” <할 리우드 리포터>는 이번 편의 중심 빌런인 디멘투스(크리스 헴스워스)의 권력 투쟁 서사가 지지부진하고 흥미롭지 않다고 지적했다. “퓨리오사가 디멘투스와 맞붙게 되는 클라이맥스가 오기까지 너무 오랜 시간이 지연”되는 것이 가장 큰 문제이며, “디멘투스와 임모탄 조의 시타델을 장악하기 위한 음모가 너무 지저분하고 디테일이 부족해 마치 사막을 오가는 몬스터 트럭의 철거 같다”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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