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씨네21 추천도서 - <소설 보다: 여름 2024>
2024-06-18
글 : 이다혜
사진 : 오계옥
서장원, 예소연, 함윤이 지음 / 문학과지성사 펴냄

트랜스젠더인 토미는 성별정정을 위한 인우보증서를 필요로 한다. 그가 떠올린 사람은 오스틴. IT스타트업 회사에서 함께 일했던 오스틴은 불미스러운 일로 회사를 그만두면서 외모콤플렉스를 해소하기 위한 사지연장술을 받은 참이다. 그에게 인우보증서를 받을 수 있을까? 서장원의 <리틀 프라이드>는 트랜스 남성으로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삶의 조건과 그 조건이 요구하는 것들 사이에서 갈등하는 토미를 주인공으로 한다. 외모와 관련된 콤플렉스를 다루는 이야기가 주로 여성의 사정을 다루어왔다면 <리틀 프라이드>는 트랜스 남성을 중심에 두고 이야기한다. 이 소설에는 보여지는 이를 타자화하지 않는 스트립쇼에 대한 이야기가 등장하는데, 자신의 몸을 긍정한다는 일이 갖는 복잡한 함의를 생각하게 한다. 서장원은 책에 실린 인터뷰에서 “누구도 자신에게 매혹되지 않는데, 오로지 다정함만으로 프라이드를 가질 수 있을까?”라고 묻는다.

<그 개와 혁명>은 수민의 아버지 태수씨의 죽음을 둘러싼 사람들의 정경을 그린다. 태수씨는 운동권이었으며, 그런 이유로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교도소 생활을 길게 한 지인이 있는 사람이었다. “유연한 노동문제에 대해 비판하면서도 불가산 노동인 가사 노동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하지 않”는 옛날 사람이기도 했다. 예소연은 인터뷰에서 “제 나름의 방식으로 그 힘이 잔뜩 들어간 목소리를 해석하고 싶었어요”라고 말하는데, 한편으로는 이전 운동권 세대 혹은 그 세대가 대표하는 거대 담론의 파편을 짊어지고 살아가는 다음 세대가 느끼는 피로감에 대해, 또 가능성에 대해 자분자분 펼쳐 보인다. ‘세대’보다 중요한 ‘우리’의 이야기로 논지를 확장시키면서.

함윤이의 <천사들(가제)>은 무궁화호를 타고 부산에 가는 ‘나’의 상황을 보여주며 시작한다. 부산에 가면 단짝 친구인 항아를 만나게 될 테고, 항아가 쓴 각본이 바로 <천사들(가제)>이다. 부산으로 향하는 기차 안에서 ‘나’는 내내 영화 오디션을 심사하는 꿈을 꾸는데, 그 꿈이 닿는 곳은 현실의 장례식장이다. <천사들(가제)>은 아름답고도 슬픈 꿈을 닮은 소설인데, 저자 인터뷰를 읽으면 복잡하게 애틋한 느낌을 받는 이유를 조금은 짐작할 수 있다. “제 안에서 천사와 사랑 그리고 애도와 죄의식 또 수치심 등이 서로 그리 다르지 않다고 말하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마음속에 미처 정리하지 못한 감정을 끌어안고 오늘을 살아가는 이들을 위한 최소한의 애도 의식과도 같은 이야기.

함윤이, <천사들(가제)> 중에서, 135쪽

나 한번 안아줄래? 항아는 바로 답한다. 그럼, 당연하지. 우리는 양팔을 뻗어 서로의 몸을 감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