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비평] 해석의 묘를 마음껏 즐기자, 성공적인 포스트 #미투 대중 서사 <파일럿>을 향유하는 몇 가지 경로
2024-08-08
글 : 손희정 (문화평론가)

여장 남자 코미디. 그 ‘낡은 이야기’가 조정석의 얼굴을 입고 돌아왔다. 경쾌하고, 웃긴다. 이 황당무계한 영화의 모든 개연성은 배우 조정석이다. 그는 뭘 해도 어쩐지 납득이 된다. <파일럿>의 주인공 한정우도 마찬가지다. 2024년에 여장 남자라니. 조정석이 아니었다면 과연 설득력을 가질 수 있었을까? 우리는 곧 이 질문으로 다시 돌아올 것이다. ‘낡았다’고 말했지만 <파일럿>이 그렇다는 건 아니다. 영화는 여장 남자 코미디의 계보 안에서 장르 관습을 답습하고 또 비틀면서 성공적인 포스트 #미투 대중서사로 자신을 드러냈다.

(한국) 여장 남자 코미디의 계보

한국의 여장 남자 코미디는 196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남자는 안 팔려>(1963)와 <여자가 더 좋아>(1965)는 취직에 실패한 남자가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 여장을 한다는 기본 설정을 안착시켰고, 이후 <남자 식모>(1968), <남자 미용사>(1968), <남자 기생>(1969) 등 ‘남자 시리즈’가 인기를 끌었다. 이는 산업화, 도시화와 함께 전통적인 성규범이 무너지고 있다는 불안 속에서 “바야흐로 여자가 더 먹고살기 편한 세상이 되었다”는 “여성혐오적 시선”을 바탕으로 했다(허윤, ‘1960년대 여장남자 코미디영화를 통해 살펴본 비헤게모니적 남성성/들’, 165~166쪽). 이 집단적 오해로부터 기인한 초조함은 여성성을 마음껏 조롱하는 남자들이 자아내는 웃음과 함께 안전하게 승화되고, 영화 속 남자들은 여장이라는 성장통을 통해 결국 이성애 정상가족의 번듯한 가장으로 우뚝 섰다.

그러나 <파일럿>의 진정한 원본은 대서양 건너편에서 찾을 수 있다. 바로 <투씨>(1982)다. 페미니즘 제2물결의 격동과 이에 대한 백래시가 오버랩되는 자리에서 등장한 <투씨>에서 여장은 새로운 남성성이 실험되는 장이었다. 괴팍한 성격으로 일자리를 잃은 남배우 마이클 도로시(더스틴 호프만)는 여배우 도로시 마이클스로 변신하면서 드디어 배역을 따낸다. 그리고 여장이 열어준 새로운 세계와 함께 여성의 입장을 역지사지하게 되면서 ‘더 좋은 남자’로 거듭난다. 이 작품의 성공 이후 1980~90년대 할리우드에서는 <트윈스>(1989), <스위치>(1991), <미세스 다웃파이어>(1994) 등 다양한 젠더 벤딩물이 등장했다. 이들 작품에서 포스트 페미니즘 시대에 ‘위기에 내몰린 남성’은 여성화의 위협을 극복하면서 재남성화됐다.

이런 영화들은 해로운 남성성(toxic masculinity)의 극복을 모색했다는 점에서 페미니즘의 영향 아래 있었지만, 결국 남성의 억울함을 위로하고 정상 남성의 자격증을 재발행했다는 점에서 퇴행의 위험을 안고 있었다. 포식자이자 체제의 공모자로서 여성을 착취하거나, 혹은 적어도 ‘선량하게 차별’했던 남자들에게는 언제나 두 번째 기회가 주어졌고 남성의 성장 서사 안에서 여성의 이야기는 주변화됐다. 그렇다면 <파일럿>은 어떨까?

‘퀴어 아이’를 텍스트 내부로

영화는 한국항공의 대표 파일럿 한정우(조정석)가 술자리에서 내뱉은 성차별 발언으로 한순간에 ‘나락’으로 떨어진 뒤 재취업을 위해 여장을 하면서 시작된다. 마침 한국항공의 저가항공 계열사인 한에어의 이사인 노문영(서재희)은 자신보다 한참 부족한 동생이 남자라는 이유만으로 본사 대표직을 맡았다는 사실에 분통을 터트리며 한에어 기장의 남녀 성비를 50 대 50으로 맞추겠다고 공언한 참이다. 영화는 명백하게 페미니즘 대중화 물결 및 #미투 이후 남자들은 위기에 처했고 여자들은 (부당하게) 살 만해졌다는 환상을 이야기의 출발점으로 삼는다. 하지만 <파일럿>이 향해 가는 자리는 규범적인 남성성의 재구축은 아니다.

무엇보다 <파일럿>의 강점은 여성 서사의 풍부함과 그를 뒷받침하는 캐스팅이다. “홀로 두 남매를 키우느라 고생한” 어머니(오민애)는 트로트 가수의 팬으로서 인생 2회차를 찍는 중이다. 한선우의 아내(김지현)의 이야기는 “남자가 실패하면 여자에게 버림받는다”는 여성혐오 서사로부터 탈주해 남자의 성공이 어떻게 여자의 관리 노동 위에 서 있는지 탐색하는 공간이 된다. 최강 빌런 노문영 역시 꽤 그럴듯하다. 고착된 성차별 속에서 똑똑한 여자는 성공을 위해 무엇이든 될 수 있다. 각각의 캐릭터가 대단히 새로운 건 아니지만 기존의 재현 관습 안에서 보면 모두가 각자의 카테고리에서 견고하게 구축되어온 스테레오타입과 나름의 대결을 하고 있다. (앞뒤 없이 사랑스럽기 때문에 가장 신화적인 캐릭터는 사실 한정미(한선화)다. 언젠가 ‘한선화 장르’가 논해진다면 한정미는 빼놓을 수 없는 캐릭터일 터다.)

영화는 남성 성장 드라마지만 여성들의 시간에도 적절한 자리를 내주면서 여성 서사로서의 면모를 더했다. 동시에 지금까지 여장 남자 코미디에 있어 텍스트 외부에서 적극적인 해석의 영역으로 남겨져 있었던 ‘퀴어 아이’(queer eye)를 텍스트 내부로 가져온다. 기존 여장 남자 코미디는 다분히 퀴어 혐오적이었고, ‘여장 남자’에 이미 내포되어 있는 퀴어함은 결국 성별이분법과 이성애 규범성으로 봉합되기 때문에 안전하게 향유될 수 있었다.

<파일럿>은 한정우의 아들 시후(박다온)의 존재를 통해 이런 한계를 똑똑하게 극복한다. 시후는 비행기 모형보다는 발레복을 입은 인형을 더 좋아하는 사람이다. 그는 사회적으로 강요되는 남자다움으로부터 벗어나 ‘나다움’을 추구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받는다. 시후의 이미지는 아직 도래하지 않은, 마음껏 이상(queer)할 수 있는 세계로 통하는 균열이자, 이미 지금/여기를 살고 있는 현재의 구상(具象)이다. 덕분에 ‘남자의 여성성’은 희화화되지 않고, ‘여장’은 ‘복장도착’을 넘어선다. 그리고 이런 젠더 배치 안에서 페미니스트이자 노동자로서 좌충우돌하는 윤슬기(이주명)의 섹슈얼리티 역시 확정되지 않은 채 물음표 안에 머물게 된다. 한정(우)미-윤슬기의 조합이 이성애 해피엔딩으로 마무리되지 않는 건 그저 서사의 트렌드일 수도 있고, 레즈비언 섹슈얼리티를 위해 비어 있는 공간일 수도 있다. 이제 우리는 처음 던졌던 질문으로 돌아왔다. 조정석의 캐스팅은 2024년에 도착한 여장 남자가 포스트 #미투 대중서사의 한편으로 주목받을 수 있는 또 하나의 맥락이 된다. 우리는 그가 오랫동안 뮤지컬 <헤드윅>에서 트랜스젠더의 삶을 연기했음을 알고 있다. 한정우가 기자들 앞에서 자신의 정체를 밝히며 가발을 벗어던질 때 우리는 <헤드윅>의 스코어 중 한곡인 <상자 속의 가발>(Wig in a Box)을 떠올리게 된다. 그래서 조정석/한정우의 여자로의 메이크 오버 신은 기존의 여장 남자 코미디에서와는 다른 의미를 갖는다. 한 남자의 ‘여자로의 한시적 몰락’으로서가 아니라 여자 패싱에 성공한 트랜지션의 전시가 된다. 이미 관객들 사이에서 <파일럿>이 페미니즘 영화인가 아닌가에 대한 논쟁은 시작됐다. 하지만 그렇다, 아니다를 답하는 이분법보다 중요한 건 그사이에 놓여 있는 다양한 의미를 해석할 수 있는 풍성한 맥락이 이미 우리에게 주어져 있다는 점일 것이다. 해석의 묘를 마음껏 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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