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모두가 배우 전도연을 안다. 헌신적이고 섬세한 캐릭터에 어울리는 그녀의 얼굴을, 그리고 어느새 강렬한 카리스마와 동격이 된 그녀를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과거에는 누구도 그녀가 스크린의 여왕이 될 것이라고 상상하지 않았다. 처음 배우가 된 계기가 그러했듯, 전도연은 브라운관에 제법 어울리는 스타였다. 하지만 장윤현의 영화 <접속>(1997)을 기점으로 그녀의 활동 반경은 변한다. 생각해보면 <접속>에서 보았던 수현이란 캐릭터는 단순한 멜로드라마적 요소를 따르지 않는다. 누구나 될 수 있을 법하지만 아무도 만난 적이 없는 미지의 인물, 세상을 지배하는 유령과도 같은 투명한 도시의 여자를 그녀는 연기했다.
신작 <리볼버>(2024)를 보러 가는 길에 전도연의 전작들을 떠올렸다. 총기의 이름을 제목으로 내세운 이번 영화에서도 그녀는 현실에 속한 캐릭터로 분한다. 폭력적인 남성들에게 쫓기면서도 약속한 돈과 아파트를 향해 다가가는 인물, 보이지 않는 명예의 성취나 누군가의 복수 따위는 언급하지 않는 인물이 바로 그녀다. 이 점은 특별하다. 분명 어떤 타입의 전형적인 외형을 따르는 영화이지만 그 속에는 지나친 현실의 반영이 녹아 있다. 이 격차에 주목한다. 연기로 마법을 부리기 때문이 아니라 매우 익숙한 무언가를 그녀는 지속적으로 자극한다. 관객 대다수가 배우 전도연을 통해 비슷한 상황과 감정을 경험한 적 있을 것 같다.
전도연의 얼굴에는 일상의 장소가, 그리고 평범한 감상이 스며들어 있었다. 1990년대 한국영화의 현대성은 그렇게 만들어졌다. 전도연이 연기하는 소박한 인물들의 심정에는 세상을 바꾸려는 목적이 없었다. 영웅이라기보다, 우리 자신에 훨씬 더 가깝다. 예를 들어 <내 마음의 풍금>(1998), <너는 내 운명>(2005)이 그랬다. 과거로 회귀하더라도 완전한 환상은 작동하지 않았으며, 로맨스 장르에 속하더라도 사랑은 기적을 낳지 않았다. 신파와 장르의 사이에서 발생하는 모더니티는 그럼에도 아름다웠다. 생각해보면 <해피엔드>(1999)의 일탈적 파괴 역시 마찬가지였다. 설혹 잔혹한 결과를 받아든다 해도 시작만큼은 온건했으며, 약간의 과장이 더해진 결과는 현실의 모습 중 단지 하나였다. 그런 의미에서 전도연의 필모그래피는 시대를 대변한다. 누군가의 뮤즈라거나, 무언가를 대변하는 갈망이 그곳에는 나열되니 않는다. 대신 투명하게 관객들과 호흡한다. 우리는 그 일상성에 매혹되었다.
그런 면에서 <밀양>(2007)의 업적은 과도기적으로 보인다. <밀양>에서 그녀는 33살의 피아노 학원 원장 신애를 연기한다. 그녀는 남편을 잃고 남편의 고향인 밀양으로 향한다. 하지만 그곳에서 그녀는 아들을 잃는다. 그리고 살해범의 입을 통해 ‘신의 속죄’라는 말을 듣는다. 비속하지만 세상의 모든 존재들이 자신만의 위안 방식을 갖고 있음을 그녀는 마침내 깨닫는다. 이 사실은 그녀에게 수치를 준다. 그리고 임상수의 영화 <하녀>(2010)가 등장한다. 이번 영화에서 전도연이 맡은 인물은 재벌집의 하녀 은이 역이다. 상황은 전작보다 훨씬 더 드라마틱하다. 죄의 과오를 발견하는 거대한 상황의 소용돌이에서, 은이는 운명에 굴복한다. 그리고 파괴적으로 결말에 다가간다. 땀 흘리고 비틀거리면서 이전에 본 적이 없는 의미 있는 상징을 그녀는 행사한다. 이 영화들은 차례로 칸영화제에 소개되었다. 그렇게 <밀양>은 여우주연상을, 그리고 <하녀>는 지울 수 없는 업적을 그녀에게 선사했다.
이즈음의 출연작들은 <리볼버>와 비슷한 점이 많다. 어쩌면 오승욱과 전도연의 만남에서 우리가 기대하는 부분도 여기에서 겹칠 것이다. 영화의 시작부, 수영은 감옥에서 막 출소한 상태이다. 그녀의 목소리는 건조하게 2년 전의 일을 회상한다. 어느 고급 아파트 단지의 출입구에서 그녀는 자신이 되찾아야 할 것을 확인한다. 과거에 수영은 연인과의 결혼을 꿈꾸었지만, 이제 그 희망은 사라졌다. 예정대로라면 감옥의 출구가 아니라 아파트의 현관문에 그녀는 서 있어야 했다. 이 사실을 관객들에게 인지시키면서 방문을 열듯 단호하게 수영은 보이지 않는 심연을 향해 나아간다. 그 모습은 용감하다.
누군가가 오승욱의 <무뢰한>(2014)을 좋아한다고 말한다면, 나는 그 이유가 영화 속의 감정 때문이라고 느낄 것이다. 마치 드레스를 입고 흙발로 서 있는 히로인처럼 그 영화에서 전도연은 아이러니한 카리스마를 드러낸다. 운명에 속박된 어느 여성은 그렇게 또 다른 끔찍한 운명의 남성과 마주친다.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둘 다 결말은 나쁠 것이다. 하지만 현재의 망설임은 작은 기대를 갖게 만든다. 관습적이고 의례적인 관계의 모순들, 전도연이 연기하는 혜경은 지나치게 우리들의 모습과 가깝다. 짙은 장르적 색채가 뒤엉켜 있지만, 누구나 이해할 법한 감정을 영화 <무뢰한>은 호소한다. 오승욱이기에 가능한 상황인지도 모르겠다. 묘하게 환상적이고 실제적인 결과가 그의 영화에는 존재한다. 이번 영화 <리볼버>처럼 매우 극적인 상황이 현실과 맞닿는 순간들이다.
<리볼버>에는 주인공이 술을 마시는 장면이 세번 등장한다. 각 장면들은 서로 연결되어 있고, 그 반복이 인식의 부족한 곳을 메운다. 가장 먼저 술이 등장하는 것은 출소한 첫날이다. 감옥에서의 바람처럼 그녀는 서울의 어느 호텔에서 위스키를 손에 든다. 이 상황은 지나치게 도식적이지만 이후의 변주를 통해 의미심장해진다. 복수의 과정에서 그녀는 이내 다시 양주를 얻는다. 이번의 술잔에는 피가 고여 있다. 더럽고 추악한 유혹의 물질을 그녀는 각오한 듯 받아넘긴다. 그리고 모든 일이 끝난 후, 해변의 노상 횟집을 그녀는 제 발로 찾아간다. 그곳에는 어느 여성이 생선을 다루고 있다. 무디어진 칼날, 하지만 왠지 신성하다. 누군가를 먹여 살리던 이 도구를 지금껏 수영은 다른 곳에 낭비했다. 한낮 소주잔은 그런 의미에서 속죄의 상징이 된다. 과거 <밀양>에서 보았던 한 줄기의 햇살이 떠오른다. 그러고 보니 <리볼버>의 수많은 상대들이 이미 전도연과 함께 공연한 적이 있었다. <하녀>에서 미묘한 파트너였던 이정재가 그랬고, 절대반지를 제공하는 정재영 역시 <카운트다운>(2011)에서 호흡을 맞추었다. 그들과 함께 뒤섞여 희석되는 일상성을 이 영화의 오마주라고 말하기는 어렵더라도, 적어도 <리볼버>의 수많은 인물들은 분명히 전도연을 중심으로 직조된다. 그러니 배우를 중심으로 작품을 본다면 결코 아쉽지 않을 것이다. 겁이 없는 여성 캐릭터, 대체할 수 없는 카리스마, 만일 총이 없었더라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지에 대해 상상한다. 단언컨대 누가 고양이인지 쥐인지 더이상 확신할 수 없는 세상의 밤에서도 수영은 기필코 자신이 목표한 바를 이루었을 것이다. 그녀의 바람은 세속적이기에 항상 대체될 수 있는 어떤 목표다. 그 유연함이 마음에 든다. 배우 전도연이 그랬던 것처럼 우리의 곁에서, 수영은 어떤 경우에도 우리를 설득하는 데 성공했을 것이라고 상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