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사의 성인, 순교자 혹은 유례없는 영화 시인. 1960년대 무렵부터 20세기 러시아를 넘어 전세계 영화예술의 부흥을 이끌었던 영화 작가 중 한명, 안드레이 타르콥스키의 <희생>(1985)이 8월21일 한국 극장가에 4K 리마스터링으로 돌아온다. <희생>이라 하면 1995년 한국에서 늦깎이 개봉하여 3만~10만 관객이라는 기록적 흥행을 이끈 영화 바깥의 신화와 함께, 안드레이 타르콥스키의 필모그래피와 인생사를 총집약한 걸작으로도 공인되고 있다. 영화의 구조는 무척이나 간결하다. 은퇴한 저널리스트 알렉산더는 말하지 못하는 아들 고센과 어느 한 외딴집에서 지내고 있으며, 바깥세상은 세계 멸망을 눈앞에 둔 전쟁 소식으로 시끄럽다. 이 와중에 알렉산더의 집을 찾은 몇몇 친구들은 세계, 예술, 믿음에 대한 대화를 나누고 그 끝에서 알렉산더는 장대한 희생을 감행하며 아들 고센에게 자신과 세계의 의지를 잇는다. 간단하고 일견 허무해 보이는 이야기는 영화의 프레임을 길고 넓게 확장하는 촬영의 묘, 종잡을 수 없는 신비감으로 가득 차오른 채 타르콥스키가 이전에 만든 여섯편의 장편의 연장에서 끝없이 상승하고 상승한다.
그렇다면 2024년 극장가에 돌아온 <희생>의 의미는 과연 어떠할까. 타르콥스키가 보여준 믿음의 숭고, 그가 주창한 삶의 피폐한 아름다움은 여전할 수 있을까. 혹은 <희생>을 보고 느낀 감흥을 2024년 동시대의 관객은 어떻게 받아들일까. 이처럼 이어지는 질문에 답하기 위해 우선 김이석 동의대학교 교수가 90년대 한국의 <희생>과 타르콥스키를 회고했다. 김이석 교수는 타르콥스키에 깊이 감응한 당대 영화 관중 중 한명으로 파리 8대학에서 타르콥스키를 연구한 진정한 전문가이기도 하다. 이어서 <씨네21>은 90년대 <희생>에 얽힌 장대한 예술영화의 신화를 조금은 벗겨보고 새롭게 살피려 한다. <희생>이 수반하는 내러티브의 지루함과 불친절함이, 이를테면 <존 오브 인터레스트>를 둘러싼 예술영화 담론에서 어떤 영향력을 좋고 나쁘게 펼쳐왔는지 과감하게 바라봤다. 1990년대부터 2020년대까지 30년에 걸친 <희생>의 대서사시를 훑은 후에 그래서 <희생>이 어떤 영화인지, 그 내부에 어떤 의미가 담겨있는지 식견을 덧붙였다. <희생>의 원천이 순교자의 거대한 숭고보단 미약한 한 아버지의 회한에 가깝다는 주장이다. 믿음이니 사랑이니 하는 어쩌면 너무도 고리타분한 이야기, 그래서 세월이 지날수록 더욱더 귀해지고 있는 영화사의 보물 <희생>을 다시 펼쳐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