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재)발견의 영화관으로 오세요 - 미개봉 구작 예술영화부터 재개봉 영화까지, 해외영화 개봉의 어떤 흐름에 대하여
2024-09-27
글 : 김소미

최근 영화 수입사들이 오래된 명작들을 적극적으로 수입해 개봉하는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다. <애프터썬>과 <로봇 드림>, 그리고 11월 재개봉을 앞둔 <톰보이> 등 과거 한 차례 재개봉 열풍을 일으킨 <이터널 선샤인>의 모델을 이어가는 흐름은 새삼스럽지 않지만, 이보다 진입장벽이 높을 것으로 판단되는 고전, 예술영화의 과감한 등장이 눈에 띄는 상황이다. 신작 대신 구작을, 그것도 국내에 첫 소개되거나 한정적인 관객층을 타깃으로 한 영화들이 속속 개봉관으로 향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요즘 관객은 자신의 시간을 특별하게 소비하길 원한다

독립시대

클래식 명작들이 시네마테크를 벗어나 보다 접근성 있는 다수의 극장들로 확대 개봉을 시도하는 배경에는 1차적으로 최근 수입사들이 관찰한 데이터베이스의 변화가 있다. <동경 이야기>와 <동경의 황혼> 개봉을 앞둔 주희 엣나인필름 이사는 “매년 일본국제교류기금과 협업해 여는 기획전에서 올해는 스즈키 세이준 감독의 대표작 세편에만 집중했는데, 놀랍게도 80% 이상의 좌석 점유율이 나왔고 20~30대 시네필 관객층의 반응이 좋았다. 재개봉한 <희생> 역시 무모한 짓이란 반응도 있었지만, 1만명 달성의 목표를 넘어 현재 관객수 1만5천명으로 향하는 중”이라며 성과를 되짚었다. 앞서 코로나19 팬데믹 시기에 단 15개 관으로 1만 관객을 달성한 에릭 로메르의 <녹색광선> 사례에 힘입어 당초 <세 가지 색: 레드>만을 개봉할 계획이었던 안다미로는 세편의 연속 개봉이라는 도전도 감행했다. 6월 개봉한 소마이 신지의 <태풍클럽>이 1만명을 돌파하면서 엠엔엠인터내셔널도 <국외자들> 홍보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비포 선라이즈> <비포 선셋> <비포 미드나잇>을 차례로 개봉한 김상민 에무필름즈 대표는 이러한 변화를 극장 운영의 관점에서 설명했다. “최신 개봉작을 틀기만 한다고 관객이 오지 않는 실정이기에 자체적인 기획과 이슈를 만들어낼 필요성이 생겼다. 과거 ‘스윙바이, 시네마’ 기획전에서 상영한 누벨바그 영화가 매진되거나 ‘별빛영화제’에서 처음 오픈한 <비포> 시리즈에 대한 젊은 관객들의 긍정적인 반응을 관찰한 뒤 와이드 개봉까지 결정하게 됐다.”

팬데믹을 기점으로 관객들의 영화 소비 패턴, 시장의 체질 자체가 확실히 바뀌었다는 반응이 중론을 이룬다. 극장에서의 경험이 특별하리란 확신이 들지 않으면 티케팅을 하지 않는 시대가 시작됐다는 것이다. 이는 단순히 검증된 작품만을 찾는 안전지향적인 선택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임나경 안다미로 대표는 “20~30대 관객층이 자신의 취향을 더욱 세분화하고 도전적으로 큐레이션하는 경향이 뚜렷해졌다”고 바라봤다. 이는 OTT 플랫폼이 제공하는 편리함에 익숙해진 세대가 극장에서의 경험은 오히려 반대급부의 자극과 희소성의 가치를 추구한다는 의미로 볼 수도 있다. “명작으로 알려진 작품을 모니터가 아닌 극장 스크린으로 보고 싶어 하는 관객의 요구를 분명히 느낀다.”(임동영 엠엔엠인터내셔널 대표) 이지혜 찬란 대표는 “아트하우스관을 찾는 관객은 언제든 볼 수 있는 것보다는 지금이 아니면 보기 어려운 것, 살면서 한번쯤 꼭 봐야 하는 것, 일상에서 만나기 어려운 것을 접한다는 데 의미를 두고 작품을 선택하는 경향”도 짚었다. 이는 비단 한국만의 특이 현상도 아니다. 도쿄 시부야의 미니 시어터를 대표하는 이미지 포럼과 유로스페이스는 물론, 유로스페이스 위층에 자리 잡은 고전영화관 시네마베라가 호황을 누리는 사례 역시 나란히 놓아볼 수 있다. 극장에서 자신의 시간을 특별하게 쓰고 싶은 이들에게 명작들은 더이상 고리타분한 옛날 영화가 아니라 희귀한 영화로서 가치를 지닌다.

불황의 타개책이자 관객 개발의 희망

우나기

신작 영화들의 부진도 현실적인 이유다. <추락의 해부> <존 오브 인터레스트> <퍼펙트 데이즈>의 호황이 팬데믹 이후 아트하우스 영화시장의 부활을 주도하는 것처럼 보이나 이는 그만큼 칸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작이나 몇몇 화제작에 쏠림현상이 심하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꾸준히 칸 경쟁작 등 주요 신작을 수입해온 회사들도 예전 같은 스코어를 만들지 못하는 실정인 것이다. 이를테면 “난니 모레티 감독의 칸 경쟁부문 초청작이었던 <찬란한 내일로>처럼 홍보 요소들이 분명하다고 생각되는 작품도 5천~6천명대 관객을 기록하는”(김상민) 일이 부지기수다. 그동안 국내 소개의 의의를 갖고 주목할 만한 신진 작가의 작품, 데뷔작 등을 수입·배급하는 데 지속적으로 노력해온 플레이어들도 “개봉이 두려워진다”는 반응을 내비칠 정도다. 이런 상황에서 구작의 경우, 작품 인지도를 쌓아가는 기간과 비용을 절감할 수 있는 좋은 선택지가 된다. 주희 엣나인필름 이사는 “신작 개봉작은 인지도를 쌓아가는 한달과 개봉을 홍보하는 데 한달, 보통 두달의 시간이 필요하다. PNA 비용이 날로 솟구치는 상황에서 구작들의 경우 이러한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는 게 이점”이라고 덧붙였다.

그렇다고 해도 구작 개봉 역시 수익 구조의 측면에서도 선명한 한계를 지닌다. 대부분의 수입사들이 1만 관객 돌파를 목표로 삼고 있지만, 이는 실질적인 수익으로 이어지기에는 부족한 숫자다. 티켓 프로모션 등을 제외하면 1만 관객 달성 시 약 4천만~5천만원의 수익이 배급사로 들어온다. 판권료, 그리고 PNA 비용 등을 고려하면 결코 수익 구조가 맞지 않는 상황인 것이다. 한편 에드워드 양 영화의 전편 수입을 주도한 이창준 에이썸 픽쳐스 대표는 “통합전산망에 1만 관객이 넘은 작품은 그나마 잘 알려진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과 <하나 그리고 둘> 단 두편뿐이다. 의외로 가장 선방한 <타이페이 스토리>가 개봉 당시 약 6천명의 관객을 동원했다”며 1만 관객의 장벽조차 쉽지 않은 점을 언급했다.

동경 이야기

이러한 흐름이 지속될 것인지에 대해서는 업계 내부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추석 시즌에 클래식 영화들의 기획 상영이 강세를 보이면서 수입사, 극장 관계자들 대체로 “신작 예술영화가 나와도 구작에 못 당하는 상황은 경계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다가오는 연말 <밀레니엄 맘보> 재개봉, 내년 초 소마이 신지 감독의 <이사> 개봉을 준비 중인 이지혜 대표는 “소마이 신지의 <이사> 외에도 내년도 개봉을 목표로 준비 중인 구작 리스트가 꽤 있는데 작금의 흐름에 어떤 관점을 가지고 접근할지 고민이 된다”고 답했다. 임동영 대표는 “아트하우스 영화가 점점 미술이나 클래식 음악 시장과 같은 흐름으로 가는 게 아닐까. 클래식 명작들이 시네마테크를 벗어나 접근성이 쉬운 다수의 극장들로 확대 개봉을 시도하는 것도 당연한 수순 같다”는 진단도 내놓았다.

이마무라 쇼헤이 감독의 <우나기>와 <복수는 나의 것>, 플로리안 헹켈 폰 도네르스 마르크의 <타인의 삶>, 국내 개봉 순서로는 에드워드 양 영화 중 마지막이 될 <마작>, 허우샤오시엔의 <비정성시> 등 명작들의 귀환은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작금의 흐름은 단순히 과거의 영화를 다시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수입 영화시장의 경제적 현실과 달라진 관객의 요구라는 과제 사이에서 개봉작의 저지선을 확장하려는 움직임으로 보인다. 구작 큐레이션에 있어 각 수입사의 취향과 역량이 보다 전면에 드러나면서 관객이 좀더 양질의 다양성을 누릴 수 있게 된 긍정적인 측면도 분명하다. 불황의 타개책이자 관객 개발의 일환으로서 극장가에 돌아온 명작들이 신작과 적절한 균형을 이뤄야 할 때이다.

관련 영화

관련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