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작 30년 만인 2024년에 에드워드 양 감독의 5번째 장편영화 <독립시대>가 한국에서 첫 개봉한다. 에드워드 양의 첫 영화인 옴니버스 <광음적고사>부터 장편 데뷔작 <해탄적일천> <타이페이 스토리> <공포분자>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 유작인 <하나 그리고 둘>까지 지나간 대만 뉴웨이브의 기수를 동시대의 작가로 꾸준히 소개하고 있는 회사는 어딜까. 수입을 담당한 에이썸 픽쳐스의 이창준 대표는 1997년 월트 디즈니사에서 직배 업무로 영화계에 입문, SK텔레콤과 리틀빅픽처스를 거쳐 에드워드 양 영화 전편을 국내에 모두 수입하는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로 거듭났다. <독립시대>에 이어 국내 개봉 순서로는 마지막인 <마작>까지 준비 중인 이창준 대표로부터 낭만과 인고가 합쳐진 ‘수입기’를 물었다.
1992년 여름, <FM 영화음악 정은임입니다>에서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 O.S.T가 흘러나왔다. 살면서 한번은 꼭 그의 영화를 극장에서 보고 싶다고 다짐하게 됐다. 세월이 흘러 낙원상가 안, 에어컨이 고장난 할리우드 극장에서 대만의 습기를 흡사 4D처럼 느끼며 봤다. 삶의 숙제를 하나 해치운 느낌이었다. 그러고는 우연찮게 영화 일을 시작해 월트 디즈니에서 10년, SK텔레콤이 영화 배급업을 접기까지 7년간 몸담았다. 회사를 나와서 무언가 직접 하고 싶다는 마음이 솟구쳤는데 그즈음 마침 라디오에서 <Why>(<고령가 소년 살인사건> O.S.T>가 흘러나왔다, 운명처럼. 수입에 대한 지식이 많지 않던 때라 여기저기 도와달라고 손을 벌리고 물어보면서 판권자인 카일리 펑(에드워드 양 감독의 동료이자 부인. <하나 그리고 둘>에서 프로덕션디자인과 음악을 맡았다.-편집자)과 닿았다.
- 리틀빅픽처스 재직 시절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을 수입했다. 실질적으로 개봉을 추진할 수 있었던 배경은 무엇인가.
처음엔 가격이 안 맞아서 포기하고 리틀빅픽처스에 들어갔다. 이후에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이 일본 개봉을 하는 거다. 가슴속에 묻어둔 꿈이 되살아나는 것 같았다. 리틀빅픽처스 이름으로 다시 연락해 이전보다 터프하게 접근했다. 하려면 하고 말면 말자. (웃음) 약 3년을 기다린 시점에서 그렇게 성사가 됐다. 두려웠던 건 사실이다. 4시간짜리 대만영화를 수입해서 극장 상영이 가능할까, 가능하다고 해도 관객들이 그걸 보러 와줄까. 당시 대표님도 수익 구조를 걱정하면서도 하고 싶었던 걸 한번 해보라고 믿어줬다. 콘텐츠판다와 이원재 전 CGV아트하우스 부장 등이 함께 고민하고 도와준 것에 대해 새삼 감사하다. 일종의 로드쇼 형식으로, CGV아트하우스에서 하루에 한 극장씩 돌아가며 상영해 총일주일간 상영했는데 그때 전관이 매진됐다.
- 이후 <하나 그리고 둘> <타이페이 스토리> <공포분자> <해탄적일천> 그리고 최근 <독립시대>까지 개봉시켰고, 옴니버스 <광음적고사>도 있었다. 수익적 측면이나 판권 문제 등에서 위기는 없었나.
<공포분자> 개봉 후 팬데믹이 왔다. <타이페이 스토리> <공포분자>를 거치며 한국에 개봉하는 에드워드 양 영화가 새롭게 브랜딩되려는 차에 확 꺾이게 된 거다. 그 무렵 매년 한편씩 개봉해보자는 목표가 생겼지만 이 또한 지키지 못하게 됐다. 사실 앞의 다른 영화들은 해외에서 출시된 블루레이 등 어떻게든 접할 경로가 있었지만 <해탄적일천>은 달랐다. 앞서 관객들이 보내준 성원을 믿고 나름대로 뚝심으로 밀어붙였는데 약 4천명 웃도는 관객수가 나오며 결과적으로 성적이 가장 부진했다. 회의감도 들었지만 지금까지 포기하지 않을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가 정성일 평론가의 한마디였다. 에드워드 양 감독의 영화를 한편씩 개봉할 때마다 “다음 영화는 언제 하실 거예요?”라고 넌지시 물으시는데, 그게 내게는 무언의 압박이자 격려가 됐다. (웃음)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 딱 하나만 잘해보자던 것이 여기까지 온 것이다. 감독님이 남긴 영화가 도합 7편밖에 되지 않는다는 사실이 아이러니하게도 도전의식을 심어주기도 했다. 어떻게든 무리하면 7편을 다 모을 수 있지 않을까. <드래곤볼>에서는 여의주를 다 모으면 소원도 이루어진다는데….
-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부터 <독립시대>까지, 동일한 수입사와 디자인 스튜디오가 작업하면서 국내 포스터와 굿즈가 완성도, 그리고 통일감 있는 브랜딩을 갖추게 됐다.
프로파간다 최지웅 디자이너에 감사를 전하고 싶다.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 수입을 추진할 즈음 최지웅 디자이너가 본인의 인스타그램에 당시 일본에서 개봉한 에드워드 양 영화를 한국에서 누가 수입하면 자신이 꼭 작업해보고 싶단 말을 남겼다. 나로서는 너무 반가운 고백이었고 마침 그가 우리 회사 작품의 포스터 디자인을 작업 중일 때라 회의가 끝난 뒤 다가가 슬쩍 제안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언제나 그가 우리보다 더 열광적으로 포스터 및 다양한 제작물에 대한 아이디어를 내고 있다. 대만영상위원회의 피드백이 빠르지도 않고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 포스터와 대본 외에는 지금까지 디지털시네마용 파일(DCP) 외에 제공받은 것이 없다. 이렇다 할 자료 없이 프로파간다가 직접 만들어내는 상황이니 대단하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 2024년에 보는 에드워드 양의 숨겨진 영화 <독립시대>, 어떤 매력이 있을까.
특정 장르로 라벨링하긴 부적합한 영화라고 생각될 만큼 다채롭고 선명하다. 요즘 관객들에게 익숙한 대만 멜로영화의 아름다움이 있으면서 감독의 어떤 영화보다 코미디이기도 하다. 극 중 찰리 채플린의 모습이 담긴 포스터가 나오는데 멀리서 보면 비극이고 가까이서 보면 희극이라는 말이 딱 들어맞는 영화다. 에드워드 양 작품이 어렵다는 인상을 갖고 있던 분들이라면 오히려 <독립시대>로 입문하기 좋지 않을까 생각한다. 30년 전 모습이라는 게 신기할 만큼 모던하고 세련된 풍경과 대사도 감탄스럽다. 개인적으로는 에드워드 양의 전작을 다시 보면서 대만이라는 도시의 진정한 매력을 알게 됐다. <하나 그리고 둘>의 육교와 횡단보도 앞,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의 공원, <독립시대>에 나오는 추억의 T.G.I 프라이데이 같은 곳을 보면서 대만을 제대로 여행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 <독립시대> 이후 마지막 남은 장편영화 <마작>까지 개봉시키고 나면 ‘에드워드 양 프로젝트’는 종료인가.
<마작>은 일단 <독립시대>가 잘되어야! (웃음) 장첸, 오념진 등 에드워드 양 영화의 주역들이 모두 모이는 게 <마작> 아닌가. 만듦새 면에서는 투박한 축에 속할지 몰라도 세월이 흘러 지금 봤을 때 빛나는 상업적, 장르적 요소에 오히려 기대를 걸게 된다. 2022년에 대만에서 복원되지 않았다면 아예 볼 수 없었던 작품이기도 해서, <독립시대>와 <마작> 모두 극장에서 볼 수 있는 첫 기회를 많은 분들이 누려주셨으면 한다. 만약 여기까지 마무리가 잘되면 지난해 대만에서 크게 열린 감독 회고전을 한국에 가져올 수 있으면 정말 좋겠다는 원대한 포부가 있다. 작은 영화사가 추진하기엔 규모, 수익 구조 면에서 무모한 발상일 수 있지만 비즈니스 파트너와 협업해 성사시켜보는 꿈을 꿔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