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모는 이혼한 후 혼자 살다가 어머니의 암 투병 이후 ‘나’와 부모님이 함께 사는 집으로 들어왔다. 어머니의 간곡한 뜻으로 시작된 이 동거는 어머니의 병세가 심각해지면서 이모가 집안 살림을 도맡는 것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이제 어머니는 세상에 없다. 자매의 죽음 앞에서 꼼짝 않고 앉아 있는 이모는 어머니와 흡사해 보였지만 둘은 같은 사람이 아니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지금의 ‘나’는 180종류가 넘는 빵과 과자를 자유자재로 만들 수 있게 되었지만, 크루아상만큼은 만들지 않는다. 어머니가 건강했던 시절의 아침 풍경에 늘 존재했던 어머니의 다종다양한 크루아상 샌드위치는 지나고 보니 평온함의 상징과도 같은 것이었으니까. <식빵 굽는 시간>은 1996년, 제1회 문학동네신인작가상 수상작이다. 식빵, 브리오슈, 크루아상, 화이트케이크 같은 각종 빵의 이름이 나열되다가 소금, 편지, 외출, 흑백사진 같은 단어로 이어지는 목차는 어딘지 허기진 인상이다. 소설을 읽기 전에 포만감의 온기를 느꼈다면 정작 읽으면서는 그 반대의 감정을 느끼게 된다. 지금으로부터 거의 30년쯤 전에 <식빵 굽는 시간>을 처음 읽으면서 무엇을 감각하며 읽었더라, 헤아려본다. <식빵 굽는 시간>과 함께 수록된 <가족의 기원>의 주인공들은 30대를 앞에 둔 여성이었고, 그때의 나는 서른이라는 나이를 아직은 까마득하게 느끼고 있었다. 죽음도 멀었고, 이별도 멀었으며, 주인공의 감정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상상력을 있는 힘껏 끌어와야 했다. 지금의 나는 가족의 죽음도 소중한 사람과의 이별도 겪었고 조경란의 그녀들을 상상보다 경험으로 이해한다. 다시 읽기의 즐거움이란 이런 것일 테다. 하지만 문학동네 한국문학 전집 33번째 책으로 묶인 <식빵 굽는 시간>과 <가족의 기원>을 처음 읽는 독자라면 또 어떨까? 그녀들을 처음 만나는 독자들의 감상이 궁금해진다. 빵 냄새를 맡듯 문장에 코를 박고 한줄씩 읽어가는 시간이 무엇이 될지.
당시에는 몰랐는데 이제 와서 한데 읽으면 보이는 것들도 있다. <식빵 굽는 시간>과 <가족의 기원>이 한데 묶인 이유도 그렇다. 아직 서른이 되지 않은 여자들, 어머니와 딸, 동물의 생태에 대한 화두에서 번져가는 생각, 연인과의 독특한 관계성, 그리고 생활 속에 침잠해가는 불완전함과 그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안간힘의 순간들. 그리고 그녀들의 잔상을, 2024 김승옥문학상 수상작인 단편 <그들>(<2024 김승옥문학상 수상작품집>에 수록)에서 다시 만난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조경란 작가의 소설을 긴 시간 읽어온 독자들에게 선물과도 같은 이야기들.
“우린 모두 근본적인 문제들을 잊고 있어. 함께 산다고 해서 해결되는 건 이제 없어. 각자 어떻게든 혼자서라도 살아가야지.” 259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