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씨네21 추천도서 - <노란 밤의 달리기>
2024-12-17
글 : 조현나
이지 지음 비채 펴냄

“한줄 메시지로 요약할 수 없는 소설을 쓰고 싶다.” 이지 소설가의 등단 포부다. 2015년 단편소설 <얼룩, 주머니, 수염>이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면서 그는 본격적으로 집필 활동을 시작했다. 장편소설 <담배를 든 루스>로 제7회 중앙장편문학상을 연이어 수상했으며 2022년 첫 소설집 <나이트 러닝>을 출간했다. <노란 밤의 달리기>는 이지 소설가가 2년 만에 내놓은 신작 장편으로 수시로 재개발이 이루어지는 을지로의 세운상가에 터를 잡은 청년 예술가들의 삶이 그려진다. 젊은 예술가들은 쉽게 안정을 꿈꿀 수 없다. 주변을 제대로 가꿔두면 지역이 유명해지며 임대료가 오르고, 결국 거처를 옮기는 건 다시 예술가들이기 때문이다. 전작들에서 그러했듯 이지 소설가는 인물들이 놓인 현실을 낭만적으로 묘사하지 않으며 세운상가라는 지역과 청춘들의 일상을 바탕으로 상실이라는 주제를 다룬다. 세운상가의 많은 것들이 낡은 채 사라지거나 새것으로 교체되어간다. 주인공 휴일의 삶도 크게 다르지 않다. 휴일의 엄마는 남편이 성소수자라는 사실을 알고 떠났으며 아빠는 새 사업을 시작할 요량으로 해외로 향했다. 동료들은 불안정한 예술가의 삶을 포기하고 공무원이 되거나 자영업자의 길을 택했다. 그럼에도 휴일은 버티고 있다. 그만큼 버틸 수 있었던 건 곁에 연상의 애인 엘이 있었던 덕이지만 영원할 것 같았던 엘과의 관계가 어그러지며 휴일은 조금씩 흔들린다.

<노란 밤의 달리기>는 총 30개의 챕터로 이루어져 있다. 휴일에게 일어난 사건과 휴일의 주변인들을 하나씩 엮은 각각의 챕터는 짧은 호흡으로 저술됐지만, 경쾌한 리듬을 마지막까지 유지한다. 독립성을 지닌 챕터들을 무리 없이 하나의 장편으로 연결 짓는 이지 소설가의 독특한 작법이 인상적이다. 가난과 소외의 현장을 날카롭게 묘사하면서도 수시로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넘나들길 시도한다. 소설이란 매체의 특성 안에서 글로 표현 가능한 다양한 방식을 표현하려 한 시도가 신선하게 다가온다. 쉽게 요악할 수 없는 글을 쓰겠다던 등단 포부처럼 이지 소설가의 <노란 밤의 달리기> 역시 간단히 설명하긴 어렵다. 하지만 그만큼 한 소설가가 창조해낸 독특하고 새로운 세계를 만날 수 있는 즐거운 경험이 되어줄 것이다.

엘과 나의 공통점은 어쩌면, 외로움과 괴로움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일까. 생은 외롭거나 괴롭거나라는 것. 외롭지 않으면 괴롭고, 괴롭지 않으면 외롭고, 둘 다일 수도 있다는 것. 그래서 둘만의 우주가 필요하다는 것. 약하디약한 우리는, 눈가 진흙처럼 서로에게 스며들고 녹아 더러워진다. 약하디약한 우리는. 243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