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보다 일찍 누워 태블릿을 접으려는 순간 한줄 속보가 떴다. CBS 라디오 손명회 PD가 긴급 출연을 요청했다. 근래 정권에 더 깊이 찍힌 CBS에서 나는 그날 오후 6시30분경 일정을 마쳤었다. 귀갓길에 마주친 기자들에게 “혹시 윤석열, 도청을 피해 군인들 만나려고 골프장에 갔던 거 아니냐”라고 했다. 도로 한강을 건너면서 김용현이 떠올랐다. 대선 직후 그가 게스트로 나온 프로그램에서 나는 “대통령실 이전에 예비비 쓰지 말고 국회 심의를 받으라”며 친윤 논객 모씨와 언쟁을 벌였었다. ‘용산 국방부로 옮긴 것도, 대통령실 이전의 지휘자가 대통령 경호처장을 거쳐 국방부 장관에 임명된 것도, 다 계엄이나 전쟁을 준비한 것이었나.’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 마이크 앞에 앉자마자 박재홍 앵커의 제의로 함께 사진을 찍었다. 경찰의 국회 봉쇄 소식에 불법 판정부터 내렸다. “닫혀 있는 국회도 열도록 되어 있는 게 계엄법입니다.” 이준규 기자가 있었고, 권영철 대기자가 합류했다. 5·18 시민들은 자신이 쓰지 못한 전파를 우리에게 물려주었다. “국무회의 심의를 했는지도 확인이 안되고 있다.” “포고령에는 가짜뉴스를 금한다고 적혀 있다. 가짜뉴스는 누가 판별하는 것인가.” “탄핵으로 끝나지 않는다. 국헌 문란 목적의 내란이다.”
계엄군의 ‘국회 본청 진입’을 ‘본회의장 침입’으로 잘못 알아듣고 나서 잠깐이지만 심장이 군홧발처럼 뛰었다. 군경의 태업을 기도했다. 그들은 특수 존재가 아니다. 대한민국이라는 가마솥에서 뜬 한 숟갈이다. 우리가 살아온 삶이 그들로 나타난다. 나라면, 내 친구들이라면? 윗선의 명령을 거부할 수는 없다 해도, 고비 고비에서 지연, 정지, 후퇴할 수는 있지 않을까.“
전세계 계엄 역사에서 대통령 담화에 ‘아이 돌봄’이 나오는 계엄은 이번이 처음이자 마지막일 겁니다.” 국회에서 비상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이 통과되자 비로소 해학이 풀려나왔다. 윤석열 일당은 그 후부터 오전 1시50분까지 국방부 지하 벙커의 합참 결심지원실에서 추가 모의를 했다고 알려졌다(존재 자체가 극비였던 이곳은 취재와 수사에 인수분해되고 있다). 우리는 2시쯤 스튜디오를 나섰다. 놈들은 그 방으로 다시 들어갈 수 없지만, 우리는 이 방에서 또 시민들과 이어질 것이다.
‘가짜뉴스 끝판왕(王)이 된 음모론자 대통령’을 직면한 오늘, 황우석 사태 직후 관람했던 영화를 꺼내어본다. “우리는 듣기 거북한 말에는 으레 과민반응을 보이죠. 지금의 우리가 바로 그렇습니다.”(에드워드 머로(매카시즘에 맞선 미국 <CBS> 앵커)) 나는 박근혜 퇴진 촛불 속에서 방송인으로 데뷔했다. 그동안 공론장은 더 나빠졌다. 가짜뉴스 욕하며 가짜뉴스 퍼뜨리기, 돌림노래가 된 부정선거 타령, 스모킹건(증명)보다 각광받는 스모킹(음모론), “불법 아니면 그만”이라는 ‘정치의 사법화’, 단서와 증거를 덮으려 기자와 판사를 음해하는 ‘사법의 정치화’…. 윤석열이 쏜 원기옥만 박살이 났을 뿐 그를 빚은 저 한 덩어리 체제는 뿌리 깊다. 광장이 연 새로운 하늘 아래서 참담하고 부끄러운 발밑을 성찰한다.
미디어는 “우리를 가르칠 수 있습니다. 계몽하고 영감을 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되려면 우리가 그것을 그런 목적으로 사용해야 합니다”. Good night, and good luc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