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오르는 조각가 리지(미셸 윌리엄스)는 주변인들의 기대 속에 한창 새로운 전시를 준비 중이다. 하지만 어쩐지 이 과정이 순탄치만은 않다. 전시회 초대장 대신 스팸메일이 왔다며 핀잔을 주는 아버지의 전화부터 자꾸만 삐거덕거리는 온수 고장, 속을 긁어놓는 동료 예술가의 뾰족한 말까지. 이 와중에 정신적으로 불안정한 형제 션(존 마가로)의 상태를 살피는 것도 리지의 몫이다. <쇼잉 업>은 일상 곳곳에 놓인 사소한 불안과 걱정을 상대적으로 선택할 게 많지 않은 젊은 예술가의 입장에서, 어쩌다 무수한 기대를 떠안은 여성의 입장에서 명확하게 그려낸다. 그렇다고 영화가 자기연민에 빠지거나 불행 전시를 즐기는 것은 아니다. 리지는 라이카트 감독 특유의 온화한 시선으로부터 탄력받아 사랑과 끈기 가득한 손끝으로 빚어진 조각품처럼 자유를 찾아나간다. 자기만의 방을, 세계를, 전시회를 구축해내는 데 성공한 여자의 뒷모습이 가벼워 보이는 건 그러한 이유 때문이다.
씨네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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