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얼빈>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두만강을 건너 연추로 오려 했지만 살아 돌아갈 자신이 없었습니다. 죽은 동지들의 참담한 비명이 귓가를 맴돌고, 팔다리가 떨어져나간 처참한 형상의 시신들이 눈앞을 떠돌았습니다. 나는 길을 잃었습니다. 나의 믿음으로 인해 많은 동지들이 희생되었으니 더는 살아갈 이유를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모든 걸 포기하고 죽으려 했습니다. 그런데 그 순간에 깨달았습니다. 내 목숨은 죽은 동지들의 것이라는 것을. 나는 죽은 동지들의 목숨을 대신하여 살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내가 해야 할 일을 알았습니다. 대한제국을 유린하는 일본 늑대 우두머리, 늙은 늑대를 반드시 죽여 없애자고.”(<하얼빈>의 안중근 대사 중)
<하얼빈>은 영웅 안중근(현빈)의 실패로 시작한다. 그가 이끄는 독립군은 함경북도 신아산 전투에서 수적 열세에도 불구하고 일본군을 무찌르지만 카메라는 승리의 기쁨보다는 전쟁의 참상을 잔혹하게 담는 데 집중한다. 광기의 전장을 옮겨냄으로써 반전(反戰)의 메시지를 담던 전쟁영화들이 떠오른다. 이후 생포한 일본군을 당장 처형하자는 동료들의 주장에도 불구하고 안중근은 만국공법에 따라 육군소좌 모리 다쓰오(박훈)를 포함한 포로들을 풀어준다. 하지만 동료들이 걱정했던 대로 적군에 독립군 위치가 노출돼 역습을 받고 많은 이가 희생되는 비극적인 일이 벌어진다. 이에 살아남은 독립군, 특히 이창섭(이동욱)은 아직 돌아오지 않은 안중근을 비난하며 밀정으로 의심하기까지 한다. 모두가 아는 1909년 10월26일 하얼빈 거사는 홀로 두만강을 건너 독립군 기지에 돌아온 안중근이 동료들의 죽음에 책임을 통감하며 손가락을 자른 단지회맹에서 출발한다.
우민호 감독이 <하얼빈>을 준비하며 참고했던 <안중근 자서전>(1909년 12월13일부터 1910년 3월15일까지 약 3개월간 뤼순 감옥에서 씀)에 따르면 안중근은 어렸을 때부터 사냥을 좋아해서 산과 들로 수렵을 다녔다. 아버지가 동학당(한국 각 지방 곳곳에서 봉기하여 외국인을 배척한다는 명분으로 여러 군현을 돌아다니며 관리들을 죽이고 민중들의 재산을 약탈함)의 폭력을 견디다 못해 의병을 일으켰을 때는 16살에 선봉 겸 정탐 독립대에 자원했다가 큰 공을 세우는 등 뛰어난 지략을 타고난 장군감이기도 했다. 그는 자신에 대해 “내 평생 성격에 좋아하는 것이 네 가지 있으니, 첫째는 친우를 사귀는 것이요, 둘째는 음주가무, 셋째는 총포로 사냥하기, 넷째는 준마를 타고 달리는 것”이라고 서술한다. 이따금 독설과 욕도 쏟아내는 그를 친구들은 ‘번개입’(電口)이라고 불렀다. 한동안 천주교 신자로서 민족 계몽 사업에 몸담았던 안중근은 을사늑약 이후 일본의 수탈이 심각해지자 항일 의병을 조직하고 대한의군 참모 중장으로서 독립군을 이끌게 됐다. 하얼빈 의거만을 기억하는 이들에게 안중근은 범인과 다른 천성을 타고난 고귀한 인물로 신성시되지만 실제 그는 유희를 즐겼고 호전적인 면도 갖고 있었다(<하얼빈>에도 안중근이 술을 많이 좋아한다는 대사가 잠깐 나온다).
‘의사’ 이전 안중근의 입체성은 다른 독립군 캐릭터들에게도 이어지며 <하얼빈>의 영화적 상상력의 재료가 될 수 있다. 한국 기득권의 권력 역학을 범죄 스릴러 장르로 풀어낸 <내부자들>, <스카페이스>의 한국적 오마주였던 <마약왕>, 박정희와 김재규의 관계를 지독한 치정으로 재해석해 장피에르 멜빌식 프랑스 누아르로 풀어낸 <남산의 부장들>에 이어 우민호 감독은 일제강점기 독립투사의 감정에서 스파이물의 문법을 발견했다. 때문에 실제 역사 기록에는 없는 밀정 캐릭터가 만들어졌다. 독립운동의 본거지가 됐던 대동공보사의 위치와 이토 히로부미(릴리 프랭키) 암살 계획이 누설되면서 독립군 중 누군가가 변절해 일본군의 밀정이 됐다는 의심이 피어오른다. 안중근의 거취를 지나치게 궁금해하거나 일본군과 접촉할 기회가 있었던 이들을 중심으로 관객은 몇몇 후보군을 추리게 된다. 중국 대지를 달리며 굽어드는 기차 안에서 스파이의 정체가 드러나는 연출은 <하얼빈>에서 가장 장르적이고 긴장감이 넘치는 대목이다.
흥미로운 것은 영화가 밀정(이하 A라고 칭함)을 대하는 태도다. 을사늑약만큼이나 이를 불법적이고 비윤리적인 방식으로 체결하게 한 을사오적과 이완용에 대해 잘 아는 한국인은 일본 제국주의자만큼이나 배신자에 적대적이다. 그럼에도 <하얼빈>은 변절자 A에게 ‘그럴 만한 일이 있었다’며 사연을 부여하는, 어쩌면 주류 정서에 대척될지도 모르는 선택을 한다. 신아산 전투의 참상부터 독립군의 불안한 정서가 반복적으로 묘사되는 것은 극한까지 죽음의 공포에 몰린 A의 배신을 감정적으로 이해하기 위한 근거다. 일본군에 짐승 같은 취급을 받는 순간에도 비참하게 생존을 갈구하던 A의 심정을 살피고 짐작할 시간을 내어준 영화는 그의 배신이 드러난 이후에도 한번의 기회를 더 준다.“나는 죽은 동지들의 목숨을 대신해 살고 있다.” 단일한 영웅의 클로즈업이 아닌 독립투사 군상의 그룹숏을 선호하는 <하얼빈>의 지배적인 정서는 집단적 죄책감이다. 죽음의 공포가 도사리는 가운데 독립투사들이 목숨을 바칠 수 있었던 것은 이미 죽음을 맞이한 동료들에 대한 미안함 때문이다. 일본군의 역습을 허용한 안중근이 두만강을 건너 러시아 독립군의 본거지에 도착한 것도, 그곳에서 이토 히로부미 암살을 도모한 것 또한 죄책감의 발로였다. 변절자는 척결해야 한다는 원칙을 깨고 안중근이 A에게 한번의 기회를 더 부여한 것은 그간 함께 겪었던 죽음의 공포와 인간의 유약함을 뼛속까지 이해하기 때문이다.
<하얼빈>은 죽음의 공포를 초월하고 독립을 위해 헌신한 독립투사들의 이야기가 아니다. 사형 집행을 앞두고 떠는 안중근은 죽음 앞에 초연한 영웅이 아닌 가장 원초적인 감정을 간직한 인간이다. 영화는 영웅적 행위가 가장 인간적인 감정에서 시작됐다는 점을 일관적으로 파고든다. 그리고 독립군 중에서도 의인의 고결함을 만든 것은 다름 아닌 평화적 관용에 있다고 강조한다. 그는 “사천만 일본인을 모두 죽여서 우리나라가 독립이 될 수만 있다면 난 기꺼이 그렇게 할 것”이라며 일본인 포로 석방에 반대했던 이창섭과 달리 전쟁포로는 석방해야 한다는 만국공법을 떠올리고, 그 때문에 참상이 벌어졌음에도 변절자 A에게 “지금은 두려움에 떨고 있지만 반드시 극복할 것이라고 믿는” 또 한번의 기회를 베푼다. 뤼순 감옥에서 저술했으나 완성되지 못한 안중근의 <동양평화론>은 대한제국, 일본제국, 청 3국의 협력 기구 설치와 아시아의 평화적 관계를 제안한다(공용 화폐 사용 등의 내용은 현재의 유럽연합과 같은 국제기구와 닮았다). 물론 안중근의 <동양평화론>은 실제 시행됐을 때 결국 경제력 차이를 이유로 일본이 주도권을 쥐게 될 가능성이 높아 그리 이상적이라 평가할 만한 논책은 아니지만 그가 반대한 것은 패권주의 자체였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배신자 A의 내면의 고통을 이해하고 투쟁의 목적이 평화에 있다는 본질을 따른 안중근의 선택은 위태로운 투사들의 항쟁을 지속시키는 발판이 된다. 그리고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배한 일본 제국주의는 몰락한다. 때문에 <하얼빈>은 우민호 감독의 말처럼 “하얼빈 거사가 아닌 그다음이 클라이맥스”가 되는 작품이다.
<하얼빈>을 두고 일부 대사가 현 비상계엄 사태를 떠올리게 한다고들 한다. “1980년 5월 광주의 과거가 현재를 도왔고, 죽은 자가 산 자를 구했다”는 탄핵소추안 제안 설명이 “나는 죽은 동지들의 목숨을 대신해 살고 있다”는 안중근의 대사를, “어둠은 짙어오고 바람은 더욱 세차게 불어올 것이다. 불을 밝혀야 한다. 사람들이 모일 것이다. 사람들이 모이면 우리는 불을 들고 함께 어둠 속을 걸어갈 것이다”라는 내레이션은 탄핵 시위를 연상시킨다. 더불어 <하얼빈>의 안중근이 보여준 포용은 각자 세밀한 입장은 다르지만 대통령 탄핵을 위해 목소리를 모은 민중들에게 싸움이 길어지고 내부 갈등이 불거질수록 되새길 초심을 상기시키게 될 것이다. <하얼빈>이 ‘이 시국 영화’의 지위를 점한다면 그 이유는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