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21 리뷰]
[리뷰] 자신과 관계에 대한 깊은 인물들의 탐구, <부모 바보>
2025-01-08
글 : 조현나

복지관에서 사회복무요원으로 일하는 영진(안은수)은 습관처럼 지각을 일삼는다. 전과가 있는 데다 매일 같은 옷을 입고 출근하고 근태까지 좋지 않은 그에 관한 평가가 좋을 리 없다. 영진의 관리를 담당하는 사회복지사 진현(윤혁진)이 상사의 독촉에 못 이겨 결국 그를 찾아 나서기에 이른다. 어느 날, 진현은 출근하던 중 다리 밑에서 갑자기 등장한 영진과 마주친다. 알고 보니 영진은 이사한 아버지의 집에 머물 방이 없어 다리 밑에서 홀로 노숙을 하고 있었다. 사정을 외면할 수 없어 진현은 영진을 자신의 집에 데려온다. 기본적인 의식주를 공유하면서 진현과 영진은 복지관에선 알 수 없었던 서로의 면모에 관해 파악한다. 자신의 상황을 상세히 밝히는 진현에 비해 영진은 입을 잘 열지 않지만, 대신 중고로 구한 캠코더를 들고 다니며 주변의 일상을 세세히 기록한다. 한편 진현에겐 영진 외에도 복지관에서 신경 써야 할 존재가 하나 더 있다. 종종 진현을 찾아와 복지 혜택을 요구하는 순례(나호숙)다. 순례는 자기 자식과 진현을 비교하며 무례한 언행을 서슴지 않는다. 자식을 끔찍이 아끼는 듯하지만 자식에게서 돌아오는 건 어머니 순례에 대한 그들의 철저한 외면이다.

‘부모 바보’라는 영화제목처럼 작품에는 부모에게서 제대로 된 보살핌을 받지 못하고 있거나(영진), 부모의 기대에 맞추느라 원치 않는 삶을 살고 있거나(진현), 자식들로부터 소외된 이(순례)의 이야기가 얽혀 있다. 다만 이들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부모’라는 주제에 한정되지 않는다. 영진은 현대미술 전공자로서 창작에 목말라 있고 일상에서 벌어지는 사건에 카메라를 들이댄다. 진현은 직업, 결혼 등 사회적 기준에 따라 서로를 평가하는 이들에게 권태를 느낀다. 캐릭터의 디테일한 설정이나 관계에 관해 자세히 설명되진 않지만, 자신과 관계에 대한 인물들의 탐구가 근간에 존재한다. 이종수 감독은 자신이 사회복무요원으로 근무하던 시절, 동료 사회복무요원과 사회복지사, 복지관에 찾아오는 사람들을 통해 느낀 바를 <부모 바보>에 녹여냈다. 캐릭터의 설정이나 이들의 서사가 신선하다고 보긴 어렵지만 그들의 조명하는 방식에서 꾀한 형식적 실험은 짚고 넘어갈 만하다. 복지관, 굴다리 밑, 진현의 집과 같이 장소와 장소를 바라보는 시선은 반복되는 반면 인물들이 처한 상황은 조금씩 변주된다. 롱테이크로 오랜 시간 바라보며 축적된 인물들의 감정들은 보는 이에게도 새로운 감흥을 불러일으킨다. 아마도 영진이 촬영했을 푸티지 또한 그러한 감상에 힘을 싣는다. 카메라의 개입은 최소화하되 조금씩 달라지는 인물들의 조건을 오버랩하면서 규정하기 어려운 마술적인 순간을 만들어낸다.

이종수 감독이 장편 데뷔작 <부모 바보>로 제28회 부산국제영화제(이하 부산영화제)에서 KB 뉴 커런츠 관객상을 수상한 뒤, 근 1년 만에 공개한 <인서트>로 제29회 부산영화제에서 크리틱b상을, 제50회 서울독립영화제에서 새로운시선상을 수상한 데에는 그런 연유가 있기 때문이다. 주목해야 할 신인 창작자의 등장이 반갑다.

close-up

영진이 뜬금없이 조는 순간들에 주목해보자. 진현이 삶을 한탄하고 인생 조언을 토해낼 때, 영진은 집중해 듣는 듯하다 스르르 눈을 감는다. “영진이 불편한 상황이 펼쳐질 때 잠을 자라”는 이종수 감독의 주문에 따라 안은수 배우가 애드리브를 펼친 것인데, 사전에 약속되지 않은 잠에 윤혁진 배우가 실제로 화를 냈다고. 현장에서 벌어지는 의외의 상황을 놓치지 않고 포착해낸 것이 <부모 바보>의 또 다른 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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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인> 감독 이정홍, 2023

기홍(박기홍)이 자신의 차 지붕이 찌그러진 걸 발견하고 범인 찾기에 나서며 영화가 시작된다. <괴인>은 <부모 바보>가 그러했듯 인물관의 관계, 사건을 느슨하게 분리하고 연결하며 예상치 못한 곳으로 관객을 이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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