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기획] 바이포엠스튜디오, 정체가 무엇이냐 - <소방관>의 흥행과 새 시대의 영화 마케팅 분석, 한상일 바이포엠스튜디오 이사 인터뷰
2025-01-09
글 : 임수연

<소방관>은 악재란 악재가 모두 겹친 영화였다. 코로나19로 배우들의 소방 훈련 일정이 연기되고 공공장소 촬영에 차질이 생기면서 크랭크인 날짜가 밀렸다. 이 과정에서 원래 출연하기로 했던 배우 유승호가 일정 문제로 하차하고 배우 주원이 그 자리를 채우게 됐다. 2020년 5월부터 9월까지 촬영을 마쳤지만 다른 한국영화처럼 개봉 일정을 쉽게 확정하지 못했다. 그러다 2022년 9월25일 주연배우 곽도원이 음주 운전을 하다 적발되는 사건이 터졌다. 곽도원은 KBS에서 한시적 출연 정지 처분을 받았고 벌금 1천만원의 약식명령이 내려졌지만 그의 분량을 편집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다. 더군다나 2001년 홍제동 방화 사건 실화를 바탕으로 한 작품에서 요구조자를 위해 희생한 소방관 캐릭터를 그가 연기했기에 우여곡절 끝에 영화가 개봉해도 관객이 몰입할 수 있겠느냐는 얘기가 흘러나왔다.

그리고 2년 뒤, 원래 투자배급을 맡았던 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가 영화 투자배급 사업을 중단한다는 소문이 업계에 퍼지기 시작했다. 10월17일 1차 포스터가 공개됐고 배급사가 바이포엠스튜디오로 변경됐다는 소식도 함께 전해졌다. 12월4일 개봉일이 확정됐지만 악재는 여기에서 끝이 아니었다. 개봉 하루 전날 윤석열이 비상계엄을 선포하는,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일이 벌어졌다. 첫날 관객수는 8만1천여명. 나쁘지 않은 성적이었다. 하지만 곽경택 감독의 동생이 곽규택 국민의힘 의원이고 곽경택 감독이 함께 거리 유세를 다닌 적이 있으며 곽규택 의원이 대통령 탄핵소추안 투표에 불참했다는 이야기가 인터넷에서 확산되면서 덩달아 <소방관>을 불매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졌다. 하지만 <소방관>은 개봉 19일 만에 손익분기점 250만명을 돌파하며 반전 신화를 썼다. 1월1일까지 총관객수는 339만명이다.

여기서 영화계 소식에 밝은 영화인들은 신생 투자배급사 ‘바이포엠스튜디오’의 이름을 눈 여겨볼 것이다. 2년 전 <비상선언> 개봉 당시 다른 경쟁작에 투자한 바이포엠스튜디오가 부정적 여론을 조장하는 ‘역바이럴’을 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을 때 알려진 회사다. 당시 <비상선언>의 투자배급사 쇼박스는 영화의 역바이럴 정황과 관련해 서울경찰청에 정식 수사 의뢰를 넣었고, 바이포엠스튜디오는 SNS상에서 적극적으로 역바이럴 의혹을 제기한 K 평론가를 허위사실 적시로 인한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위반(명예훼손) 및 업무방해 혐의로 고소했다. 지지난해 K 평론가에게는 벌금 500만원의 약식명령이 내려졌다. 그 밖에 가수 박경의 음원 사재기 공개 저격(바이포엠스튜디오의 전신 포엠스토리가 음원 바이럴마케팅을 한 가수들이 메이저나인 소속이었고, 2022년 바이포엠스튜디오가 메이저나인을 인수했다. 2023년 박경은 사재기 의혹과 관련해 허위사실 적시를 인정하며 가수 임재현에게 3천만원을 배상했다), 배우 심은하의 허위 복귀설(심은하가 바이포엠스튜디오와 대표를 명예훼손 혐의로 경찰에 고발했고 불송치 결정이 내려졌지만 이의 신청에 따라 현재 보완 수사가 진행 중이다. 바이포엠스튜디오는 심은하의 소속사를 위장한 에이전트 대표이사를 사기 혐의로 고소했다), 전 이달의 소녀 멤버 츄와 전 소속사 블록베리크리에이티브와의 분쟁 및 소송(블록베리크리에이티브는 츄가 바이포엠스튜디오와 계약을 체결하기 위해 템퍼링을 했다고 주장했고 츄는 전 소속사를 상대로 전속계약 효력 부존재 확인 소송을 제기했다. 법원은 츄의 손을 들어줬다)에도 연루돼 연예계에서 꽤 시끄러웠던 기업이다.

음원, 출판, 식품에 이어 영화까지…

소설 <오늘 밤, 세계에서 이 사랑이 사라진다 해도> 홍보글.

바이포엠스튜디오는 2017년 설립된 종합 콘텐츠 기업이다. 원래 출판, 음원, 뷰티 등 뉴미디어 중심의 광고대행사 포엠스토리로 시작했다. 인스타그램이나 페이스북에서 “지금 난리난 OOO의 신곡 ㄷㄷㄷ”, “남자들이 알아둬야 할 여자들의 심리”(이미지를 다 넘기고 나면 특정 책에서 발췌한 글귀였다며 책 홍보였음이 밝혀짐)식의 글을 본 적이 있다면, 한때 유행했던 바이럴마케팅 게시물을 접한 것이다. 호박과 팥으로 만들어져 부기를 빼는 데 좋다는 ‘여우티’도 이곳에서 만든 브랜드 티트리트 제품이다. 유귀선 당시 포엠스토리 대표가 에세이집 <너에게만 좋은 사람이 되고 싶어>(바이포엠스튜디오의 콘텐츠IP 사업부에서 운영하는 출판 브랜드 스튜디오오드리에서 출간), <너의 안부를 묻는 밤>(바이포엠스튜디오의 출판 브랜드 시드앤피드에서 출간)을 직접 쓰고 베스트셀러로 만드는 등 출판계로도 사업을 확장했다. 결정적으로 엔터테인먼트 업계에서 바이포엠스튜디오가 유명해진 계기는 음원 IP 사업이었다. ‘웹툰 O.S.T’라는 새로운 개념을 만들어 성공시킨 이후(B1A4 출신 산들이 부른 <취향저격 그녀>의 O.S.T <취기를 빌려>가 대표적이다) 이들은 영화, 드라마와 연계되거나 유명한 원곡을 리메이크한 음원을 기획해 SNS나 유튜브, 틱톡에서 홍보하고 이를 띄우는 전략을 취해왔다. 현재 다수의 가수, 배우, 유튜버도 매니지먼트하고 있는데 이들의 작업물이 바이포엠스튜디오의 다른 기획물과 연관되는 경우가 많다.

바이포엠스튜디오의 회사 소개서에 따르면 콘텐츠 홍보는 다음과 같은 메커니즘으로 이루어진다. 뉴미디어 매체 중심 마케팅 기업으로서 쌓은 데이터를 기반으로 자체 콘텐츠를 기획 및 제작하고, 보유하거나 연계된 창구를 활용해 흥행 가능성과 수익을 극대화하는 것이 큰 골자다. 특히 온라인 광고 운영 시스템을 내재화해 실시간으로 운영하는 것을 경쟁력으로 내세우고 있다. 현 시장과 미디어 내에서 소비자들이 가장 열광할 만한 콘텐츠를 기획한 뒤 자체 보유 및 제휴하는 매체에서 관련 게시물을 올려 반응을 살펴본다. 가능성이 확인되고 나면 본격적인 제작에 들어간다. 그리고 ‘댓글’, ‘좋아요’, ‘공유’, ‘노출수’ 등을 실시간으로 체크하며 피드백한다. <연애세포> <시간 훅가는 페이지> <20대 뭐 하지> 등의 페이지/채널이 바이포엠스튜디오에서 운영하는 곳이며 김시선, 고몽, 삐맨 등 유명 영화 유튜버들이 자회사 스튜디오지지지에 소속돼 협력하고 있다. 바이포엠스튜디오는 드라마 <옷소매 붉은 끝동>의 O.S.T 판권을 소유하고 있었다. 드라마 방송 전에는 주연배우 이준호의 호감도 높은 사진을 SNS에 노출해 확산시키고, 방영 중에는 드라마 스토리에 대한 관심을 유도하고, 종영 후에는 배우 이세영의 예능프로그램 출연 모습을 업데이트하는 식으로 작품의 화제성을 이어나간다. 그리고 드라마 영상 콘텐츠를 활용하거나 유명 가수와 접점을 만든 O.S.T 콘텐츠를 만들어 궁극적으로 이들이 보유한 음원을 띄웠다고 성공 사례를 소개한다.

영화 <소방관> 홍보글.

2022년 바이포엠스튜디오는 영화 투자배급 사업에 진출했다. <외계+인> <한산: 용의 출현> <헌트> <헤어질 결심> <브로커> <범죄도시3> <범죄도시4> <데시벨> 등에 투자했고 <데시벨>의 경우는 메인 투자사였다. 모든 작품이 수익을 내지는 못했고 특히 2022년 여름 앞서 서술한 역바이럴 논란으로 곤욕을 치렀다. 반등의 계기는 그해 연말 개봉해 관객수 121만명을 넘긴 <오늘 밤, 세계에서 이 사랑이 사라진다 해도>의 깜짝 흥행이었다. 바이포엠스튜디오는 영화 개봉 1여년 전부터 자사 출판 브랜드를 통해 동명의 원작 소설을 출간하고 인스타그램에서 마케팅했다. “여자 친구가 알고 보니 장애를 숨겼어요…”, “여친 집에서 보면 안될 것을 봐버렸습니다…”로 시작하는 카드 이미지를 넘기고 나면 책을 홍보하는 게시물이었다. 그중에는 “ㅁㅊ 누가 제발 이거 영화화 좀 해줘라ㅠㅠ” 같은 내용도 있었고 그렇게 실제 영화 배급까지 이어간 것이다. 영화 개봉 이후에는 “너무 울어서 실신한 사람 나왔다는 레전드 영화…”, “탈수 올 정도로 슬프다고 난리난 영화 평점ㄷㄷ” 같은 제목의 이미지들이 퍼졌다.

이후 바이포엠스튜디오는 SNS 반응을 모니터링한 뒤 최근 개봉작 중 흥행 잠재력이 더 있었던 것으로 판단되는 작품을 다시 극장에서 선보이는 별도의 노선을 잡았다. 최초 개봉 당시에는 다양성영화의 안정적인 관 확보를 위해 CGV, 메가박스 등에서 단독 개봉했지만 바이포엠스튜디오는 재개봉 때 와이드 개봉을 선택했다. 지난해 독립·예술영화 흥행 1위는 바이포엠스튜디오가 배급한 <남은 인생 10년>이었다. 한국에서 호감도가 높은 고마쓰 나나, 사카구치 겐타로가 주연을 맡았고 동명의 원작 소설도 바이포엠스튜디오의 출판 브랜드 모모에서 출간돼 함께 마케팅했다. 지지난해 CGV 단독 개봉한 영화가 1년도 지나지 않아 재개봉한 뒤 개봉 당시보다 3배 가까운 매출을 올렸다. 실제 영화에 나오지 않더라도 영화와 유사한 결을 가진 한국 음악을 골라 리메이크한 O.S.T 음원 컬래버레이션도 병행했다. 허광한 주연의 <여름날 우리>, 주동우 주연의 <소년시절의 너> 역시 비슷한 마케팅 전략을 취한 개봉 때보다 더 많은 관객을 불러 모았다. 너드커넥션의 <그대만 있다면(<여름날 우리> × 너드커넥션)>은 2023년 8월에 나온 곡인데 아직도 멜론 차트 일간 31위에 있다.

여전히 엇갈리는 기성 영화인들의 반응

영화 <소방관> 홍보글.

그리고 <소방관>이다. 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에서 바이포엠스튜디오로 투자배급사가 변경된 뒤 마케팅 방식도 완전히 달라졌다. 박효신의 <HERO>가 O.S.T로 붙어 음원 홍보를 병행했다. “소방관 3년차 월급 보고 가라”, “경찰, 군인 병원 다 있는데 왜 소방관 병원만 없음?” “교도소 밥보다 질이 떨어지는 소방관 식사 이건 진짜 아니지” . 그리고 소방관의 처우 개선을 위한 영화 <소방관>이 나왔고 유료 관객 1인당 119원이 기부되는 ‘119 기부 챌린지’가 진행 중이라는 정보가 소개된다. “우리 친오빠 영화관에서 처울다가 여친 생김ㅋㅋ” 같은 제목의 네티즌 글을 활용한 홍보글도 있다. 온라인 커뮤니티나 SNS에서 영화와 관련된 재미있는 글이 올라오면 이를 재가공해 마케팅을 위해 활용하는 것이다.

<소방관> 성공 이후 업계 관계자들의 반응은 제각각이다. 익명을 요구한 투자배급사 관계자 A는 “2년 전만 해도 바이포엠스튜디오가 영화계를 망친다며 비판하는 목소리가 있었지만 역바이럴 의혹은 아니라고 판정나지 않았나. <소방관>까지 성공시킨 후 그들의 마케팅 능력만큼은 인정해야 한다고 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홍보 마케팅 관계자 B는 “출판계에 이어 영화계도 망치고 있다. 바이럴마케팅에 참여한 작품이 잘되면 다 본인들이 한 것처럼 과시하는 것 같다”고 의심했다. 익명을 요구한 창작자 C는 “침체기에 빠진 영화계가 다시 잘되기 위해서는 업계에 돈이 돌아야 한다. 온라인상 화제성을 유도하며 흥행작을 만들어내는 그들이 투자도 더 많이 하고 산업에 활기를 불어넣을 수 있다면 좋은 일 아니냐”고 반문했다. 마지막으로 익명을 요구한 홍보 마케팅 관계자 D는 “커뮤니티나 X에 게재된 재미있는 글을 마케팅을 위해 쓰는 모습을 많이 봤다. 원 작성자의 허락을 받고 홍보성 글임을 제대로 표기하는 절차를 따라야 하지 않을까 싶다”는 의견을 조심스럽게 냈다. 올해 바이포엠스튜디오는 1월22일 개봉하는 <히트맨2>를 시작으로 16편의 영화를 수입 혹은 배급한다. 콘텐츠 산업 중에서도 영화는 긴 제작 기간과 높은 비용을 투입해 밀도 높은 결과물을 추구하지만 동시에 리스크도 큰 업계였다. 하지만 대중매체가 소비되는 방식은 하루가 다르게 급속도로 변화하고 있다. 설립 2년 만에 이례적인 성공작을 내놓은 신생 스튜디오를 향한 기성 업계인들의 평가는 앞으로도 당분간 엇갈리겠지만, 지금의 한국 사회가 이들이 괄목할 수익성을 보여주며 빠른 성장세를 보여줄 수 있는 속성을 품은 시대와 공간임은 부정하기 어려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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