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인터뷰] ‘온갖 삶이 사회복지관에서 만난다’, <부모 바보> 이종수 감독
2025-01-09
글 : 조현나
사진 : 오계옥

영화 <인서트>로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이하 부산영화제)에서 크리틱b상을, 서울독립영화제에서 새로운시선상을 수상한 이종수 감독은 부산영화제가 2023년부터 주목해온 신인이다. 장편 데뷔작 <부모 바보>로 처음 부산영화제를 찾은 그의 손엔 당시 KB 뉴 커런츠 관객상이 쥐어졌다. 부산에서 연이어 조명된 이종수 감독의 특징은 독특한 형식적 실험을 취하는 창작자라는 것이다. <부모 바보>에서는 사회복무요원 영진(안은수)과 그를 관리하는 사회복지사 진현(윤혁진), 자식과 불화를 겪는 순례(나호숙)을 중심으로 그러한 연출적 특징이 두드러진다. 세 인물은 복지관에서 자주 마주치면서 규정하기 어려운 관계를 형성해간다. 쌓여가는 시간의 굴레를 같은 공간에서 비슷한 각도로 포착하며 영화는 전에 없던 감흥과 인상을 축적한다. 반복과 변주 속에서 익숙한 서사는 새로운 인상을 입고, 그렇게 <부모 바보>는 자신만의 특별한 위치를 점한다.

- 자전적 경험을 반영해 <부모 바보>를 완성했다.

실제로 사회복무요원으로 근무했고 살면서 마주친 사람들에게 느낀 인상들이 이야기로 쌓였다. 이전에는 음악, 비디오 설치 작업으로 그 이야기들을 풀어냈는데 확실한 배출구가 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더라. 그렇게 영화를 찍게 됐다.

- 영화를 찍고 나니 이야기가 더 잘 표출이 됐다고 느끼나.

그렇다. 영화를 통해서 직면한 문제에 관해선 더이상 징징대지 않게 된달까. 확실히 풀리는 기분이 든다.

- 그런데 영화에선 인물이나 인물들의 관계에 대해 굳이 자세히 설명하지 않으려는 자세를 취한다.

사람들이 우연히 포착된 느낌이길 바랐다. CCTV처럼 고정된 카메라에 해당 인물들의 행위가 그저 잡힌 것일 뿐 어떤 컷에서 어떤 크기로 보여줘야 하는지를 너무 신경 쓰지 않는 선에서 보여주고 싶었다.

- 같은 장소를 비슷한 각도에서 반복해 보여주는 것도 같은 의도에서인가.

그렇다. 그리고 영화를 배울 때 하지 말라는 것들을 오히려 하고 싶었다. 플래시백을 쓰는 건 촌스러운 것이고 인물의 감정을 카메라가 잘 담아내야 한다는 시나리오 작법들 같은 것 말이다. <부모 바보>에는 불행한 사람들이 등장하는데 그들의 사연을 가까이서 면밀하게 담아내는 건 너무 그들을 이용하는 느낌이라 어느 것에도 깊게 관여하지 않는 태도를 갖고 싶었다. 그래서 카메라를 멀리 두고 최대한 인물의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그에 관해 아는 척하지 말자고 촬영감독과 의견을 나눴다.

- 비디오 작업 때의 태도가 반영된 부분도 있나.

내가 하던 비디오 작업들도 카메라를 한대 고정시켜두고 상대의 퍼포먼스를 관찰하는 형식이었다. 실제로 이 방식이 <부모 바보>에 적합하다고 생각했다. 여기서 인물을 조금씩 다른 각도, 다른 크기로 찍으면 그때부터 상황이 설명되고 그게 영화가 되는 과정이지 않을까 싶었다. 변주가 생기더라도 우연히 포착된, 의도되지 않은 느낌은 최대한 가져가고 싶었다.

- 영진, 진현, 순례에 관해서도 묻고 싶다. 이들은 부모에게 제대로 보살핌을 받지 못했거나, 부모에게 속았다고 느끼거나, 부모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해 자식에게 외면받는 이들이다. 영화의 제목과도 밀접하게 연관돼 보이는데 그런 세 사람을 주인공으로 설정한 이유가 있다면.

지금 와서 보면 유치한 면도 있다. 하지만 내가 그런 아침드라마식의 키치한 포맷을 좋아한다. 사회복무요원 시절에 복지관에서 근무했는데 동료들 중에 영진처럼 상황이 어려운 친구도 있었고, 순례같이 막무가내로 찾아오는 어머니들도 계셨다. 어머니들은 지나치게 거리감을 좁혀 다가오는 경향이 있고 사회복지사들은 내적으론 친밀함을 느껴도 업무적으론 서로 일정 거리를 둬야 했다. 그들 사이에 있으니 관계에 관해 계속 생각해보게 됐다. 어릴 땐 친해지면 마냥 좋지만 어른이 되고 잃을 게 생기면서 타인과의 거리가 잘 좁혀지지 않는다. 가까워지더라도 정말 친밀해진 건지 단순히 시간을 많이 보내서 그런 건지 헷갈리기도 한다. 진현과 영진 사이에도 그런 게 존재할 거라 생각했다. 사회복지관이 그런 사연들이 만나는 곳이더라.

- 영진은 언제 출근할지 예측이 불가한 캐릭터지만 캠코더에 기록된 일상 영상을 보며 꽤나 성실한 면이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실제로 군대에 가면 사회에서 일상처럼 해오던 일을 할 수 없다는 답답함이 생긴다. 그래서 오히려 뭘 더 많이 하게 되는데, 나도 사회복무요원 시절에 음악 작업을 많이 하고 글도 많이 썼다. 영진이도 현대미술을 전공한 친구고 아카이빙한 영상에서 맥락을 만들어내는 작업을 하는 친구라는 설정이 있었다. 그런데 사실 영화에서 영진이가 직접 캠코더로 촬영하는 장면은 없다. 나도 영화에 드러난 푸티지가 전부 영진이가 찍은 것이라고 생각하진 않았다.

- 영진이가 등장하는 시점이 재밌다. 가령 굴다리나 복지관 부엌에서 갑자기 나타나는 걸 보면서 로케이션에 맞춰 즉흥적으로 위치가 정해진 게 아닐까 추측했다.

영진이 등장하는 장면은 의도하긴 했다. 음습한 굴다리를 뜬금없이 비춰 사람이 기어 나오는 이미지도 생각했지만 이 영화의 톤과 안 어울릴 것 같았다. 그래서 촬영감독과 로케이션에서 콘티를 보고 새롭게 만들어나갔다.

- 그 밖에 현장에서 즉흥적으로 만든 부분도 있나.

윤혁진 배우의 대사가 그렇다. 윤혁진 배우가 외운 것처럼 대사를 읊는 것이 싫다며, 자기 말투로 자연스럽게 말하고 싶다고 했다. 윤혁진 배우는 프리롤로 뒀을 때 더 빛나는 게 있어서 빠지면 안될 중요한 대사만 서로 협의하고 그외엔 시나리오대로 가지 않아도 괜찮다고 말했다. 테이크도 많이 가지 않았다. 예전에 조희영 감독님 인터뷰에서 읽었는데 테이크를 여러 번 가면 상황과 물건이 조금씩 낡기 때문에 테이크를 적게 간다더라. 그 말이 굉장히 공감이 됐다. 테이크를 여러 번 갈수록 배우의 표정이 조금씩 바뀌고, 감정과 현장의 공기도 달라진다. 다시 오지 않는 순간이라는 미신적인 믿음을 갖고 있어 최대한 적은 테이크로 가려 했다.

- 그래서 롱테이크 신도 많았나.

연기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롱테이크를 사용했다. 또 사건이 벌어진 후에 현장에 잔존하는 에너지가 있다고 믿어서 그걸 담고 싶었다.

- <부모 바보>라는 제목이 궁금증을 증폭시킨다. 제목의 아이디어는 어디에서 얻었나.

제목에 관한 질문을 받으면 아직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부모 바보’라는 텍스트에 알맹이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처음 시나리오를 쓸 때부터 제목을 부모 바보라고 해야겠다는 생각이 논리적인 근거 없이 떠올랐다. <부모 바보>라는 제목은 이 영화를 설명하기보다는 낙서와 같은 의미에 가깝다. <부모 바보>라는 제목은 부모에 대한 욕인 건 맞지만 이 영화를 설명하고, 해석해야 할 대상이라기보다는 상형문자로서 낙서처럼 작용하는 것이다. 이 제목에 관객들이 너무 몰입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 계획된 차기작이 있나.

<부모 바보>와 <인서트>를 찍기 전에 다큐멘터리 작업을 한 것이 있다. 폐목재로 집을 짓고 사는 자연인, 탈북민들의 마을이 있는데 당시에 완성을 하지 못했었다. 오는 2월에 다시 촬영을 재개할 계획이다. 요즘 형식에 관한 고민이 많은 때라 다큐멘터리가 될지, 극영화가 될지는 잘 모르겠다. 자유 형식의 영화가 나오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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