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타]
[인터뷰] 있는 그대로의 나를 좋아해줘,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 배우 다현
2025-02-18
글 : 정재현

“날 봐 거봐 또 두번 봐”(<OOH-AHH하게>)라고 외치던 소녀는 이내 “거절은 거절해”(<YES or YES>)라며 사랑의 “사인과 시그널을 보내”(<SIGNAL>)는 데 익숙해졌다. 시간이 흘러 소녀는 상대에게 하염없이 취하는(<Alcohol-Free>) 일에도, 황금 같은 섬광의 날 속에(<ONE SPARK>) 연인과 밤새 춤을 추고(<Dance The Night Away>) 함께 일출을 맞는 일(<MOONLIGHT SUNRISE>)에도 주저하지 않게 됐다. 그리고 스스로의 존재가 누군가에겐 살아갈 용기가 된다는 걸 알아 “구름이 쫙 낀 햇살 한줌 없는 날” 당신이 바로 “나의 반짝이는 빛”(<Feel Special>)이라며 상대가 자신에게 느낄 법한 감정을 되레 사려 깊게 되돌려주었다. 그룹 트와이스를 통해 수많은 소녀들의 목소리를 선보인 다현이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의 ‘소녀’, 선아로 영화 신고식을 치른다. 데뷔 10년차에 또 다른 데뷔를 앞둔 신인배우가 그린 소녀 선아의 이야기를 전한다.

- 무대에서 곡의 화자가 되어 노래하고 춤을 추는 일도 넓은 의미에선 연기라 할 수 있다. 촬영과 편집, 대사가 있는 영화 연기는 무대에서 노래할 때와 얼마나 다른 재능을 필요로 하던가.

현장성이 달랐다. 가령 밝은 노래를 라이브로 부르다가도 팬과 눈이 마주치면 갑자기 눈물이 고이는데, 그렇다고 해서 그 감정이 지속되지 않고 바로 노래와 공연 분위기에 맞춰 나를 다잡을 수 있다. 그런데 연기는 신 전후 상황의 연결을 비롯해 한 감정에 오래 머무는 순간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 감정의 흐름을 큰 시선에서 파악하는 능력이 좀더 요구된다.

- 지난 부산국제영화제의 관객과의 대화에서 처음 도전해본 연기를 “아무 필터 없이 오롯이 나로서 존재하는 경험”이라고 정리한 바 있다. 이를 구체적으로 설명해준다면.

사람들과 부대끼며 살다보면 내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건 불가능하다. 나에게 상처를 입힌 사람 앞에서 괜찮은 척을 할 때가 있고 속이 상하는 와중에도 웃어 넘겨야 하는 날들이 대부분이니까. 그런데 연기는 화가 날 때 온전히 분노할 수 있고 서러울 때 펑펑 울 수도 있다. 막을 거치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나로서 존재하고, 내 배역이 즉각적으로 느끼는 감정을 그대로 쏟아낼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이다.

- 프리프로덕션 단계에서부터 조영명 감독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고.

촬영 전 내가 이 역할을 잘 소화해낼 수 있을지 고민이 깊었고 용기도 필요했다. 여러 상념을 티내지 않았다고 생각했는데 감독님은 정확히 내 고민을 잡아내더라. 아무래도 우리 작품이 진우(진영)의 시점으로 진행되는 이야기라 표면에 드러나지 않은 선아의 삶을 감독님과 함께 구체화해갔다. 선아에겐 확실한 꿈이 없었다. 공부를 열심히 하는 것 또한 선아에겐 학생이라는 본분으로 최선을 다하는 것 이상은 아니다. 나와 감독님이 영화 밖에서 그려본 선아는 집안의 장녀다. 나이 차이가 아래로 크게 나는 여동생과 남동생이 하나씩 있어 동생들에겐 엄마 노릇도 곧잘 했고, 그렇기 때문에 진우에게도 엄마처럼 유치하게 살지 말라며 잔소리도 할 줄 안다. 선아의 부모님에 관한 이야기도 정리했는데 이건 기자님만 알고 계셔달라. (웃음) 여러 곁가지의 이야기를 끊임없이 상기하며 매 순간 카메라 앞에 섰다.

- 수능 결과가 나온 저녁, 선아가 진우 앞에서 눈물을 보이며 긴 대사로 속상함을 토로하는 신은 단번에 소화하기 쉽지 않았을 듯한데.

카메라 앞에서 내가 과연 슬프게 울 수 있을까, 걱정부터 앞섰던 장면이다. 촬영에 들어가기 전 감독님과 배경이 된 학교 정문 앞에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대화를 나눌수록 선아가 안타까워졌다. 선아가 얼마나 이야기를 나눌 사람이 없었으면 진우에게 연락했을까. 선아가 얼마나 갈 곳이 마땅하지 않았으면 눈 내리는 겨울날 문 닫힌 교정을 서성였을까. 만약 일평생 춤만 추던 수험생이 중요한 평가에서 발목을 접질린다면 세상이 무너지는 듯 느껴질 텐데, 예시로 든 수험생의 춤이 선아에겐 공부 혹은 수능 성적이 아니었을까. 이런 식으로 생각을 확장해가다 보니 바로 눈앞이 캄캄해지고 눈물이 났다. 그렇게 내리 서너 시간을 카메라 앞에서 울었다.

- 반면 수능이 끝난 후 선아가 친구들과 즐기는 장면에선 영화 밖 인간 다현도 신이 난 게 고스란히 전해진다.

촬영이라는 걸 잊을 정도였다. 정말 그 시절로 돌아간 느낌! 학창 시절이 아예 없었다곤 할 수 없지만 어렸을 때부터 연습생 생활을 한 터라 고등학생 시절에 나름대로 로망이 있었다. 방과 후 친구들과 교복도 갈아입지 않고 떡볶이를 먹으러 가는 그런 소소한 추억이 또래에 비해 없는 편이니까. 이번 작품을 통해 내겐 부재한 추억을 채울 수 있어 행복했다.

진영이 찍은 다현

- 선아는 10대와 20대, 어쩌면 30대까지도 진우 곁에 함께한다. 그리고 진우가 오랜 시간 자신을 좋아했다는 것도 안다. 선아에게 진우는 어떤 의미일까.

동춘천고등학교의 수많은 남학생들이 선아를 좋아하지만, 그들이 좋아하는 선아는 상상 속의 선아다. 하지만 진우만은 있는 그대로 선아를 바라본다. 진우가 언뜻 철이 없고 유치해 보여도, 선아의 눈엔 시선이 깊은 진우가 밟혔을 것이다. 항상 긍정적이고 자존감이 높은 진우를 간파한 이후 진우를 좋아할 수밖에 없다. 진우는 선아의 세계를 확장했고, 선아에게 해방감을 선사했다. 진우 덕에 선아는 한번도 고심해본 적 없는 꿈에 관심을 기울였고, 불의에 저항할 줄 아는 사람이 됐으니까.

- 꿈의 실현은 선아와 진우, 그리고 둘의 친구들에게 중요한 화두다. 작품을 촬영하며 데뷔부터 지금까지 수차례 지향점을 달성해온 아티스트 다현의 지난 10년도 돌아보게 되던가.

살면서 처음 가져본 간절한 꿈은 ‘무조건 데뷔’였다. 데뷔하고 나니 음악 프로그램 1위를 하고 싶었다. 길을 걸으면 내심 사람들이 나를 알아봐주길 바랐고, 식당에서 밥을 먹을 때 우리 노래가 나왔으면 했다. 그런데 활동을 꽤 오래하며 미처 꿈꾸지 못했던 일들이 삶에서 자꾸 벌어진다. 얼마 전엔 호된 감기를 앓았다. 그래서 2025년 2월의 다현은, 구체적인 성과를 향해 나아가기 전에 건강을 다지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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