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M. 나이트 샤말란 감독의 영화세계 파헤치기 [1]
2002-08-02
글 : 김봉석 (영화평론가)
서스펜스의 철학자,혹은 육감의 과학자

배배 감은 터번과 꼬아올린 수염, 신비스런 눈동자의 현인? 아니다. 이성과 논리로 설명할 수 없는 초자연적인 현상을 영화 속에 녹여낸 <식스 센스>와 <언브레이커블>, 그리고 <싸인>의 인도계 미국인 감독 M. 나이트 샤말란은 너무 평범한 인상의 소유자다.

집 앞에서 쓰레기를 치우다 가벼운 눈인사로 넘겨버리고 말 법한 보통 이웃 같은 분위기의 샤말란은, 그러나 현재 할리우드에서 가장 촉망받는 시나리오 작가이자 감독이다. 그가 할리우드 안팎에서 큰 주목을 받고 있는 것은 5500만달러에서 7500만달러라는 비교적 적은 제작비를 들여 99년 <식스 센스>로 2억9천여만달러를, 2000년 <언브레이커블>로 1억달러 가까운 수익을 디즈니에게 벌어다준 ‘황금거위’라는 점 때문만이 아니다.

샤말란은 최근작 두편과 최신작 <싸인>을 통해 그는 우리가 불가사의라는 영역으로 밀쳐놓았던 주제를 자신만의 스타일로 담아왔다. 유령이라는 무서운 존재를 가장 아늑한 공간인 집안으로 끌어들이거나, 어떤 위험한 경우에도 털끝 하나 다치지 않는 초인을 찾아내거나, 미스터리 서클과 ‘외부세계’의 관계를 진지하게 탐험하는 과정에서, 그는 보통의 할리우드 감독처럼 스펙터클과 우스갯소리 대신 캐릭터간의 긴장과 진지한 이야기라는 ‘구시대’적인 가치를 사용해왔다. 첨단 테크놀로지와 등을 진 채, 순전히 이야기로 관객을 놀라게 해줄 방도를 찾고 있는 샤말란의 모습은 네온 사인으로 가득한 미국 대륙을 횡단하는 맨발의 인도 순례자의 그것을 연상케 하기도 한다. 발달된 ‘육감’으로 자신만의 ‘깨지지 않는’ 영화세계를 구축하고 있는 M. 나이트 샤말란의 영화와 이후의 ‘징조’들을 살펴본다.



대학 시절 자신의 미들네임을 ‘나이트’라고 지은 남자. ‘이름에 신비로움을 주기 위해서’ 붙였다는 미들네임 ‘나이트’는, M. 나이트 샤말란의 영화와 캐릭터를 묘사하는 더할 나위 없이 정확한 단어다. 유령, 초인, 미스터리 서클 등의 초자연적인 존재들이 횡행하는 시간이라면 당연히 ‘밤’ 아닌가. 밤의 시간에는 우리가 잊어버리고 있던 것들, 우리가 구석에 치워버렸던 것들이 툭툭 먼지를 털고 일어선다. 나긋한 움직임으로 천천히 우리의 시야 속으로 들어온다. 그것이 ‘사인’(sign)이든, 단순한 우연이든 결정하는 것은 자신의 선택이다. 샤말란의 영화는 늘 고요하다, 강요하지 않는다. 동의하지 않는다면 그냥 나가버리든가, 밤을 멀리하고 아침을 맞이하면 된다.

<식스 센스>는 그렇게 시작했다. 조용히, 새벽안개가 강물을 거슬러올라오듯 어느 틈에 우리의 주변을 차지해버렸다. 나이트 샤말란은 속삭였다. 우리가 보지 못하던, 소년이 보고 있는 것들을 보라고. 자신이 어디에 서 있는지, 무엇인지 알지도 못하던 말콤은 소년의 인도로 자신을 찾아간다. 샤말란의 말처럼, <식스 센스>는 공포영화가 아니다. 그건 극진한 멜로드라마다. <식스 센스>에서 보이는 ‘죽은 자’들은 누구나, 자신들의 억울함과 원한을 풀어주기를 바라고 있다. 그들은 사랑을 원하고 있다. 누군가 그들을 보고, 그들의 소원을 받아주기를. 그들에게 사랑을 베풀어주기를.

17살까지 45편의 단편영화 제작

샤말란의 특기는 그런 것이다. 유령, 초인, 미스터리 서클과 외계의 존재들. 대중문화가 열렬하게 소비하는 싸구려 피조물들. 그 피조물들을 끌어들여 인생의 깨달음을 던져준다. 소재의 특이함과 달리, 그의 영화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평범한 존재다. 말콤이 원한 것은 환자들과의 가슴이 통하는 대화였고, 행복한 가정이었다. <언브레이커블>의 엘리야가 원한 것은 유리알처럼 바스러지는 자신의 몸이 세상에 존재하는 이유였다. “<식스 센스>는 커뮤니케이션에 대한 영화였고, <언브레이커블>은 세상에서 자신의 자리, 목적을 찾아가는 영화다.”(샤말란) 샤말란의 영화에서 ‘초자연적 소재는 인간적인 이야기를 위한 메타포이며 자신의 존재를 돌아보게 하는 장치’일 뿐이다. 샤말란은 우리가 이미 잘 알고 있는 메시지를, 낯선 장르의 틀과 기묘한 이야기를 빌려 이야기한다. 기괴한 초자연적 현상들을 끌어들여, 어느 순간 눈이 번쩍거리게 한다. 그건 어린 시절 그를 사로잡았던 대중문화의 힘일까, 언제나 그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준 아시아 출신 가족의 힘일까.

M. 나이트 샤말란은 평범한 가정에서 자라났다. 1970년 8월6일 인도 마드라스에서 태어난 뒤, 미국으로 이주하여 어린 시절을 미국에서 보냈다. 그가 만든 영화들의 주요 배경이었던 필라델피아 지역은 그가 성장했던 곳이었다. 아버지는 심장전문의, 어머니는 산부인과 의사이고 열일곱살에 처음 만나 스물두살 되던 해에 결혼한 동갑내기 아내 브하바나도 의사다. 친척까지 포함하여 의사가 12명인 집안에서, 샤말란의 길도 당연히 의사였다. 우수한 성적으로 고등학교 졸업을 앞두고, 이미 명문 의대에 장학금까지 받으며 입학이 허가된 상태였다. 그러나 17살의 샤말란은 부모에게 의사가 아니라 감독이 되겠다고 선언한다. 의대가 아니라 뉴욕대 영화학과를 가겠다며. 부모는 너그럽게 받아들였고, 샤말란은 가족들과 다른 길을 걸었다. 어찌보면 무척이나 순탄한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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