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MCA야구단>의 화면 속 송강호는 통통한 볼살의 20대 후반의 청년이지만 지금, 소파에 걸터앉은 그는 분명 붉게 충혈된 눈과 거뭇한 수염, 미칠 듯이 범인을 잡고 싶은 마음에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최전선을 지키는 형사 박두만의 모습이다. <플란더스의 개>의 봉준호감 독이 메가폰을 잡은 <살인의 추억>은 1986년부터 1991년 사이 일어났던 화성연쇄살인사건을 배경으로 한 형사들 이야기. 이미 호창의 저고리를 벗고 후질한 체크남방을 입은 송강호는 <살인의 추억>에 대해 이야기를 할 때면 ‘허허’ 사람좋은 말투에서 낮선 흥분이 묻어나기도 했다.
송강호는 코미디를 좋아하오
“그런 것 같아요. 흥행을 하고 안 하고는 배우한테 그렇게 중요한 문제가 아니거든요. <복수는 나의 것>을 하고 났으니까 <YMCA야구단>을 선택한 건 아니라는 거죠. 다하고 싶었고 다 해야 하는 작품이었어요. 어떤 사람들은 송강호가 사실 코미디를 별로 안 좋아하는 게 아니냐고 묻는데 진짜 안 그렇거든요. 사실 코미디를 너무 좋아하죠. 하기 힘들어서 그렇지. 하기 힘들어서. 처음에 김현석 감독 봤을 때는 몰랐는데 보면 볼수록 상당히 ‘하이 코미디’를 추구하는 것 같아요. 정서적인 깊이랄까. 나이에 비해 정서가 깊고, 장면장면에서 향기가 나는 것 같더라구요, 향기가. <YMCA야구단>이란 영화는 시대적인 호흡을 잘 껴안은 코미디거든요. 요즘 보여지는 코미디는 돌출되는 유희들과 압도하려는 느낌만으로 가득 차 있는데 <YMCA야구단>의 유머는 숨기고 감춰요. 그 안에서 아련한 슬픔도 배어오는 거고. <살인의 추억>은 사실 꽤나 오래 기다린 작품이에요. <날 보러 와요>라는 연극을 알고 있었고 영화화된다고 했을 때 관심이 많이 생겼거든요. 시나리오를 기다렸고. 기대한 것 이상이에요. 특히 봉준호 감독은 정말 묘한 유머를 가진 사람이거든요. 좋은 영화 한편 나올 겁니다. 하- 핫하하하.”
나란히 서서 사진촬영을 하는 송강호와 김혜수를 보고 있자니, 나무 두 그루가 서 있는 것 같았다. 큰 나무에 찾아든 예쁜 새 한 마리가 아니라 각자 뿌리를 내리고, 양분을 얻고, 새를 불러들이는 나무 두 그루. 향도 다르고 키도 다르고, 빛깔도 다르고 나이테도 다른 이 두 나무는 그러나, 한데 어우려져 참 좋은 풍경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기 때문에 마주볼 수는 없지만 늘 존재만으로도 든든한 이들. 끝내 정림을 떠나보내야 했던 호창의 마음처럼, 연인보다는 동료가 어울리는 두 사람이지만 앞으로 수많은 계절 동안 ‘배우’라는 이름으로 동지일 이들은, 가끔 부는 바람에 서로의 가지들이 스칠 때, 자라나는 서로의 뿌리 끝이 땅 속에서 닿을 때, 세상 누구보다 따뜻하고 살가운 눈인사를 건네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