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문 광장 너머 위풍당당하게 서 있는 서양식 석조건물은 베이징인민대회당으로, 우리나라로 치면 국회의사당이다. 그 건물 앞에는 허가받은 차량이 아니면 어떤 차량도 정차할 수 없고, 그건 사람도 마찬가지다. 멋도 모르고 그 건물 앞을 얼쩡거리다간, 공안한테 잡혀가기 십상이다(필자를 포함한 일부 기자들은 이 구역을 헤매는 과정에서 실제로 신변에 위협을 받기도 했다).
건물 외관부터 앳된 보초병의 태도에 이르기까지 고압적이고 냉랭한 공기를 풀풀 풍기는 이 인민대회당이 ‘일개’ 영화 이벤트를 유치했다면 믿을 수 있겠는가. 더 믿기 힘든 것은 그 영화를 만든 이가, 한때 중국 정부의 출국금지 조치로 해외영화제 행차에 발이 묶였던, 유명하다는 죄로 당국의 극성스런 가위질에 시달렸던, 장이모 감독이라는 사실이다. 지난 12월14일 베이징인민대회당은 장이모의 신작 <영웅>의 기자회견과 리셉션을 위해 기꺼이 외부자의 출입을 허했다.
‘영웅’은 장이모였다. 장이모의 앞길을 막아서서 사사건건 딴죽을 걸던 중국 정부는 이제 그의 가장 든든한 후원자가 됐다. 기자회견과 리셉션이 있던 날, 인민대회당에선 정부 고위관리들이 모여 단체로 <영웅>을 관람했다. <책상서랍 속의 동화> <집으로 가는 길> <행복한 시절> 등 장이모의 최근작이 정치색이 없는데다 당국의 검열과정을 양순하게 따라 합법적으로 상영함에 따라, 장이모와 중국 정부 사이에 은근한 화해 무드가 흐르게 된 것. 게다가 장이모는 베이징아시안게임 개·폐막식 행사와 올림픽 유치 이벤트 등 정부 관련 행사에 깊숙이 관여하고 있는 중이다. 물론 그것만으로는 충분치 않았을 것이다. <영웅>이 이처럼 중국 정부의 이례적이고도 전폭적인 지지를 얻게 된 데는, 이것이 중국 영화사상 최대의 자본(3500만달러로, 순수한 중국 자본이다)과 최고의 인력이 투입된, 국보급 프로젝트이자 문화 상품이라는 사실에 있다.
중국 언론도 만만찮게 흥분하고 있었다. 1천여명의 중화권 취재진이 몰린 기자회견에서 스포트라이트는 장이모에게 집중됐고, 질문자 대부분은 “영광”이라거나 “자랑스럽다”는 찬사로 운을 띄웠다. 진나라 군사로 분장한 베이징 체대 학생 100여명의 호위를 받은 장이모는, 영화 속 진시황이 부럽지 않아 보였다.
판타지로 간 장이모
그렇지만 장이모에게 걱정근심이 없는 건 아니었다. 한동안 현대 중국인의 삶을 사실적으로 응시하는 리얼리즘영화를 만들어온 그가 별안간 무협서사 블록버스터를 만들겠다고 나섰을 때, 중국의 후배 감독과 평론가 사이에선 “장이모가 영웅이 되고 싶어 저런다”는 비아냥이 흘러나왔다.
장이모는 그런 의혹에 대해선 차라리 담담했다. 그는 중국 영화산업에 공헌할 수 있는 작품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고, 지금도 그 생각엔 변함이 없는 듯 보였다. 기획단계부터 그를 괴롭힌 것은 <와호장룡>의 성공에 편승하려 한다는 비난이다.
이런 의혹을 부추기는 것은 <와호장룡>의 프로듀서 빌 콩이 <영웅> 제작의 수장을 맡았다는 사실. 일부에선 빌 콩이 <와호장룡2>의 컨셉으로 준비하던 프로젝트가 리안의 거절로 장이모에게 넘어간 것이라는 추측도 일었다.
<영웅>이 <와호장룡>과 연관지어지는 것에 대해 장이모가 민감하게 반응할 만했다.
“원래 김용의 소설을 영화화하고 싶었지만, 사정이 여의치 않아 새로운 이야기를 쓰게 됐다. <영웅> 시나리오를 완성하고 나니까, <와호장룡>이 큰 이슈가 되고 있었다. 내가 따라하는 것처럼 된 상황이라, 프로젝트를 취소할 생각까지 했다. 그러나 이렇게 완성했고, 여기까지 왔다.”
그렇다면 <영웅>이 오스카 콤플렉스로 똘똘 뭉친 프로젝트라는 건 사실일까. 장이모는 오스카 수상에 별 욕심이 없다는 듯, “(<와호장룡>에 이어) 그런 기적이 내게 다시 일어나주리라고는 생각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러나 <영웅>은 오스카 후보의 요건을 갖추기 위해 지난 10월 선전에서 일주일간 상영한 바 있다. 어쨌거나 이 모든 소문의 진상은 <영웅>이라는 영화, 그 실체를 직접 만나야 알 일이었다.
<영웅>은 진시황이라는 역사적 인물을 둘러싼 서사와 무협의 판타지가 결합한 무협 서사극이다. 이야기는 전국이 7웅으로 분리돼 있던 춘추전국시대, 막강한 병력을 휘두르며 천하통일을 꿈꾸던 진나라 영정(진시황)의 궁으로 베일에 싸인 무사 무명(이연걸)이 찾아들면서 시작된다.
무명은 당시 영정의 목숨을 노리던 자객 은모장천(견자단)과 파검(양조위), 그리고 비설(장만옥)의 검을 바치며, 자신이 그 세 자객을 처치했다고 보고한다. 영정은 무명의 공을 높이 사, 자신을 10보 앞에서 알현하게 하고, 세 자객을 처치하게 된 경위를 묻는다.
무명은 파검과 비설이 서로 사랑하는 사이였다는 점을 노려, 이들 사이를 이간한 뒤 질투심과 복수심을 불러일으켜 손쉽게 처치했다고 밝힌다. 그러나 영정은 무명의 그 말을 믿지 않는다. 한때 파검의 습격에 상처를 입은 바 있는 영정은 파검을 비롯한 세 자객들의 면면을 잘 파악하고 있었던 것. 영정은 무명에게 그가 알고 있는, 또는 짐작하고 있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영정은 파검과 비설이 서로 극진히 사랑하는 사이로, 자신을 해할 수 있는 인물로 무명을 낙점한 뒤, 정해진 각본에 의해 자신들을 희생한 것이라고 말한다.
진실은 무엇일까. 이제 남은 열쇠는 무명이 영정에게 바친 파검의 글씨 ‘검’(劒)이다. 영정은 무명의 그 글씨에서 범상치 않은 메시지를 읽는다. “무사도의 기본은 사람과 검이 하나가 되는 것이요, 다음은 무장하지 않되 가슴에 검을 품는 것이요, 으뜸은 손에도 가슴에도 검을 품지 않으며, 평화를 추구하는 것이다.” 그러나 파검의 그러한 뜻이 영정을 움직이진 못한다. 영정은 천하를 통일했고, 진시황으로 등극했으며, 그것은 고쳐 쓸 수 없는 역사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