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아름다운 배우, 양조위와 장만옥 [4] - 장만옥 ②
2003-01-24
글 : 백은하 ( <매거진t> 편집장)
사진 : 정진환

한물간 프랑스 감독이 <동방삼협>에서 인상적인 연기를 보였던 장만옥을 캐스팅해 뱀파이어영화를 리메이크하려고 하지만 결국 무산되고 만다는 해프닝을 통해 프랑스 영화판을 풍자한 ‘영화에 대한 영화’, 올리비에 아사야스의 <장만옥의 이마베프>에서 ‘한때는 휼륭했지만 더이상 휼륭하지 않은’ 극중 감독 르네 비달에 대해 장만옥은 그를 부정하는 대부분의 사람들과는 달리 끝까지 감독을 옹호하고 그에 대한 믿음을 철회하지 않는다. 그것은 자신이 ‘선택한 영화’였기 때문이다. “물론 작품과 관련된 의견을 많이 내는 편이긴 하지만 내가 그 영화를 선택한 이상 결국 배우로서 가장 중요한 건 감독의 의도를 최대한 가깝게 표현해내는 것 이라고 생각해요. 영화가 상영될 때, ‘내가 저렇게 하자고 해서 저런 식으로 표현된 게 좋았어’라고 스스로 만족하기보다는 감독이 ‘연기를 참 잘했어’ 하고 인정해주는 편이 훨씬 좋다는 거죠.” 그렇게 장만옥은 철저히 감독의 영향력 아래에 놓이려는 배우다.

“장이모 감독을 비롯해 다른 많은 감독들은 나에게서 강하고 억센 부분을 찾으려고 해요. 하지만 왕가위는 끊임없이 내 여성스러운 부분을 끄집어내죠. ” 결국 붓을 쥐고 있는 사람에 따라 장만옥은 늘 다른 장만옥으로 존재하는 것이다. “3초 동안 클로즈업을 찍겠다고 한다면 정확히 3초 안에 연기를 끝내야 하는” 장이모 감독의 영화와 “아무런 스크립트 없이 촬영장에 등장하는” 왕가위의 영화 속에서 각각 아주 다른 느낌으로 채색될 수 있었던 것은, 다작으로 다져진 모든 홍콩 배우들의 공통적인 유연함일 수도 있겠지만, 백지상태에서 역할과 촬영환경을 받아들이는 작업태도에서 비롯된 결과일 것이다. “인정해요. 저는 다른 어떤 배우들보다 감독에 따라 많은 부분 영향을 받는 배우죠. 하지만 나이가 들면서 점점 깊어져가고 있는 내 자신을 발견해요. 서서히 ‘장만옥다운’무언가가 생겨나는 것 같은 느낌….”

매기 청(Maggie Cheung), 어쩌면 그녀는 이 이름으로 살았던 시절이 더 많았는지도 모른다. 1964년 홍콩에서 태어나 8살 때 영국의 켄트로 가족이 이민간 뒤 동네와 학교에서 유일한 중국 아이로 “심한 놀림을 받으며” 자라났던 소녀는 17살 때 다시 홍콩으로 건너왔고, 우연히 에이전트에 발탁되어 84년 미스홍콩으로 선발되기에 이르렀다. 이후 홍콩 배우로서 살았던 십여년을 거쳐 <장만옥의 이마베프>를 인연으로 만난 프랑스 감독 올리비에 아사야스와 결혼해 파리와 홍콩을 오가며 살았고, 지난 2001년 3년6개월 만에 결혼생활이 파경을 맞은 이후 중국영화 <영웅>에 출연했다. “나는 70%의 영어와 70%의 중국말을 써요. 그 두개의 언어가 가끔 내 안에서 충돌하곤 하죠.” 이런 그녀의 바이오그래피를 아는 사람이라면 웨인왕의 <차이니스 박스> 속 진은 마치 장만옥을 두고 만들어진 역처럼 보이는 게 당연하다. “진 역을 놓고 다른 어떤 배우도 생각할 수 없었어요. 누구도 장만옥의 영국식 영어와 광둥어가 섞인 독특한 억양과 목소리를 흉내낼 수 없다고 생각했죠. 그녀는 영국과 중국을 한몸에 품고 사는 사람이에요” (웨인왕) 현재는 “좋은 친구 사이로 남아 있다”는 올리비에 아사야스는 <장만옥의 이마베프>를 찍으며 그녀에게 전형적인 중국 여인의 연기를 요구하지 않았다. “그는 나에게 상당부분 유럽인다운 태도가 잠재되어 있다는 것을 알았고 그것이 영화에서 그대로 드러나는 것을 반겼죠.”

하지만 이런 코스모폴리탄적인 성장과정과 자유분방한 사고방식에도 불구하고 장만옥은 스스로를 “어딜 가도 홍콩 사람”이라고 말한다. “성장환경이나 지나온 경험들은 나를 보통의 홍콩 사람들보다는 많은 것을 포용할 수 있는 사람으로 만들어주었죠. 홍콩엔 지금 제가 하고 있는 이런 폭탄머리 스타일조차 이해 못하는 보수적인 사람들도 많아요. (웃음) 하지만 그뿐이에요. 난 정체성의 혼란을 느껴본 적은 없었어요. 그저 ‘포용력 있는’ 홍콩 사람일 뿐이죠.”

결국 2003년 홍콩의 영화계는 분방한 기개로 천하를 호령했던 임청하의 웃음소리가 아니라, ‘향기로운 항구’를 적셨던 매염방의 관능미 넘치는 입술이 아니라, 애크러배틱에 가까운 무술을 선보이며 할리우드로 날아간 ‘예스마담’ 양자경의 발차기가 아니라, 그 누구보다 약해 보였고, 생각없어 보였고, 자국에 대한 애정이 없어 보였던 장만옥의 가느다란 어깨 위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는 것이다.

“세상엔 불가능한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장만옥을 못생기게 찍는 것이다.” (크리스토퍼 도일)

올해 나이 마흔살. 그러나 그녀도 늙는다. “물론 신인 연기자였을 땐 내가 예쁠까, 쟤가 예쁠까 하는 생각을 많이 했지만 이젠 그런 식의 비교나 생각 자체가 무의미한 때가 도래한 것 같아요. 중요한 건 자신감이에요. 어릴 때는 누군가 네 영화는 재미없어라고 말하면 아예 보러 가지 않은 적도 있었어요. 하지만 이제는 남들이 싫다고 생각해도 내가 믿는 것을 믿는 나이가 된 거죠. 이런 인식의 전환은 서른다섯살이 넘어가면서 서서히 찾아온 것 같아요. 옛날에는 모든 것을 다 알아야하고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남들에게 보이는 것을 즐겼지만 지금은 그것이 진실로 아는 게 아니었다는 생각을 하는 거죠. 요즘엔 모르는 게 있으면 모른다고 대답하는 게 좋아요.”

1991년작 <완령옥>에서 관금붕은 “당신은 반세기 뒤에도 사람들이 당신을 기억해 주길 바라나요”라고 장만옥에게 물었다. 그리고 그녀는 “사람들이 기억하고 안 하고는 저에겐 별로 중요하지 않아요, 미래에 사람들이 날 기억하더라도 완령옥 같진 않겠죠. 25살 영화배우로서 최고 전성기였을 때 자살한 뒤 그녀는 전설이 되었어요. 나는 그렇지 않았잖아요”라고 대답했다. 2003년, 그로부터 12년이 흘렀고 장만옥은 마흔이 되었다. 그리고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은 “여전히 기억해주고 안 해주고에 연연하지 않지만, 이젠 사람들이 나를 끝까지 기억해줄 거라고 믿는다”는 자신감으로 바뀌었다. 그녀의 허리가 일흔살까지 잘록하기를 바라는 건 아니다. 다만 그 순간까지 그녀가 여전히 죽지 않고 우리 곁에 배우로 남아주길 바라는 것이다.

장만옥, 그녀 스스로가 말하길…

˝그와의 연기,은밀한 테니스 게임처럼˝

1984년 양조위와 첫 만남
TVB 드라마 <신찰사형>

18년 전, 아직도 그 순간이 생생히 기억난다. 그때 당시 나는 고작 두 번째 연속극을 찍고 있는 햇병아리였고 그는 이미 TVB의 유명스타였다. 처음엔 그 앞에 서는 것 만으로도 겁이 났었다. 눈도 잘 못 맞추고…. 혹시 연기를 못한다고 무시하지 않을까, 늘 주눅이 들었던 것 같다. 지금 하나도 안 겁난다. (웃음) 그렇게 되었다는 게 다행이다.

내가 보는 양조위

양조위는 누구보다 예민하고 센시티브한 배우다. 배우에게 예민하다는 것은 정말 중요한 덕목이다. 또한 그가 연기에 몰입하는 태도는 늘 존경스러울 정도다. 이를테면 현장에서 농담하고 놀고 있다가도 슛이 들어가면 그는 무서운 속도로 극에 몰입한다. 그는 이미 양조위가 아니고 파검이고 차오이고, 영화 속 인물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그런 그와 함께라면 나 역시 이미 장만옥이 아니다. 이건 테니스를 치는 것과 마찬가지다. 상대편이 좋은 공을 쳐줘야 나 역시 좋은 공을 칠 수 있다. 이건 매우 사적이고 은밀한 느낌일 거다. 현장에서 어떤 스탭들도 느낄 수 없고 우리 둘만이 느낄 수 있는 감정. 그렇게 우리 둘이 함께 연기가 제대로 되어간다고 느낄 때면 어떤 식의 희열이 밀려오곤 한다.

왕가위와 나

왕가위와의 만남은 두 사람 모두에게 시기적으로 참 적절했던 것 같다. <열혈남아>는 왕가위의 데뷔작이었고, 나 역시 3, 4년간 연기를 해왔지만 연기란 게 무엇인지 모른 채 그 시간들을 소비해오던 차였다. 그러니까 내가 진정으로 연기를 시작한 것은 왕가위를 만난 이후, 그 시기부터였던 것 같다. 왕가위는 나에게 이런 영화가 재미있고 유럽에 이런 감독들이 있다. 요즘엔 이런 영화를 보는 게 어떠냐는 등의 이야기를 많이 해주었다. 그로 인해 나는 영화라는 것이 무엇인지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했고 비로소 영화 보는 시각을 조금씩 넓혀갈 수 있었다.

홍콩에서 배우로 산다는 것은…

다른 나라에서 배우로 산다는 것과 크게 다른 점은 없다. 하지만 홍콩 관객은 여전히 배우의 연기보다는 외모를 보고 판단하고 있다. 난 여전히 서른살짜리 연기를 할 수 있지만 사람들은 나를 이미 늙었다고 생각한다. 프랑스 여배우처럼 개인으로 보는 게 아니라 그저 예뻐야 하는 여자로 보는 것이다. 또한 여전히 가볍고 말초적인 영화에만 열광한다. 이것이 홍콩 관객의 한계인 것 같다.

내 인생의 ‘화양연화’

내 인생의 화양연화라…. 지금, 혹은 내일 나는 상당히 낙천적인 사람이기 때문에 개인적으로도 현재가 제일 좋고 오늘보다 내일이 더욱 나아질 거라는 믿음이 있다. 배우로서도 계속 나아길 거라는 희망이 있고. 외모로 보았을 때는 서른살 때쯤 그때가 가장 아름다웠던 때가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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