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성치는 늘 난 배우가 될 거야, 스타가 될 거야, 하는 꿈을 자주 이야기하곤 했다. 아무래도 날마다 듣다 보니 세뇌가 됐는지 나도 모르게 그래 그게 좋은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던 스무살 즈음의 두 친구는 TV에서 TVB 배우스쿨 모집광고를 봤고, “주성치가 가자, 가자, 하기에 아직 젊으니까 이것저것 해보는 것도 좋겠다 싶어서” 같이 원서를 냈다. “어차피 1년 과정이니까 싫으면 끝나고 나서 더 안 하면 된다”는 심정으로 그냥 한번 내 봤다는 원서는, 뜻밖에 평생의 길을 열어주는 열쇠가 됐다.
1년간의 연기 수업이 끝나고도 그만두지 않았던 이유는, 새로운 소통 방식에 매료된 탓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힘들거나 열받는 일이 있어도 속으로 꾹꾹 눌렀다. 겉으로 표현하지 못했고, 사람들 앞에서 폭발시키지 못했는데 연기를 하면서 아 이런 방법이 있구나 했다. 그동안 꾹 눌러왔던 정서들을 연기를 통해서 하나씩 표출할 수 있었다. 나처럼 자폐증이라고 생각해온 사람한테는 아주 좋은 치료법이다. (웃음)” 캐릭터에 따라 다양한 삶을 살아볼 수 있는 연기는, 양조위에게 비밀의 구멍과 같았다. 그 구멍에 지금껏 드러내지 못했던 속내를 털어놓고, 전혀 다른 극중 인물로 포장해 봉할 수 있었기 때문. “가수라면 사람들과 직접 마주하고 혼자 무대에서 노래를 해야 하는데, 다들 나만 쳐다보기 때문에 창피해서 견딜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연기는 항상 하나의 막을 사이에 두고 있다. 그 막을 통해서 나를 보기 때문에 내가 움직여도 양조위가 아니라 그 인물이라고, 내가 울어도 그 인물이 운다고 생각하니까 뭐든 자연스럽게 할 수 있었다.”
그러니까 우리는 그 얇은 막을 사이에 두고, 실은 진짜 양조위를 조금씩 엿보고 있는지도 모른다. 라디오헤드의 이 흐르는 나이트클럽에서 지독한 우울함에 잠긴 <씨클로>의 시인같은 갱도, <중경삼림>의 소심하지만 사람 좋은 경찰도, 명예나 돈보다 빈민가에서 창녀들을 기꺼이 돌보는 삶을 즐기는 <양조위의 류망의생>의 속 깊은 의사 유문도, 변덕스러운 연인 때문에 마음 아파 하는 <해피 투게더>의 아휘도, 다들 조금씩 그와 닮아 있는 셈이다. “어쨌든 시나리오를 골랐을 때는 그 안에 내가 있다. 내가 양조위를 완전히 벗어나서 이연걸이 될 순 없다. 한번도 안 해본 역할, 전혀 나랑 다른 역할을 해보고 싶어서 골라도 결국 나랑 공통점이 있다. 어쩔 수 없다. 그게 나라서 피할 수 없다. 배우가 할 수 있는 게 많진 않다. 내가 완전히 딴판으로 변한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다.” 그래서 대의를 위해 진나라 왕의 암살을 포기하는 <영웅>의 사색적인 검객 ‘파검’까지, 양조위의 캐릭터들은 “과묵하고, 수줍어하고, 다른 사람이 나를 어떻게 보느냐에 굉장히 신경 쓰고, 피동적”인 양조위를 담고 있다. "그런데 또 반대로 너무나 많은 역할들을 해보기 때문에 그 역할들의 성격이 오히려 지금의 내 안에 들어와 있는 것도 있다. 아무래도 심리치료사를 찾아가 봐야 하지 않을까”
왕가위의 94년작 <중경삼림>에서, 연인과 헤어진 경찰은 방 안의 온갖 사물들을 향해 대화체의 독백을 읊조린다. <아비정전>으로 왕가위 감독을 만났을 무렵, 아마 양조위도 그 비슷한 독백을 되뇌고 있었을지 모른다. 지금 네 꼴이 뭐냐고. 오우삼의 <첩혈가두>는 그래도 나은 편이었지만, <마화정> <천녀유혼3> 등 많게는 1년에 5편이 넘는 졸작 행진에 지쳐갈 때였다. “영화와 TV 시리즈물을 오가며 심각한 매너리즘에 빠져 있었다. 연기를 계속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했다. 더이상 새로울 것이 없었는데, 왕가위가 <아비정전>을 찍자고 했다.”왕가위가 <포지티브>와의 인터뷰에서 지난 10년간 자신에게 영향을 준 중국영화로 <비정성시>를 꼽은 점을 감안하면, 두 사람의 만남은 시간문제였는지도 모른다. <열혈남아>를 재밌게 봤던 양조위는 2부작으로 예정됐던 <아비정전>의 1부 주인공으로 흔쾌히 합류했다. “처음엔 꽤 헤맸다. 왜 그런지 모르겠더라. 난 10년 이상 배우로 활동해왔고, 잘한다고 생각했는데 그 단순한 장면 하나를 끝낼 수가 없었다. 나중에 그 장면을 보곤 스스로 놀랐다. 지금은 다시 하래도 그렇게 안 나온다. 매일 아침 도박을 하러 가기 위해 준비하는 도박사의 습관적인 모습인데, 그때 한 게 가장 자연스럽고 최고다.” 결국 <아비정전>은 완성되진 못했지만, 양조위는 지금도 손톱을 다듬고, 머리를 빗고, 돈과 카드를 챙기는 <아비정전>의 마지막 장면을 “자신있게 제일 잘했다고 말할 수 있다”고 할 정도다.
“양조위는 카메라 앞에서 비상식적인 것을 하는 위험을 무릅쓰지 않는다. 그는 섬세하고 매우 집중력 있는 배우다. 난 그에게 변화를 주고 싶었고, 그의 균형을 깨뜨리고 싶었다. 그에게서 다른 악센트를 끌어내고 싶은 욕심이 있었기 때문이다.”(왕가위)
“음악 한곡, 시놉시스 열줄 정도”는 있지만 각본도, 스토리도 거의 현장에서 나오는 왕가위와의 작업은, 양조위의 연기에 또 다른 숨통을 틔워줬다. “굳이 꼽으면 나와 제일 비슷한 캐릭터”라는 <중경삼림>의 경찰, <동사서독>의 검객, 번번이 상처받으면서도 떠났다가 돌아오길 반복하는 연인을 감싸안는 <해피 투게더>의 아휘, 아내의 불륜 상대의 부인과 미묘한 감정에 빠지는 <화양연화>의 차우 등 왕가위의 영화들에서 양조위는 비로소 가장 편안해진 듯하다. “배우에게 많은 자유를 주지만 자신이 그 배우에게 원하는 게 뭔지 정확히 알고 있는” 왕가위의 카메라 앞에서, 자연스럽게 역할에 익숙해지는 시간을 얻었기 때문이다. 아휘가 보영과 이별한 슬픔을 땅 끝에 묻어주겠다는 장의 녹음기 앞에서 흐느낄 때나, <화양연화>에서 아내의 불륜을 알게 된 차우의 얼굴에 미묘한 그늘이 내릴 때, 양조위는 사랑에 버림받은 이들의 상처의 속살을 세심하게 드러낸다.
어느덧 마흔둘. 불혹을 넘긴 나이지만, 양조위에게 인생의 가장 아름다운 한때라는 ‘화양연화’는 바로 지금이다. 어린 날의 상처에 관대해지면서 삶을 즐길 여유도 생겼고, “운명적으로 내가 좋아할 수 있는 일을 만났다”는 영화를 하고 싶은 만큼 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전히 <동경공략>같은 액션영화도 찍는 한편, <아비정전>부터 헤아리면 12년 동안 5편의 영화를 함께한 왕가위와 함께 6번째 영화 을 찍으면서, 그는 이번에는 또 어떤 영화가 나올지 궁금해하고 있다. “미래사회에서 편지를 배달하는 우편배달부”라는 것 정도만 확실한 왕가위의 영화처럼, 영화가 있을 거라는 것 정도만 확실한 수많은 날들이 남아 있지만, “한 계단 지나 또 한 계단인데 망설일 게 뭐가 있나”(<양조위의 류망의생>, 유문의 대사 중에서).
˝현실이 싫어서 연기가 좋았다˝
양조위, 그 스스로가 말하길…
1984년 장만옥과 첫 만남,
TVB 드라마 <신찰사형>(新紮師兄)그때 장만옥은 연기가 뭔지 몰랐던 사람이었다. 아마 처음 아니면 두 번째 출연작이었을걸 굉장히 잠재력 있는 사람인데 스스로 그걸 깨닫지 못하고 있구나, 그렇게 생각했다. 나중에야 연기를 즐기게 됐지만. 나 난 첫날부터 연기하는 것 자체를 즐겼다. (웃음) 현실을 워낙 싫어하는 사람이었으니까.
내가 보는 장만옥
똑똑하고, 생각이 분명하고, 정말 연기를 좋아하는 배우. 홍콩에서 요즘 나온 신인 중에는 연기를 좋아해서 하는 배우들을 보지 못했다. 유명해지기 위해서도 아니고, 돈을 벌기 위해서도 아니고, 오로지 정말 연기가 좋아서 하는, 그리고 자신이 열심히 한 연기를 나중에 보면서 성취감을 느끼고 만족하는 배우가 사실 드문데, 장만옥은 그런 배우다. 이런 배우만이 점점 더 자랄 수 있다. 연기 외의 다른 곳에 목표를 두고 있으면, 자신의 연기가 그렇지 않은 사람과 달라지지 않을까. <영웅>만 해도, 시나리오 받은 날부터 찍기 시작한 날, 그리고 촬영이 끝나는 날까지 거의 매일 서로 영화에 대해 얘기했다. 정말 연기를 즐기는 사람이다.
왕가위와 나
나처럼 18년 정도 연기를 하다보면, 자신만의 리듬 혹은 전형이 생기는 것 같다. 그래서 너무 많이 준비하면 어떤 식으로든 자신의 연기를 제한하게 된다. 그걸 깨고 싶어 하지만 익혀온 것, 배운 것을 잊기란 정말 힘들다. 왕가위와의 작업은 그걸 잊을 수 있게 했다. 준비할 수도 없고, 뭘 할지 모르니까. 그냥 가서 제로 상태부터, 본능대로 하는 거다. 왕가위는 각본도 거의 없고, 어느 배우가 먼저 몰입하느냐에 따라서 달라진다. 내가 몰입했다 싶으면 얼른 와서 나를 찍고, 다른 배우가 몰입하면 그쪽을 찍고, 혹은 다른 사람은 아무도 몰입하지 않았는데 스스로 몰입하면 자기 생각대로 찍는다. (웃음) 매일매일 변한다. 이런 방식은 왕가위 감독과만 가능하다. 왕가위는 이미 가족이 됐고, 이제 그의 현장에 가면 거의 모든 사람을 다 아니까 꼭 집에 돌아온 기분이다. 일하러 온 게 아니라 집에 쉬러 온 것 같은. 정말 편하다.
홍콩에서 배우로 산다는 것
알다시피 홍콩 배우들은 다작을 한다는 게 특징인데, 장단점이 있다. 단점은 너무 많은 작품을 한꺼번에 하기 때문에 생명력이 짧아질 수 있다는 것. 배우로서는 위험한 일일 수 있다. 하지만 거꾸로 다작을 통해 많은 역할을 해볼 기회가 생기는 것은 장점이다. TVB 연기 수업을 마친 당시 물론 연기를 어떻게 해야겠다는 생각은 있었지만, 만약 내가 홍콩 배우가 아니었다면 이렇게 해보고 저렇게 해보고 실험할 수 있는 실질적인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겠지. 홍콩에서 배우를 했기 때문에 오히려 내 생각 외의 이런저런 역할들을 해보며 경험을 쌓을 수 있었다.
내 인생의 ‘화양연화’
‘화양연화’는 보통 여성들에게 많이 쓰는 말이라고 생각했는데…. 나한테는 ‘지금’이 ‘화양연화’라고 말하고 싶다. 이제는 경험이 있고, 좀더 성숙해졌고, 삶의 모든 사소함을 소중히 여길 줄 알게 됐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