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박찬욱-류승완,<지구를 지켜라!>를 권하다 [2]
2003-04-11
글 : 문석
사진 : 조석환

찬욱▷승완: 진짜 죽이는 삭제장면이 있어

류승완 | 이 영화에서 B급영화 정서가 흐른다는 말이 많은데, 제가 볼 때 장준환 감독은 참 특이해요. 감독 본인은 B급영화를 좋아하지 않거든요. 어쩌다 저랑 영화 얘기를 하다보면, 놀랍다는 눈을 하면서 그 느릿느릿한 말투로 ‘어 넌 어떻게 그 영화들을 다 봤니?’ 이런다고요. (웃음) 아무튼 그 영화가 좋은 이유 중 하나가 그런 건데, 뭔가 아슬아슬한 지점이 있잖아요. 어느 쪽으로 좍 가는 게 아니라, 위태위태하게…. 그게 영화의 긴장이 돼서 몰아붙여요. 연기도 마찬가지에요. 이 사람이 영화광 출신이고, 그런 장르영화에 나오는 배우들의 설렁설렁한 연기에 중독돼 있었더라면 이렇게 만들지 않았을 거예요. 그런데 연기 연출하는 방식은 정공법이잖아요.

박찬욱 | 난 옛날 존 벨루시 시절 <새터데이 나이트 라이브>가 떠오르더라. 그때 이 TV쇼에 나오던 코미디언들은 다 마약중독자였단 말야. 그 미치광이, 마약중독자들이 나와서 미쳐버린다고. 이 영화엔 그런 무드가 있었어. 아주 좋았어. 그렇게 광기에 휩싸이는 영화가 한국에 별로 없었잖아.

류승완 | 저는 장 감독이 감수성에서 영향받은 지점이라면 B급영화로부터가 아니라 B급인생이 아닐까, 생각해요. 거기 나오는 폭력을 보면 그런 생각이 들어요. 김지운 감독님이 옛날에 <피도 눈물도 없이>를 보고 나서 제 영화에 나오는 폭력이 되게 히스테리컬하다는 느낌이라고 하셨거든요. 그런데 <지구를 지켜라!>에 나오는 폭력도 여유가 없고, 광적이고….

박찬욱 | 너무 잔인하더라. 뒷부분에 연구소에서 백윤식씨가 하균이를 X나게 팰 때, 너무 무섭더라.

류승완 | 최근에 비교할 만한 영화가 있었던 것 같긴 한데…. 물속에서 발목 끊고, 그러는. (<복수는 나의 것>을 극히 우회적이고 간접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박찬욱 | 그래도 이건 좀 너무하더라.

류승완 | 그게 제 생각에는 약자이기 때문에 나오는 것 같아요. 강자라면 폭력의 카타르시스가 느껴지게 할 것 같은데 그렇지 않거든요. 여기서 약자란 개인이 약하다는 얘기가 아니라 자신이 위치하고 있는 입장이나 그런 게 그런 편이란 거죠. 그리고 단편 <2001 이매진>하고 같은 연장선상에서 약간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같은 것도 느껴지거든요. 엄마에 대한 집착이나. 기본적으로 홀로서기가 잘 안 되는 인간에 대한 애정 같은 게 있어요.

박찬욱 | 그 인간이 그래?

류승완 | 아니, 뭐 그렇다기보다는….

박찬욱 | 너 삭제장면 아냐? 하균이가 굉장히 아쉬워하는 삭제장면이 있더라구. 추 형사를 추락사시키는 장면 있잖아. 그 다음 장면에서 카메라가 빨랫줄에 널려 있는 마네킹 팔들을 죽 트래킹한대. 그런데 그 팔들이 흔들흔들하는 거야. 그리고 저 멀리서 하균이가 도끼질을 하고 있는 게 포커스아웃으로 비쳐지고. 그러니까 도끼질 진동에 흔들거리는 거야.

류승완 | 카아~.

박찬욱 | 아주 리드미컬하게. 그리고 트래킹의 마지막은 진짜 팔이지. 추 형사의 팔. 그게 참 좋았다더라구. 차승재 대표도 아주 잘 찍은 장면이었다 하고. 감독이 왔기에 그걸 왜 뺐냐구 그랬어. 너무 폭력적이어서 뺐다고 한다면 잘못 생각하는 거다, 지금 남아 있는 데서도 훨씬 폭력적인 장면이 많다고. (웃음)

류승완 | 감독님, 근데 삭제장면이 걸작이란 얘기는…. 우리가 항상 쓰는 수법이잖아요. 정말 죽이는 장면을 삭제할 수밖에 없었다. 뭐 이렇게….

박찬욱 | 장준환 감독이 그 장면에 대해서 뭐라고 하냐면, “참 아름다운 커트였죠”.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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