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봉준호 감독이 쓴 <살인의 추억> 포토 코멘터리 [3]
2003-04-18

연기 前 & 연기 中

술집에서의 난투극 장면, 몸이 뒤엉킨 채 씨익 웃고 있는 송강호 선배의 모습. 물론 카메라가 돌아가기 전이다(사진 왼쪽). 저렇게 여유있는 낄낄거림으로 몸을 풀다가, 어느 순간 카메라가 돌아가기 시작하면 맹수 같은 에너지를 폭발시키는 모습(사진 오른쪽). 이 두개의 사진을 번갈아 보다보면 역시 배우는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란 걸 깨닫게 된다.

축하합니다.

촬영기간 중엔 늘 누군가의 생일을 맞이하게 마련. 이날은 이강산 조명감독님의 생일(사진 왼쪽). 나는 자꾸만 케이크 위를 가득 메운 촛불 숫자를 세어보려고 애를 썼다. 이강산 감독님의 연세가 궁금하기도 했고…. 그동안 하신 작품 숫자와 촛불 숫자 중에 어느 게 더 많을까 생각도 해보고…. 한편 김형구 감독님은 “내 생일은 3월인데… 이상하게 열 몇 작품이나 하는 동안 한번도 촬영기간 중에 생일을 맞아본 적이 없어. 3월에 현장일 한 적이 한번도 없었단 말야…” 하시며 입맛을 다시셨다. 그 말을 들은 나는 이번 영화촬영을 어떻게든 3월까지 연장(?)시켜보려고 애썼으나, 안타깝게도 우리의 촬영은 2월 말경 촬영횟수 99회를 끝으로 막을 내리고 말았다(참고로 김형구 감독님의 차기작 <영어 완전 정복>은 4월에 크랭크인하신다. 3월만 또 건너뛰셨군).

황공하옵니다.

다 불어!

빛의 연금술사들

특히 김상경은 취조실 분량을 앞두고 오래 전부터 조금씩 체중을 줄이고 얼굴을 꺼칠하게 만드는 등 자신의 육체를 세밀하게 컨트롤하면서 배역에 몰입해갔다. 그것이 절정에 달했을 즈음 지하 취조실 장면을 찍었다. 반사광을 받아 번들거리는 상경의 흰자위를 보면 ‘살짝 미친놈’ 같아서 좋았다. 그와 마주앉은 용의자 박현규(박해일)의 눈빛. 고백하건대 만일 내가 여자였거나 게이였다면 죽어라고 박해일을 따라다녔을 것 같다. 반장역할로 나오시는 송재호 선생님의 눈빛 또한 묘한 기운을 뿜어낸다

무슨 생각하냐구?

과연 이렇게 기가 센 배우들과 작업하다 보면 온몸에 힘이 쭉 빠져나가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된다(사진). 세트 한복판에 멍하니 앉아 있는 나의 모습. 그뒤로 뭔가 골똘히 생각하고 있는 송강호 선배의 모습도 보인다. 그러나 사진 오른 쪽에 보이는 연출부 혁재는 이 순간에도 정신없이 어디론가 움직이고 있다. 좀처럼 앉아 있을 틈이 없는 연출부 생활을 어찌 견뎌내는지…. 어쨌건 분량도 많았던 세트장신들이 하나하나 끝나가고, 이제 엄동설한의 1월 날씨에 칼바람 부는 야외로 다시 나가 클라이맥스 시퀀스를 찍어야만 한다.

비야, 내려다오

멀리 경상남도 사천, 기차가 일주일에 한번만 다닌다는 철길…. 시커멓게 아가리를 벌린 터널(사진 왼쪽). 이곳이 클라이맥스 시퀀스의 로케이션 장소다. 철길 위를 걸으며 김형구 감독님과 내가 뭔가 논의하고 있는 뒷모습(사진 오른쪽). 이 상황은 두 가지로 기억 가능하다. 1) 사진에 보이듯이 터널 위로 내리쬐는 직사광선 문제를 고민하고 있는 두 사람. 여태껏 직사광선을 용케도 피해가며 늘 흐린 광선으로만 야외촬영을 해오며 화면의 일관된 톤을 만들어왔는데, 막상 가장 중요한 클라이맥스 시퀀스를 앞에 두고 연일 맑은 날씨만 계속되고 있으니 이를 어쩔 것인가…. 그동안 지켜온 ‘순결’을 포기할 것인가? 또는 2) “요즘 식당차가 바뀐 뒤부터 입맛이 영 없어…. 짜고 매운 반찬들이 너무 많단 말야.” “저는 누룽지가 안 나와 불만인데요.” 사실 김형구 감독님과 나는 늘 구시렁구시렁 밥 걱정을 많이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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