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봉준호 감독이 쓴 <살인의 추억> 포토 코멘터리 [2]
2003-04-18

요땐 좋았지

탁 트인 논 한복판에서 천막 아래 식사를 하는 기분은 정말 최고였다(사진 왼쪽). 이때만 해도 화창한 9월 날씨에, 가을 소풍이라도 나온 듯 상쾌했지만…. 앞으로 닥쳐올 엄동설한의 대환난을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왜 비오는날 저질렀누

그리고 비. 이 영화에는 비오는 장면이 유난히 많다. 실제 사건에서도 범인이 비오는 날 살인을 저질렀기 때문이다. 강우기에서 쏟아지는 빗줄기를 일제히 바라보는 스탭들의 눈빛(사진 오른쪽). 빗줄기 하나하나를 화면 속에 제대로 살리기 위해서 촬영, 조명 스탭들은 줄기찬 땀줄기를 쏟아내야 한다. 굵은 호스를 들고 뛰어다녀야 하는 특효팀은 말할 것도 없고….

꺄악, 강호 오빠~

그렇게 만들어진 빗줄기 속에서 배우들은 펄펄 난다. 비를 피해 몰려든 한복 여고생들 틈에서 낄낄낄 웃어대는 송강호 선배(사진 왼쪽). 모처럼 여고생들에게 둘러싸여 오빠부대의 판타지(?)에 젖는 듯…. 무식형사 조용구 역을 맡은 김뢰하 선배도 시위진압 현장에서 펄펄 날고 있다(사진 오른쪽). 끌려가는 여대생 역할을 맡게 된 저 낭자는 알고보면 수백명 보조출연자들 중에서 그 당시 운동권 여학생 분위기가 난다는 이유만으로 갑작스레 선발된 여인으로… 조용구 형사에게 밟히고 끌리고 나뒹구는 온갖 고생을…. 아… 감독들은 분명 지옥갈거다.

행운男

반면 행운의 보조출연자도 있다. 송강호 선배와 나란히 앉아 재미있는 표정을 보여주는 저분은 이근세씨(사진). 대규모 엑스트라가 동원된 채석장신 촬영 때 개성있는 마스크가 눈에 띄어 선발된 뒤, 양수리세트장 강력반신에도 진출, 송강호와의 연기대결, 단독 클로즈업 촬영까지 훌륭히 해냈다. 알고보니 굵직굵직한 한국영화들에서 여러 차례 활약했던 보조, 단역계의 베테랑.

이백푸로 멋지고나

문득 나타난 이 사진은 <초록물고기>의 생양아치 판수인가?(사진). 아니, 룸살롱 장면에서의 형사 박두만이다. 촬영 전 엠티 때 두만의 캐릭터에 대해 송강호 선배와 단둘이 얘기를 나눈 적이 있다. “적당히 상스럽고 천박한 듯, 그런데 귀여운 면도 있고… 때로는 형사인지 깡패인지 구분이 안 가면서….” 감독이 이런저런 수식어들을 달아 주절주절 설명하는 존재라면, 배우는 표정이나 동작 하나로 그 모든 걸 단칼에, 한순간에 뛰어넘어버리는 존재다. 이 사진 속 송강호의 모습은 내가 머릿속에 그렸던 형사 박두만을 “이백푸로” 보여준다.

야메주사女

그리고 이런 유의 시골 형사들은 늘 동네 중요 거점을 확보한다. 때로는 그 거점이 연인관계와 병행되기도 한다(사진). 사람들을 많이 상대하고 동네 소문에 민감한 미장원 아가씨, 야쿠르트 아줌마 등과 배를 맞대고(?) 지낸다면 나와바리 정보파악은 시간문제다. 형사 박두만의 연인으로 등장하는 곽설영(전미선)은 요즘도 시골에서 간혹 볼 수 있는 ‘야매주사’ 여인이다. 정식 간호사 자격증 없이 동네 사람들 링거주사 놔주고 다니는…. 그런 연인의 허벅지를 베고 누워 용의자에 대한 정보를 주워 듣는 박두만의 모습. 여관방에 누워서도 정보수집에 한창이니 이야말로 일과 휴식의 경계를 뛰어넘는 참된 시골 형사의 경지.

위조명품

그러나 이런 식의 수사는 언제나 한계에 봉착하는 법. 범인을 잡았답시고 한껏 폼을 잡은 기념사진 아래 “기쁨도 잠시”라는 잔혹한 소제목이 붙어 있다(사진 왼쪽). 그 당시 실제 신문과 연출된 사진을 합성한 신문 소품. 미술팀과 소품팀의 정성이 엿보이는 작품이다.

자, 치~즈!

말 나온 김에 우리 미술-세트-소품팀의 기념사진을 보자(사진 오른쪽). 예술과 노가다를 온몸으로 동시구현하는 이들이 모처럼 모여앉아 기념사진을 찍었다. 뭘 기념하기에? 그들이 우루루 앉아 있는 시골집 자체가 그들이 만든 작품이기 때문이다. 자신들의 작품 위에 뿌듯하게 걸터앉은 저 기분을 다른 스탭들은 상상하기 어려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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