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구나 오우삼은 로마에 가선 로마의 법에 따르라는 가르침에 지극히 충실했다. 그는 할리우드가 해외 출신 감독이나 배우에게 요구해온 할리우드 입성 시험을 묵묵히 받아들였다. 94년 할리우드 데뷔작으로 그에게 주어진 저예산 액션물인 <하드 타겟>을 받아들였고, 주연은 장 클로드 반담으로 만족해야 했다. 우리의 영웅 주윤발도 영화적 사부의 길을 따라 범상한 액션물 <리플레이스먼트 킬러>를 할리우드 데뷔작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던가. 오우삼은 이후 그레이드를 한 단계씩 높이는 모범생의 길을 따라 <브로큰 애로우>와 <페이스 오프>를 거쳤고, 마침내 <미션 임파서블2>과 <윈드 토커>에 이르렀다. <하드 타겟>을 만들 때는 “할리우드는 감독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다”고 불평하다가 <미션 임파서블2> 때는 “할리우드는 영화를 만들 수 있는 최상의 조건을 제공한다”는 헌사까지 아끼지 않았다. 무엇보다 작품 자체에서 그는 자신의 스타일을 일부분만 채용하면서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의 요구에 충실히 응했다. 미국인들이 보기에 오우삼은 참으로 예의바른 사람이었다.
리안은 달랐다. 그에겐 오우삼에겐 있던 미국 내 추종 세력이 없었을 뿐 아니라 할리우드의 관문을 너무 쉽게 통과해버린 것처럼 보였다. 게다가 그는 오락영화가 아니라 미국인들의 뿌리뽑힌 삶을 정면으로 다룬 작품으로 승부한 것이다. 그 과정을 간단히 요약하면 이렇다. <결혼 피로연>으로 베를린영화제에서 그랑프리를 받은 이 작은 동양 감독은 할리우드 돈으로 영국 시대극 <센스, 센서빌리티>를 만들었다. 그러다 갑자기 자신의 영화적 무대를 70년대 미국으로 옮겨와 <아이스 스톰>으로 미국 중산층의 뼛속까지 까발리더니, 미국인들조차 버거워하는 미국 역사의 전기인 남북전쟁을 스크린에 담는(<라이드 위드 데블>) 모험을 감행했다. 제3국인의 눈으로 보면 ‘대단한 도전’으로 불릴 만한 이 시도는 할리우드 테스트를 무색하게 만드는 도발로 보일 만했다. 생긴 건 순박해 보이지만 리안이 대단한 미학적 야심가라는 걸 눈치채는 건 별로 어렵지 않았다. 그가 고색창연하고 우아한 <와호장룡>으로 세계 평단의 지지와 함께, 누구도 예상 못한 1억달러를 넘는 미국 내 흥행수익을 벌어들였을 때까지 이 전례없는 감독을 시비걸 순 없었다.
그러나 <헐크>는 달랐다. 그건 미국인들의 자존심이 발동할 만한 소재이기 때문이다. 저예산 혹은 중급예산으로 지난 시절의 미국을 다루는 것과 1억5천만달러를 들고 미국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오늘의 영웅에 손을 대는 건 차원이 다른 문제다. 게다가 리안은 그 ‘다름’을 감추지 않았다. 그는 <헐크> 작업을 공공연하게 “미국식 패스트푸드로 별미를 만드는 과정”에 비견하기도 했다. 리안과 <헐크>에 대한 미국 평단과 대중의 불평과 불만이 감추고 있는 질문은 사실상 이것이다. ‘당신이 미국을 알아? 마블코믹스를 알아?’.
여기엔 아시아영화에 배타적인 미국 평단의 기류도 한몫한 것으로 봐야 한다. 짐 호버먼 같은 진보파를 제외하면 다수의 미국 저널리즘 평론가들이 아시아영화에 무관심하거나 그를 경시해온 건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3년 전 칸영화제 경쟁부문에 아시아영화가 5편 진출한 반면 미국영화는 단 2편 진출했을 때, <버라이어티>는 “아마 100년 뒤의 역사학자들이 오늘의 칸영화제 사료를 접하게 된다면, 영화는 아시아에서 많이 만들고, 상영시간은 세 시간쯤 되는 것으로 착각할 것”이라고 비아냥거렸다. 게다가 감독상을 받은 에드워드의 양의 <하나 그리고 둘>에 대해선 “이야기는 요령부득이며 참을 수 없이 지루하다”고 각 매체들이 입 모아 독설을 퍼부었다. 그들은 아시아영화의 유장한 리듬을 참기 힘들어한다. 허우샤오시엔의 영화가 북미에서 한편도 개봉하지 못한 게 이상하지 않은 일인 것이다. “참을 수 없는 지루함.” 이것이 그들이 아시아 영화를 욕할 때 가장 빈번하게 동원하는 한심한 표현이며, 리안의 <헐크>를 말할 때도 어김없이 등장했다.
그러나 일반 관객은 동의하지 않았다. 그들은 동양 배우들이 중국어를 지껄이며 하늘을 붕붕 나는 이상한 무협영화 <와호장룡>에 누구도 예상 못한 열렬한 지지를 보냈으며, 다수의 저널리즘 평론가들이 욕하기에 바빴던 리안의 신작 <헐크>에 다시 열광적 박수를 쳐주고 있는 것이다.
“제가 바로 헐크입니다”
숱한 악소문을 뚫고 드디어 <헐크>의 시사회가 열리던 날, 무대에 오른 리안은 감정의 높낮이가 드러나지 않는 속살대는 특유의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영화가 맘에 들지 않으면, 절 탓하세요. 왜냐하면… 제가 바로 ‘헐크’이기 때문입니다”. 컴퓨터그래픽으로 만들어진 헐크의 이미지, 그 동선을 만들어낸 것이 리안 감독 본인임은 익히 알려진 사실. 새삼 그걸 자랑하려고 꺼낸 말은 아닐 것이다. 유머는 더더욱 아니었을 터. 그렇다면 그는 왜 스스로를 ‘헐크’라고 소개한 것일까.
리안은 헐크의 CGI 캐릭터 대신 모션캡처용 특수의상을 입고, ILM 직원들 앞에서 수개월간 헐크 연기를 해보였다. 촬영장에서 언제나 “부처 같고 요다 같았다”던 점잖은 감독 리안이 난폭하게 물건을 부수고, 육중하고 괴상한 걸음걸이를 걷고, 연인 앞에서 조용히 무릎 꿇는, 그 연기를 했다는 것이다. 이 과정은 리안에게 일종의 엑소시즘이자 살풀이였다. “확실히 치료 효과가 있더군요. 하길 잘했어요.” 리안은 할리우드 시스템에선 자신이 괴물 같은 존재이고, 자신의 재능이 축복이 아닌 저주가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할리우드는, 적어도 지금까지는, 리안의 위험한 재능을 기꺼이 수용하고 있다. 확실히 할리우드는 <인디펜던스 데이> 같은 멍청한 영화에 열올릴 때보다는 훨씬 영리해져 있다.
<헐크>에 대한 잡다한 소문 그리고 진상
누드로 나올 ‘뻔’ 했다지요?
캐스팅: <헐크>의 개발 작업은 97년경부터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당시 브루스 배너 역으로 물망에 올랐던 배우는 조니 뎁. 이어 조지 클루니, 벤 애플렉, 브랜든 프레이저, 스티븐 부세미(?) 등이 캐스팅됐다는 소문이 있었으나 소문에 그쳤다. 한 인터넷 설문 조사에선 배너 역에 어울리는 배우에 에드워드 노튼, 가이 피어스, 스티브 부세미, 조니 뎁, 존 쿠색 순으로 나타났다.
스탭: <쥬만지>의 조 존스턴이 손을 뗀 뒤 <헐크>를 진행한 이는 <아마겟돈>의 작가인 조너선 헨슬레이. 그가 해고된 뒤에 리안이 투입됐다. 리안은 당시 <터미네이터3>와 <헐크>를 두고 저울질 중이었는데, 먼저 <헐크>에 관여하고 있던 제임스 샤무스의 설득으로 <헐크>에 합류했다. <엑스맨> <딥 임팩트>의 작가들도 한때 각본을 진행했었다.
스토리: 원작에 얼마나 충실할 것인가에 대한 이런저런 추측은 이런 소문들을 낳았다. 브루스 배너가 아기 시절에 헐크로 변하게 된다. 즉 아기 헐크가 등장할 것이라는 소문. 또 하나는 배너의 애인 베티 역시 헐크로 변하게 될 것이라는 소문. 또 브루스 배너가 헐크로 변신하게 되는 이유가 감마선을 쬐어서가 아니라, 헐크 개에 물려서라는 소문. 모두 거짓으로 판명됐다. 적어도 1부에선(배우들은 속편 출연 계약을 한 상태다. 리안은 아직 아니다).
헐크의 옷: 이상하게도 사람들은 헐크의 의상에 집착한다. TV시리즈에선 헐크가 변신하는 동안 웃옷은 갈갈이 해체되는데 청바지는 비교적 멀쩡히 형체를 유지하곤 했던 것이 빈축을 사기도 했다. 영화판에 대해서도 헐크가 변신 전의 옷, 특히 그 보라색 트렁크를 입느냐 마느냐에 대한 궁금증이 일었다. 한때 리얼리티에 입각, 입히지 않는다는 걸 원칙으로 진행했다지만, ‘누드 헐크’는 미관상 문제는 물론, 등급문제도 걸려 포기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