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여고괴담 동창회에서 생긴 일 [2]
2003-08-08
글 : 정한석 (부산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

민 | 둘이서 일주일 동안 설전을 벌였다. 결론은 우리가 상업영화를 만든다는 것에 대해서 아무런 고민도 없었다는 거였다. 그리고 일주일 뒤에 찾아갔더니, 원하는 대로 만들어라, 제목만 가면 된다, 그러더라. “그럼 여고에서 만들어지는 괴담이면 되죠. 그럼 하죠” 하고 시작한 거다. 얼마나 힘든 건지도 모르고. 석달 동안 시나리오 쓰고 처음 들어간 거다. 어쨌든 <여고괴담>은 굉장히 예외적인 시리즈인 것 같다.

김 | 일단 그 테두리 안에 딱 들어오면 엄청난 자유를 주는 기획이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상대적 자율성이 있고, 공포라는 테두리 안에서 마음대로 해볼 수 있으니까.

민 | 지금은 3편이 만들어져서 시리즈가 됐지만, 우리한테의 제안은 속편이었다. 그래서 완전히 새로운 얘기로 가자고 합의를 봤다. 전편하고 달라져야 하는 게 너무 큰 사명이었다. 지금은 갈수록 훨씬 자유로워지는 것 같다. 하려는 이야기에 뭔가 집중할 수 있다. 1편은 입시제도의 문제점, 억압적인 학교를 속시원하게 고발해주는 영화, 죽이고 싶은 인물들을 죽여가며 대리만족시켜주는 전형적인 공포영화였다. 하지만 우리는 그런 전형적인 공포가 아니어야겠다고 생각했다. 학교가 이렇게 나쁘다 정도로는 그 이야기를 꺼낼 수 없겠다고 생각했다. 학교에 대한 그런 점은 1편에서 너무 잘 보여줬으니까. 정답은 없지만, 숨기고 있는 태도를 건드리는 이야기를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학교가 소우주일 수 있는. 성장의 고통을 보여줄 수 있는, 어른 세계를 얻는 것과 아이 세계를 잃는 것. 이 두 가지를 다 다루자.

윤 | 나는 1편이 잘 만들어진 학원공포물이라고 봤다. 2편은 공포영화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오히려 너무 예뻐서 감동받은 그런 영화였다.

민 | 사실, 우리도 공포를 하려고 노력 많이 했다. 그런데 사장님이 우릴 보더니 니네들이 더 무섭다, 그러시더라. 이런 생각을 했다. 귀신은 좀 다르지 않을까? 아마 사이즈가 다를지도 모른다. 죽은 사람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다르게 엄청나게 클지 모른다. 그러니까 신의 모습처럼, 고질라의 눈처럼, 멀리서 혼돈에 빠진 인간들을 보는…. 그래서 고질라의 눈을 만들어주세요 했다. 눈물 한 방울 딱 흘리면, 천장이 깨지면서 사람들이 홍수에 빠지는 그런 걸 상상했다.

김 | 관념적으로는 이어지는데, 시각적으로는 좀 갑작스러운 면이 있었다.

김 | 장르적 약속에 대해서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특정한 시절에 갖고 있는 감수성이 여고에 잘 맞으니까 해보자. 오히려 공포영화를 피하자. 좀 다른 공포를 해보자. 공포를 그 바깥에서 고민해본 거다. 그런데 지금은 그 안에서 고민해봤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한다.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어느 공간을 막론하고 열일곱 나이의 사람들이 뭉쳐 있을 때 느끼는 감정들을 보여주고자 한 것이 1편과는 좀 다른 점이다. 장르적인 전용이 아니라 성장의 시기에 관한 패러다임을 전환해보자는 것이었다. 1편의 학교가 무서운 공간이 될 수밖에 없는 건 아이들의 굴레와 그것을 벗어나려는 의지가 중심이었기 때문이었는데, 우리는 성장을 얘기하기로 했다. 오히려 그 성장을 말하기 위해서 가장 적합한 것이 공포구나 생각한 것이다.

민 | 첫 모티브는 이런 거였다. 청량리역 근처 아파트에서 여중생들이 동반자살을 시도했다. 동반자살은 남녀 사이의 아주 고전적인 스토리인데. 이성애로 묶이지 않은 친구들이, 단지 친구라는 이유로 같이 손을 잡고 뛰어내려야겠다고 결정한 그 순간의 마음들이 거대한 미스터리라고 생각했다. 논리적으로는 성적이 안 좋아서라지만, 그 아이들이 표현할 수 있는 언어가 그뿐이라 그렇지 실상은 그런 단순한 얘기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아이들을 죽음으로 몰고간 드러나지 않은 다른 무엇이 있을 거다. 마지막 순간의 감정을 찾아보자고 한 것이다.

윤 | 나는 1, 2가 있기 때문에 고민을 많이 했다. 일단 편하게 간다는 것. 보는 사람이 영화를 읽지 않게 하는 것, 보는 사람이 좀 편하게 갈 수 있도록 중점을 뒀다. 어떻게 보면 단순하게 설정을 하고 간 거다. 여러 각도가 아니라 나의 의도를 한눈에 선명하게 보여줄 수 있는 방식에 대해서 고민했다. 하지만, 주제를 어떻게 보여줄 것인가, 그 장치를 어떻게 할 것인가가 좀 덜 선명했던 것 같다.

김 | 선택의 용기라고 볼 수 있다. 나를 포함하여 영화학교 출신들이 갖는 생각들이 있는데. 예를 들어 들어가야 할 때 더 빠지고, 빠져야 할 때 들어가고 하는 식의 모호함에 대한 강박. 철학이나 정서를 표현하는 데 불분명한 것이 오히려 효과적이라고 생각하는 그런 태도. 그런데 <여고괴담3>는 그런 미학적 강박관념을 과감히 버린 것 같다. 그러니까 <여고괴담> 시리즈는 감독을 자유롭게 해주는 방식으로의 장점이 있기 때문에 실험적인 장이 될 수 있다. 창의적인 영화 시리즈가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컨셉 하나에 묶이는 것이 오히려 감독들에게는 도움이 된다.

민 | 4, 6, 8, 10은 내가 만들 거다. 2로 시작했으니까 짝수만. 즐겁고 재밌게 할 수 있을 것 같다. 할 얘기가 더 있을 것도 같고.

Table 02. 딱 들러붙어 옭아매고 졸라매고 으흐흐~

'전·현 귀신'들의 알콩달콩 수다 - 공포의 촬영장

여학교의 온갖 괴담을 팔아먹고 산다는 모 여고 동문회의 뒤풀이장. 올해로 3기 졸업생을 배출한 이 학교가 지금껏 괴담 시리즈에 동참했던 이들을 두루 위로하고 시리즈의 장수를 격려하기 위해 스페셜 동문회를 마련했다. 모든 이들에게 초대장을 돌렸으나, 괴담과 함께 인기가 상승하면서 얼굴 보기 힘들게 바빠진 일부 동문들은 불가피 불참했다. 괴담 시리즈 상품의 얼굴마담격인 학생들 중에도 결석생이 생겼다. 1기 최강희 학생만이 참석해 3기생들의 졸업작품을 감상해주었고, 지난 99년 졸업한 2기 공효진·이영진 학생, 이제 막 3기로 졸업한 송지효·박한별·박지연 학생 등 다섯명이 한 테이블에 모였다. 그리고, 괴담을 만들어 팔기까지 겪었던 리얼 괴담들을 털어놓았다.

리얼괴담 #1 PD 괴담

2기생들이 학교를 다닐 당시 ‘오기민 PD’라고 불리는 귀신이 있었다. 생기발랄하면서도 조숙했던 여고생들을 현장에서 옭아매고 졸라맸다는 그 귀신은, 특히 공효진 학생에게 원한을 품고 들러붙었었다 한다.

효진 | 오 PD님 귀신이 나만 미워했잖아.

영진 | 니가 자꾸 땡깡부리니까 그랬지. 그래도 나중엔 예뻐했잖아.

효진 | 그때 머리도 겨우 길러서 어깨까지 자랐을 땐데 숏커트하래. 안 자르면 안 되냐고 그러니까 그 귀신이 “그럼 너 이 학교에서 나가!” 그랬어. 결국 울면서 잘랐다니까. 시나리오도 잘 안 본다고 만날 들러붙어서 혼내고. 우리가 다 친구다 보니까 ‘시나리오’(괴담 제작설명서) 읽을 때나 ‘촬영’(‘상품제작’의 다른 말)할 때 딴 애들 거 보면 괜히 질투가 나는 거야. 나는 비중도 적었잖아. 그래서 난 왜 이거밖에 없어? 그러면서 내 것만 보고 딴 애들 건 안 보고 그런 건데.하루는 누가 현장에 케이크를 가져왔는데, 그게 소품인 줄도 모르고 너무 좋아서, “와, 오늘 누구 생일이에요?” 하고 물어보니까 아무도 대답을 안 해주더라. 결국 오 PD님 귀신한테 물어봤다가 “야, 너는 대본을 보냐, 안 보냐?”라는 말과 함께 안 읽은 거 딱 걸렸지. 그때 너도 거기 있었지?

영진 | 내가 옆에서 계속 쿡쿡 찔렀는데도 절대 몰랐잖아, 너.

2기생들의 졸업 이후로 모 여고에서 오기민 PD 귀신을 다시 본 사람은 없었다. 그뒤 이 귀신은 ‘마술피리’라는 유령공장을 세워, 다양한 개성을 가진 피리들을 제작 중이라고 한다.

리얼괴담 #2 감독 괴담

‘감독’이라고 이름 붙은 제작현장의 대빵 귀신은 공공의 적이자 친구. 2기 학생들과 3기 학생들은 저마다 이 귀신에 얽힌 괴담을 갖고 있다. 2기들에게 붙었던 감독 귀신은 극히 드물게 두개의 머리를 달고 있었다. 한쪽 머리엔 김태용, 다른 한쪽 머리엔 민규동이라는 애칭이 붙은 이 두 머리 귀신은 번갈아가며 2기 학생들을 괴롭혔던 것으로 드러났다.

효진 | 솔직히 시나리오가 너무 어려웠어.

영진 | 난 1, 2, 3학년 신 다 소화해야 하고 환상장면까지 있었잖아. 그게 서로 왔다갔다 뒤죽박죽 돼 있으니까 뭐가 뭔지 하나도 모르겠더라. 시나리오만 100번도 더 읽었을걸. 종이 너덜너덜해질 때까지.

효진 | 솔직히 시나리오가 어려웠잖아. 이해가 안 가는 게 많으니까 귀신 불러다 물어보면, 김 감독님 귀신은 “너가 걔라면 어땠을 거 같아?” 하고 꼭 되물어봐. 이랬을 거 같아요, 그러면 “정말? 정말 그렇게 생각해?” 이러면서 사람 헷갈리게 해놓고 스르륵 가버리는 거야. (웃음)

영진 | 민 감독님 귀신은 “내가 어떻게 알아∼ 니가 시은이잖아∼” 이러고.

효진 | 그러니까 나중엔 그 귀신들한테 물어보지도 않았잖아. 더 헷갈리니까. (웃음)

감독과 시나리오 작가가 뽑은 시리즈 명장면짜릿하고 충격적이고 행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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