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편 이상 ‘롱런’하길!
7월29일 오후 서울 강남의 한 극장에서 ‘여고괴담 동창회’가 열렸다. 200석이 넘는 좌석은 1∼3편의 배우, 감독, 스탭들로 가득 찼고, 이들은 이제 막 동창회 막내로 합류한 <여고괴담 세 번째 이야기: 여우계단>을 즐겁게 관람했다. 동창회가 열릴 만큼 <여고괴담> 시리즈는 하나의 브랜드로 성장했다. 무엇보다 괴담 시리즈가 아니었으면 혹시나 빛을 보지 못했을 숱한 인재들을 쏟아냈다. 박기형, 민규동, 김태용 감독뿐 아니라 1편에서 ‘소품’으로 크레딧에 이름을 올렸던 류승완, 2편에서 스크립터로 연출을 도왔던 정재은 등이 성공한 감독 대열에 합류했고, 최강희 ·김규리·김민선·박예진·공효진 등의 새 얼굴이 스타로 발돋움했다. 1, 2편의 프로듀서로 시리즈 탄생에 결정적 공헌을 남긴 오기민 PD는 <장화, 홍련>이란 또 다른 괴담을 성공으로 이끌었다.
동창회는 뚝심있게 시리즈를 이어가고 있는, 그래서 10편까지는 만들어야겠다고 되뇌는 제작자 이춘연 씨네2000 대표의 입담으로 시작됐다. “김지운 감독도 와주시고, 오기도 있고 기민해서 주로 칭찬받는 영화만 하고 있는 오기민 PD도 오셨고, 아∼ 저기 공효진은 6번째쯤 만들 때 선생님 역할로 한번 나와주면 되겠군요. 참고로 말씀드리면 현재 예매율이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를 제치고 1위를 하고 있어요. 바깥 분위기가 아주 좋습니다. 전문가들 분위기는 아주 안 좋습니다. 그래도 나는 기분 좋습니다.”
잔치자리였지만 뒤숭숭한 구석도 있었다. <여고괴담3>에 별 한개 반을 준 평론가들의 ‘가혹한 처사’는 우울한 기류를 만들어냈다. 동창회에서 생긴 일은 그래서 별 한개 반에서 시작됐다. 3편의 윤재연 감독은 2편의 민규동, 박태용 감독에게 ‘하소연’을 털어놓으며 괴담 감독들의 대화가 두 시간 넘게 이어졌고, 배우들은 ‘감독귀신’, ‘PD귀신’ 등에게 시달렸던 기억을 떠올리며 유쾌한 수다를 시작했다. 3편에서 젊은 여성들로만 구성된 네명의 시나리오 작가들은 ‘왜 남고괴담은 없는 거야’라며 즐거운 상상을 가동했다. 작가들은 각종 공작기계들을 흉흉한 소품들로 등장시키기 딱 좋은 공업고등학교를 물고늘어지더니 결국은 농업고등학교로 이야기를 끝냈다. 또 뒤풀이 자리에선 세편의 베스트 장면들이 ‘비공식적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그 이야기들을 한데 모았다.
Table 01. 민규동 · 김태용 · 윤재연 감독의 쑥덕공론
# 3편에 대해 말걸기
윤재연(이하 윤) | 현재 손가락은 다 아래고 별은 다 하나 반이다.
민규동(이하 민) | 그렇다면, 이거 인터뷰를 거부해야 하는 거 아닌가?
윤 | 아닌 게 아니라 그러려고 했다.
김태용(이하 김) | 평들은 아마 기대와 달라서였기 때문일 거다. 진짜 좋은 건 흥행이 잘되는 거다. 돈을 많이 벌어서가 아니고, 사람들도 많이 보고, 또 다음 작품도 좀 편하게 찍을 수 있고. 흥행될 것 같나? 200만명 정도? 이춘연 사장님은 이번에 400만명 정도가 넘을 것 같다고 하던데?
민 | <장화, 홍련>의 13배 정도는 흥행할 거라고 하던데. 불안감의 표현인가? (웃음) 사실, 1편 때는 감독하고 PD만 빼고 다 망했다고 했었다.
김 | 시사회 끝나고 인사동에서 오기민 PD하고 박기형 감독 둘이서 술까지 마셨었다.
민 | 개봉날 서울극장 코너까지 줄이 서 있으면 대박이라고들 하는데, <여고괴담>은 그 코너를 지나서 몇백 미터인가까지 줄이 더 있었다고 그러더라. 안 좋은 평들은 신경쓸 거 없다. 기대하는 바에 안 맞았다는 건데, 거기에 꼭 맞춰야 할 필요는 없으니까. 그게 바로 3편의 운명이기도 하다.
김 | 구체적인 컨셉은 같은데, 시작할 때 봤던 시나리오 분위기와는 많이 달라진 것 같다. 공포와 괴담이라는 게 부담이었을 것 같다. 나는 그 부담감이 충분히 이해된다. 우리보다는 약속을 훨씬 잘 지키고, 범주화해보려는 것이 눈에 보여 참 좋았다. 우리는 그때 공포에 대해 영화적으로 잘 몰랐다. <여고괴담 세 번째 이야기: 여우계단>(이하 <여고괴담3>)은 한발 더 진일보한 느낌이 있다. 드라마나 캐릭터에 전적으로 의존하기보다 공포영화라는 장르적 약속을 잘 지킨 것 같다.
윤 | 나는 괴담에 충실한 것이다. 여름마다 <전설의 고향> 특집을 보기를 원하듯이 그런 거라고 생각했다. 대신 그 저변에 깔고 싶은 얘기들이 있었다. 혜주라는 애가 과장되어 있긴 하지만, 같은 말만 반복한다. 인정받고 싶어하는 캐릭터다. 진성도 인정받고 싶어한다. 소희의 경우는 진성에게 사랑받고 싶어한다. 서로가 인정받고, 사랑받고 싶어한다. 학교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소녀들의 이야기를 보여주고 싶었던 거다. 마지막 시나리오 작업하면서 ‘계단’ 어떠냐고 작가가 제안했고, 잘 맞는 것 같아서 선택했다. 그러고나서 알게 됐는데 실제 그런 얘기가 있었다.
김 | <여고괴담 두 번째 이야기>의 경우, ‘교환일기’라는 건 여학교를 다닌 모든 학생들이 알고 있는 일상적인 거다. 특별히 찾아 헤맨 소재이기보다는 자연스러운 소재. 영화를 이끌어가는 소재는 같지만, <여고괴담3>의 경우는 소원을 비는 공간 내지는 소품이 필요했기 때문에 그것이 찾아졌다고 본다. 세편 중 제일 비관적인 얘기인 것 같다. 어쨌든 1, 2편에서는 마지막에 화해를 유도하는데, <여고괴담3>는 과감하게 비관적인 엔딩을 선택한 것 같다. 예전에는 경쟁과 이기심을 자극하는 것으로 학교라는 공간이 있었지만, 오히려 <여고괴담3>에서는 적이 분명하지 않으니까 더 비관적으로 볼 수밖에 없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민 | 공부도 잘하고, 돈도 많고, 얼굴도 예쁘고, 그러면 어떻게 해야 돼? 죽여야지 뭐?
윤 | 사람들이 이해를 못하는 캐릭터들이 있다. 윤지하고 혜주. 네명이 나란히 나오는 이야기인데 윤지와 혜주 부분이 많이 덜어졌다. 원래 윤지도 독하고 왕따인 것만은 아니다. 어떤 슬픔이 있다. 그래서 윤지한테는 신체적으로 화상을 심어줬다. 둘의 에피소드 중에 어떤 작품을 모방했다고 혜주가 윤지를 비난하는 모습도 있었다. 그러면서 윤지는 더 독해지고, 더 혜주를 못살게 군다. 그런 모습들이 편집상에서 많이 없어졌다. 나란한 캐릭터들을 두고 시작했는데, 시간에 맞추다 보니 그런 부분들이 좀 덜어지게 되더라.
김 | 우리의 경우는 좀 달랐는데, 찍어놓은 모든 분량을 붙여놓으니 한 3시간20분 정도 된 것 같다. 그 안에서 드라마를 만들어가면서 찍었다. <여고괴담3>가 전체적인 드라마를 표현하기 위해서 2시간 반이 다 필요했던 거라면, 우리의 경우는 오히려 3시간20분짜리를 완벽한 드라마로 만들기 위해서 한 4시간 정도 분량으로 찍었어야 했다는 생각이 든다. 중간에 자르다 보니 선택을 하게 된 경우였다. 아마 3시간20분을 다 봤다면 더 헷갈렸을 수도 있다.
# <여고괴담> 시리즈에 말걸기
윤 | <여고괴담> 시리즈 자체가 굉장히 매력적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은유나 상징 같은 걸 좋아한다. 제안이 들어왔을 때 굉장히 좋았다. 뭔가 할 얘기들을 많이 담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단지 공포영화라는 것 때문에 조금 당황하긴 했지만. 사장님은 한 10편까지 만든다고 하는데, 물론 앞의 작품 피해가느라 고생도 하고, 욕도 먹겠지만, 영화를 공부하는 많은 친구들이 하고 싶어할 정도로 매력적인 시리즈인 것 같다.
김 | 옴짝달싹 못하고 한 테두리에서 이야기를 해야 할 것 같은 불안감도 있지만 나름대로 시리즈로 계속 갈 수 있는 장점들이 있다. 우리는 장르적 장점 때문에 선택했다기보다는 그 나이 때에 대한 관심 때문이었다. 공포영화라는 건 사실 좀 부담이었다.
민 | 나는 맨 처음에 속편 만든다고 하기에 도대체 왜들 이러나, 이러지 좀 말지, 속편을 왜 하려고 그래? 이거 하는 감독은 정말 불우하겠다. 꼭 이렇게까지 해서 데뷔해야 하나… 했다. 그런데, 전화가 왔다. “<여고괴담>의 오기민입니다.” ‘<여고괴담> 한 걸 좀 자랑스러워하나보지 <여고괴담>의 오기민이라고 소개를 하네? 설마, 우리한테 <여고괴담2> 하라고 제안하는 건 아니겠지?’ 그러고 나갔다. 그때는 다음에 보자고 그러고 집에 왔다. 그때 SF시나리오 쓰고 있었는데, 일언지하에 거절을 하고 집에 돌아와 보니, 우리가 상업영화를 뭐라고 생각하고 있었나에 의문이 들었다. 그때 우리는 아마 <희생>으로 데뷔할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 같다.
김 | 아니면, 최소한 <아름다운 시절2>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