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배우 최민식 [4] - 정지우 감독이 귀띔하는 최민식
2001-05-18
움직이지 않을 때 더 빛난다

며칠 전, 누군가 전해준 민식 형의 인터뷰 기사 내용에 의하면 우린 아직도 불화중인 게 분명하다. <해피엔드>를 만들며 끝내 합의하지 못한 몇 가지 부분이 그에게는 깊은 상처로 남은 모양이다. 누군가와 마주보고 앉아 얘기중이었다면 이 정도에서 소주 한잔 탁, 털어넣고 묵묵히 앉아 있으면 좋을 것인데….

문득 <파이란>의 TV 광고에 민식 형의 마지막 멘트 “파이란” 하는 소리가 선명하게 기억난다. 표정과 몸짓보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그의 목소리. <해피엔드> 시나리오를 쓰며 모니터 앞에서 수백번 중얼거렸던 서민기의 대사들이 그의 목소리를 타고 꿈틀거리기 시작했을 때 느꼈던 전율이 떠올랐다.

민식 형은 움직이지 않는 장면에서 특히 훌륭하다. <해피엔드>를 촬영하면서 나는 그에게 카메라를 가까이한 채 계속 길게 찍을 수 있었다. 멈춰 있는 장면을 길게 찍을 수 있다는 것은 프레임 안에 걸 만한 내용이 이어진다는 의미이며, 배우가 역 속에 ‘잠긴’ 정도가 깊을 뿐 아니라 제대로 된 감정이 드러난다는 의미다. <해피엔드>가 초청된 지난해 칸영화제와 얼마 전 다녀온 이탈리아 우디네 영화제에서 만난 유럽 기자들도 같은 점을 거론했다. <쉬리>와 <해피엔드>에서 최민식 형의 연기를 주목한 그들은 긴 대사, 큰 동작으로 감정의 변화를 직접 드러내는 것은 어려운 문제가 아니지만 최민식처럼 가만히 있으면서 미묘하게 움직이고 변화함을 보여주는 연기자는 매우 훌륭한 배우라고 평했다.

그가 우리를 똑바로 쳐다보며 마음을 다해 말하면 모든 것이 믿어진다. 무대와 스크린에서 연기하는 것뿐만 아니라 스크린쿼터 지키기 집회나, 동강을 살리자는 캠페인, 심지어 오렌지 주스 광고까지 이거라면 이것인 것이다. 물론 그러기 위해선 먼저 민식 형이 믿어야만 한다. 하나, 그를 믿게 만드는 일은 생각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그는 사춘기 소년처럼 예민하고, 죽을고비 세번쯤 넘긴 노인처럼 생각이 많고 또 깊기 때문이다. 스스로 믿는 것에 대해 모두가 믿게 만드는 마술 같은 힘! 그는 정말 좋은 배우다.

정지우 | <해피엔드>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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