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타]
아쌀하게 돌아온 선수, <황산벌>의 계백 박중훈
2003-10-08
글 : 김혜리
사진 : 오계옥

예감은 틀렸다. <황산벌>에서 박중훈은 웃지 않는다. 우리를 웃기려고 수고하지도 않는다. 예의 눈웃음이 찰랑이던 눈가에는 피눈물이 그렁이고, 부드럽게 건들거리던 몸은 천근 바위가 되어 미동도 용납하지 않는다. 계백의 눈 속에는 <게임의 법칙>의 공중전화 부스에서 피흘리며 죽어가던 젊은 날의 박중훈이 꿈틀거린다. 세상은 조리가 닿지 않는 지옥이고 가능한 건 소멸을 향해 내가 아는 길로 걸어가는 것뿐이라는 사실. <황산벌>의 계백은 <게임의 법칙>의 건달이 생의 마지막 찰나에 깨달았던 진실을 평생을 두고 터득해온 사나이다. 머잖아 무덤으로 변할 고독한 요새에 서서 제 칼로 벤 처자식의 비명을 듣고 또 듣는 그는 우연히 코미디 안에 발을 들여놓은 한치의 과장없는 계백 장군일 뿐이다. “아쌀하게 거시기해불자”던 말은 결국, 이런 뜻이었다.

<황산벌>은 박중훈이라는 탁월한 코미디 배우를 기용해 성립된 코미디지만, 박중훈을 코미디 연기에서 해방시킴으로써 한뼘 발돋움한 묘한 영화다. 박중훈은 <황산벌>에서 그동안 멀어진 관객에게 구애하는 가장 현명한 방법을 찾았다고 말한다. “남자 배우 하나나 둘을 톱으로 세운 흥행 코미디 몇편의 제의를 받았다. 그러나 그건 아무리 잘해도 과거의 나를 반복하는 것에 불과했다. 관객의 사랑을 되찾으면서도 답습이나 소모를 피하는 카드가 필요했고 <황산벌>은 적당한 답이었다.”

야심작 <찰리의 진실>은 대중영화라기보다 영화광을 자극하는 영화였고, 노골적 변신을 기도한 <불후의 명작>과 <세이 예스>는 환대받지 못했다. 그렇다면 대중은 박중훈의 코미디만 원하는 고집불통인가? 확실히 사람들은 그가 인생의 진실을 간접적으로 전하길 원한다. 박중훈의 얼굴이 익살과 허세로 수치심과 이기심을 가리려고 하면 기꺼이 감동하지만, 박중훈이 가면을 벗고 맨 얼굴로 고통과 악의를 드러내면 불편해한다. <황산벌>은 박중훈에게 가면 대신 방패를 주었다. 설령 그것이 스릴러라고 해도 한편의 영화에서 기대할 수 있는 재미가 박중훈이라는 스타 하나뿐일 때 관객은 코미디에 집착한다. 그러나 <황산벌>은 병력이 막강하다. 사투리도 있고 시나리오의 힘도 있고 맞수 김유신도 있고 폭소탄 조연도 즐비한 <황산벌>은 박중훈에게는 웃기지 않아도 좋을 자유를, 관객에게는 배우 박중훈의 다른 저력을 볼 수 있는 여유를 주었다.

요즘 그는 세상일은 좋은 것만으로도 나쁜 것만으로도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영화도 한편씩 떼어 성패를 가리기보다 경력의 끝에서 언젠가 완성할 화음에 필요한 하나의 음으로 여기게 되었다. “<황산벌>을 <할렐루야> 다음에 했다면 관객이 받아들였을까? <황산벌>의 연기가 수용된다면 <세이 예스> <불후의 명작>이 나에 대한 인식을 바꾼 덕도 있다.” 얼마 전 TV쇼에 출연한 박중훈은 예전에는 그의 등장만으로도 키득거리던 방청객이 그를 진지하게 주시하는 데에 긴장했다고 한다. 차태현과 짝을 지어 11월 초 크랭크인하는 <투 가이즈>는 “지금은 젊은 관객에게 만만해 보여야 할 때”라는 판단과 내년 봄 조너선 뎀이 제작하는 <비빔밥>에 합류할 가능성을 고려한 포석이다. “이게 훨씬 편하네요.” 의자 깊숙이 기댄 포즈를 풀고, 앞으로 몸을 숙이며 박중훈이 문득 말했다. 언제든 앞으로 뛰어나갈 수 있는 자세. 그것이 항상 그에겐 가장 편안한 포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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