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스캔들> 제작기 [1] - 배용준의 포토코멘터리 ①
2003-10-10
글 : 권은주
배용준, 이유진 프로듀서가 쓴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 140일의 촬영기

배용준의 취미가 스포츠에 국한돼 있던 게 아니었다. 누구한테 배우지도 않고 혼자서 사진책에 밑줄 그어가며 자습을 하던 그가 드디어 ‘작품’ 수준의 영상을 뽑아내기 시작했다. 그는 <스캔들-남녀조선상열지사>의 제작현장에 사진책과 더불어 라이카M6, 니콘F5 등을 들고 다니며 연신 셔터를 눌러댔다. 주로 스탭들을 주인공 삼아 찍었지만 아름다운 풍경도 잊지 않았다. 그 순간들이 자연스레 <스캔들…>의 제작일지가 되었다. 고맙게도 배용준은 <씨네21>을 위해 사진 인화를 직접하고, 베스트라고 생각되는 컷들을 직접 골라(본인이 직접 고르지 않은 사진은 제작사에도 절대로 보여주지 않았다) 코멘터리를 달아주었다. 여기에 모처럼 새로운 사극을 만들어내기까지 어떤 험난한 여정을 거쳐왔는지 이유진 프로듀서가 따로 제작일지를 만들어주었다. 흑백사진은 모두 배용준의 작품이며, 컬러사진은 스틸기사의 손에서 나온 것이다.

배용준의 <스캔들> 포토코멘터리

“앞으로 넉달… 아직 계약서에 도장찍기 전이렷다”

희대의 바람둥이 조원 역을 하게 되기까지, 영화사도 나도 몇겹의 장애물을 통과해야 했다. 내 쪽에서는 매니저를 포함, 모든 사람들이 영화데뷔작으로 ‘사극’을 한다는 것에 결사 반대를 외쳤고, 감독님도 나를 염두에 두신 적이 없었던 거다. 이해는 간다. 드라마 속의 이미지만 생각하면 분명 모험이었으니까. 하지만 주변에서 반대를 하면 할수록 내 안의 또 다른 내가 ‘이건 내 역할’이란 신호를 자꾸 보내 온다. 하지만 나 스스로도 상투를 튼 내 얼굴이 상상이 안 되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영화사와 나 모두. 일단 분장테스트를 해보기로 한다. 안경을 벗고, 수염을 붙이고, 한복을 입고 상투를 틀었다. 생전처음 뒷머리를 모두 틀어올려 상투 속에 감추고 망건을 조이니 일단 숨막힐 정도로 머리가 아파왔다. 당장 벗어던지고 싶은 생각밖에는 안 들었다. 이재용 감독님의 세심함은 상투를 틀 때도 커트머리에 망건만 두르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매번 이렇게 힘껏 조여야 한다는 건데… . 모두들 ‘의외로 너무 잘 어울린다’는 고무적인 반응에 아픔을 잊은 것도 잠시…. 촬영 기간이 넉달…. 머리가 어지러워지기까지 한다…. 음… 아직 계약서에 도장찍기 전이렸다….

“꾸욱 눌러보시게! 나도 할 만큼 했으니…”

모든 배우들이 작품을 시작하기 전에 많은 준비들을 하지만 이번에는 ‘걸음걸이’부터 다시 배워야 했다. 촬영 전, 삼청각에서 양반의 자세부터, 한복매무시, 다도를 배웠다. 익숙하지 않은 한복을 입고 이 동작 저 동작을 해보니 심지어 걷는 것조차도 어렵게 느껴진다. 게다가 승마에 칼쓰는 법. 그리고 조원이 뭇 여인과의 정사를 춘화로 남기는 통에 붓을 잡고 한국화를 그리는 연습까지 해야 했다. 옛 선인들은 시·서·화에 두루 능할 뿐 아니라 자신의 가옥을 직접 설계까지 할 정도로 팔방미인이었다고 하니 문득 20세기에 태어난 게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다. 게다가 또 하나의 중요한 과제는 체중감량. 조선시대의 선비에게 근육질 체격은 어울리지 않는 탓이다. 크랭크인까지 2달여 남은 시간. 운동량을 대폭 늘리고 절식에 돌입했다. 슬슬 보는 사람들마다 살이 빠진 것 같다는 인사를 건넨다. 하지만 매일 만나다시피 하는 스탭들은 별 반응이 없다. 안동에서의 촬영날. 프로듀서 유진이 누나와 스틸 태환이에게 자신있게 한번 눌러보라고 한다. 하지만 돌아오는 그들의 무반응. “머, 원래 어땠는지 알아야 빠졌는지 말았는지 알지?” 그리고는 간식테이블로 총총히 걸어들가더라….

“무사히 마치도록 해주소서”

2003년 2월6일. 드디어 첫 촬영날. 얇은 한복 사이로 차가운 겨울 바람이 헤집고 들어온다. 영화의 순항을 비는 고사 마당. 미소를 머금고 지폐 다발을 입에 물고 있는 돼지머리 앞에 미숙 누나, 도연씨와 함께 큰 절을 올렸다. 미숙이 누나가 손으로 머리를 받치고 있는 저 자세는, 촬영 기간 내내 누나의 머리를 내 상투보다 더 괴롭히게 될 4kg짜리 가체의 무게를 지탱하기 위한 것이다. 저렇게 깊숙이 머리를 조아리며 나는 무슨 생각을 했던가? 감독님, 스탭들, 미숙 누나, 도연씨… 모두들 능력있고 믿음직한 사람들… 그들과 무사히 이 긴여정을 마칠 수 있기를… 눈부시게 하얀 도포자락의 조원이 조용히 이야기한다. 그리고 첫 영화, 최선을 다해 나를 믿고 있는 고마운 사람들을 실망시키지 않도록… 좋은 추억의 한 자락으로 남겨지기를… 신인배우가 된 배용준이 속삭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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