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타]
<영어완전정복>의 두 배우 [3] - 장혁
2003-10-29
글 : 심지현 (객원기자)
사진 : 손홍주 (사진팀 선임기자)
부족해도 후회는 없다

“소년의 아버지는 소년이 세살이 되었을 때 죽어요. 그뒤론 쭉 아버지 없이. 아버지 없이 산다는 게 어떤 건지 잘 알죠? 이를테면 초등학교에 입학해 부모님의 직업을 쓰는 숙제를 받았거나, 아버지를 모시고 학교에 오라는 가정통신문을 받았을 때, 아이들과 아버지에 대해 얘기할 때 완전히 할말이 없어진다는 거죠.” <영어완전정복>의 ‘문수’에 대해 설명해달라고 하자 장혁은 극에는 전혀 나타나지 않는 문수의 어린 시절 얘기를 꺼낸다. “여동생이 태어났지만 키울 수가 없어 외국에 입양을 보내게 되자 엄마는 매일 소년에게 아버지 욕을 하죠. 귀에 딱지가 앉도록. 몸이 커갈수록 사회가 어떻게 흘러가는지 대충 알게 된 소년은 적당히 머리를 굽실대며 어른이 되죠. 정확히 말하면 신발가게 점원. 정에 늘 굶주렸던 그였기에 여자들과의 관계에서 절제란 걸 몰라요.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거죠.” 문수를 설명하는 그의 얼굴에는 짐작 같은 건 없어 보였다. 그는 ‘아마 이랬을 것이다’ 대신 ‘이를테면’, ‘그게 정확히 어떤 거냐 하면’이라는 표현을 썼다.

사정은 달랐지만, 장혁도 아버지 없는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래서인지 문수를 설명해내는 그에게선 자신감마저 엿보였다. 사우디 건설 현장에서 십년 가까이 일했던 아버지는, 일년에 고작 보름 정도만 가족을 만나러왔다. 그날은 그에게 크리스마스였다. 아버지라는 선물을 받을 수 있는. 초등학교에 막 들어가면서 헤어졌던 아버지와는 열여덟살에 온전한 해후를 했다. 그때 장혁은 사회체육학과 입시를 위해 기계체조와 육상을 하고 있었다. 아버지는 아들의 꿈이 생소했다. 드문드문 만나는 부자는 서로의 큼지막한 부분들에 대해서만 기억할 뿐 그 안에 들어 있는 자잘한 생활은 알지 못했다. 미래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아버지의 말 한마디에 장혁은 간단히 꿈을 접었다. 대신 남은 1년 동안 미대 입시를 준비했다. 줄리앙까지였다. 동적인 것에 익숙하던 몸이 정적인 고요함에 부작용을 일으킨 게. ‘뚝.’ 온몸에서 들려오는 비명에 들고 있던 연필이 부러졌다. 모든 것은 예정된 대로 흘렀다. 한치의 착오없는 몸 동작(기계체조)과 격렬한 한판 승부(육상), 자유로운 창작 의지(미술)를 차례로 경험한 그는 이제 자연스레 연기를 택한다. 경성대 방송연예과와 서울예대 영화과를 거쳐 96년 sbs드라마 <모델>로 첫 현장 경험을 한다. 그 무대는 그의 연기 인생에 ‘한컷’에 대한 욕심을 불어넣었다. “한컷에 단독으로 등장한다는 게 무명인 제겐 최고의 순간이었어요. 그 한컷을 위해 열심히 준비를 했건만 날아가버릴 때도 많았죠. 그게 얼마나 서럽던지.”

그는 한국 영화계에 50대 배우가 있냐고 묻는다. 단지 존재하는 게 아니라 관객의 신뢰를 받고, 여전히 그가 해내는 연기가 호기심을 자아내는지 묻는다. 오랜 시간 연기했지만 고정된 이미지를 가지지 않고, 시간이 흘러도 관객이 그를 여전히 무대 위로 호출하며, 그가 이번엔 어떤 모습으로 다가올까 하는 궁금증을 자아내는 50대 중견배우는 장혁이 지나가고픈 정거장 중 하나다. 그는 남자가 멋있어지기 시작하는 나이가 마흔부터라고 말한다. 그럼 배우는? “캐릭터가 아닌 사람일 때 배우는 빛나죠. 극 안에서 사람을 발견하는 순간 관객은 감동과 재미를 느끼거든요. 배우가 극 안에서 사람일 때란 진심이 담긴 감성 연기를 할 때라고 봐요.” 그래서 그는 지금에 와서 <짱>의 연기를 다시 하라고 하면 못할 것 같단다. 그때 느꼈던 감성, 순간의 진심을 이제 와 반복하기는 힘들다는 의미다. “부족하다고 느낄 때는 많죠. 하지만 후회는 없어요. 매 순간 극에 몰입하려고 애를 쓰면서 스스로에게 거짓말쟁이가 되지 않으려고 해요. 지금 느끼는 게 진짜고, 진짜로 느끼지 않으면 연기하지 못하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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