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매트릭스3 레볼루션> 세계 첫 시사회에 다녀오다 [2]
2003-10-31
글 : 이성욱 (<팝툰> 편집장)

포스트 휴먼의 미래는 무엇인가

철학하는 액션블록버스터라고는 하지만 한낱 SF 오락물에 일희일비하는 건 코미디일 수 있다. 이야기의 전제가 허무맹랑하다면 더욱 그렇다. 미국의 석학들이 철학, 종교, 과학의 세 측면에서 <매트릭스> 1편의 화두를 파고드는 <우리는 매트릭스 안에 살고 있다>(Taking The Red Pill, 굿모닝미디어 펴냄)는 그 전제가 충분히 근거있다고 말한다. 선마이크로시스템즈의 설립자이자 Java와 Jini 등을 개발한 빌 조이는 ‘왜 미래는 우리를 필요로 하지 않는가’라는 글에서 유전자 공학, 나노 기술, 로봇 공학의 현재 발전 속도라면 2030년까지 인간과 같은 수준의 능력을 가진 컴퓨터가 가능하리라고 본다. 그 근거가 과학적이나 놀라울 게 없는 이런 예측은 다음과 같은 생각 때문에 그를 근심으로 몰아넣는다. “우리 자신을 단계적으로 로봇 기술로 대체시켜 마침내 우리 의식을 로봇 속에 다운로드시킴으로써 영원히 살게 되리라는” 꿈이 그저 꿈으로 끝나지 않을 것이란 확신이다. 빌 조이는 안절부절못한다. 그와 달리 미래를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레이 커즈윌은 ‘인간과 기계의 병합’이란 글에서 “<매트릭스>의 시나리오를 믿지 않는다”면서도 “앞으로 인간의 사고(思考)는 인간의 사고이거나 인간에 의해 만들어진 기계의 사고 혹은 인간 사고를 다운로드받거나 인간의 뇌를 다시 설계한 기계의 사고, 아니면 오늘날에는 상상할 수 없지만 인간과 기계의 사고 사이의 밀접한 연결로 이루어진 것들 중 하나가 될 것”이라고 단언한다. 다만 그 미래가 부정적이지 않은 건 “사고의 비생물학적 부분 역시 인간의 사고에서 발생하기 때문에 여전히 인간의 사고가 될 것이기 때문”이라는 이유에서다(레이 커즈윌은 맹인을 위한 읽기 기계를 발명했고 9개의 테크놀로지 회사를 운영 중이며 11개의 명예박사학위를 받았다).

우리는 ‘블릿타임’과 ‘버추얼 시네마토그래피’의 현란한 액션에 현혹돼 <매트릭스>가 미래의 현실에 기반한 SF라는 걸 잠시 잊고 있었는지 모른다. <애니매트릭스>에 참여한 애니메이터 피터 정이 <씨네21>과의 인터뷰에서 “워쇼스키 형제의 사무실 책장에는 과학과 컴퓨터 분야의 책들이 유난히 많았다”고 말한 것이 새삼스러워 보이는 건 이런 ‘과학적 예측’들 때문이다. 워쇼스키 형제는 ‘포스트 모던’(현대 이후)이 아니라 ‘포스트 휴먼’(인간 이후)의 미래를 진지하게 검토했을지 모른다. 인간이면서도 인간이 아닌 그 어떤 존재가 세상을 뒤덮는 순간에 대해서. <…레볼루션>에 등장하는 매트릭스의 프로그램 가족이 그런 사례다. 어린 소녀 사티는 프로그램이다. 그의 아빠 라마는 파워 플랜트 시스템 매니저이며, 그의 아내 카마라는 인터액티브 소프트웨어 프로그래머다. 라마는 “예쁜 사티가 너무 사랑스럽다”며 “모든 프로그램은 만들어진 목적을 갖고 있어야 한다. 그게 없으면 삭제된다. 나는 내 딸을 구해달라고 메로빈지언을 찾아갔다”고 한다. 네오는 “난 프로그램이 사랑에 대해 말하는 걸 들어본 적이 없다. 그건 인간의 감정”이라고 의문을 제기하지만, 라마는 “아마 당신이 이곳(모빌 애버뉴)에 있는 이유와 내가 이곳에 있는 이유는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친절하게 말한다. 네오는 사티 가족을 만나고 나서 “내가 뭘 해야 할지 알겠다”며 머신 시티로 향한다.

메시아는 인간의 메시아였을까

워쇼스키 형제는 네오의 메시아 역할에 주목하게 만드는 동시에 그 기대감을 의도적으로 배반한 것인지 모른다. <…리로디드>에서 설계자는 초기의 매트릭스가 너무 완벽했음에도 실패했다고 했다. 그렇다면 매트릭스는 인간에게 현실로의 탈출이라는 환상을 안겨줘 배터리의 수명을 다하도록 ‘네오’라는 창조물을 만들었다는 이야기다. 설계자는 인간의 선택이 1%의 확률 안에서 예측 오차를 일으킬 수 있다며 네오의 ‘엉뚱한’ 선택으로 인류가 멸망해도 “또 다른 대책이 있다”고까지 했다. <…레볼루션>이 남기는 숙제 중에 하나는 ‘코퍼톱’(1편에서 네오는 듀라셀건전지를 지칭하는 이 속어로 잠시 조롱받았다)의 신세를 면하기 힘든 인간들이다. 모피어스는 그들을 가리켜 “노예상태로 정신만을 위한 감옥에서 태어난 거지”라고 하지 않았던가. 혹시 이제 와서 사이퍼의 선택이 틀린 것만은 아니라고 말하는 걸까. 모피어스는 “현실이 뭐지? 현실을 어떻게 정의내리나? 만일 느끼고, 맛보고, 냄새 맡고, 보는 그런 것들을 현실이라고 하는 거라면, 현실은 그저 뇌에서 해석해 받아들인 전기신호에 불과하다”고 했다. 실재가 뇌가 해석하는 전자신호의 문제일 뿐이라면, 가상현실도 현실만큼 실제적이라는 결론도 가능하다. <매트릭스로 철학하기>(슬라보예 지젝 외 지음, 한문화 펴냄)에서 미국 조지아 주립대학의 철학교수 데이비드 웨버먼은 이런 이유로 “이 영화는 은연 중에 사이퍼의 선택이 옳을 수도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솔직히 나는 분별력 있는 유일한 결정은 실재 세계보다 위조된 세계를 선택하는 것이라고 믿는다”고 했다. 도서관과 극장들이 모두 파괴됐고, 하늘은 언제나 잿빛이라는 실재 세계의 현실이 이런 판단을 뒷받침한다. 슬라보예 지젝은 당신이 어떤 관점을 가지고 이 영화를 본다 해도, 그 안에서 자신의 관점에 부합되는 무언가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라고 한다. 그런데 지젝은 이 영화가 제시하는 대안 자체가 일종의 편집증이라고 본다. 유한한 세계가 끝나는 경계 너머 어떤 진정한 현실이 나타날 것이라는 믿음 자체가 이데올로기 아니냐는 것이다.

인간의 ‘자유의지’를 시험하라

<…레볼루션>이 네오에게 끝까지 해결의 열쇠를 쥐어주는 건 모든 게 프로그래밍된 매트릭스와 달리 그에겐 ‘선택’의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사랑’이라는 게 있지만 그건 프로그램도 갖기 시작했다). 네오의 일부를 카피해 그의 ‘네거티브’ 존재가 된 스미스 요원은 네오의 능력이 늘어나는 만큼 폭발적인 힘의 증폭으로 매트릭스를 장악하고 현실 세계까지 위협한다. 스미스 요원이 끝내 이해하지 못하는 게 바로 네오의 ‘선택’이다. <인정사정 볼 것 없다>의 우중 혈투를 떠올리게 하는 클라이맥스에서 스미스 요원은 네오를 압도한다. <…레볼루션>에는 <…리로디드>와 비교해 기나긴 철학적 대사가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스미스 요원이 기진맥진한 네오를 향해 씹어뱉는 듯한 특유의 입담으로 쏟아내는 다음의 대사 정도가 예외적이다(워너는 이 긴 대사를 3편의 마케팅용 티셔츠에 대문짝만하게 인쇄해놓았다).

“왜지? 미스터 앤더슨? 왜 포기하지 않아? 왜 계속 싸우는 거지? 너의 생존보다 더 소중한 게 있어? 그게 도대체 뭐야? 자유? 진실? 평화? 아니면 사랑인가? 환상이야, 미스터 앤더슨. 엉뚱한 인식이야. 나약한 인간의 지성이 의미나 목적이 결여된 존재를 필사적으로 정당화하려고 하지. 그건 일시적인 건조물일 뿐이야. 그런 건 매트릭스만큼이나 인공적이야. 비록 인간의 정신만이 사랑같이 재미없는 것들을 만들어내기는 하지만 말이지. 그걸 직시해야 해 미스터 앤더슨. 바로 지금 말야. 넌 승리할 수 없어. 계속 싸우는 건 쓸데없는 짓이야. 왜지? 미스터 앤더슨? 왜? 왜 그렇게 고집을 피우는 거지?”

프로듀서 조엘 실버 인터뷰

마지막 편은 모든 것을 다 갖고 있다

프로듀서 조엘 실버가 라운드 테이블로 들어오기 직전, 7개국 8명의 기자는 약간 긴장한 채 수다를 떨었다. 그가 얼마나 까다로운 인터뷰 대상인지 서로의 경험을 늘어놓으며, 제대로 된 답변을 들으려면 얼마나 고생스러운지 등등. 누군가 “아, 그 질문은 성질을 건드릴 수 있으니 맨 마지막에 하라”고 했다. 한 기자는 녹음기에 대고 ‘조엘 퍼킹 실버’라고 했지만, 인터뷰는 순조로웠다.

-행복한가, 아니면 속상한가. 약간 상처를 받기도 했지만 난 우리가 이런 논쟁적인 영화를 만들었다는 것이 자랑스럽다. 만족스럽다. 우린 드디어 끝냈다.

=정말로 이제 끝인가. 그렇다. 우리 영화는 이걸로 끝났다. 물론 또 다른 얘기들이 나올 여지도 있고 매트릭스 비디오게임은 다른 식으로 나갈 수도 있겠지만 영화는 이걸로 끝이다.

-TV시리즈로도 안 만들어지나. 그렇다. 안 만들어진다.

=전편과 3편은 어떻게 다르다고 생각하나. 완전히 다른 영화다. 세편 다 전부 다르다. 서로 하는 역할도 다르고 느낌도 다르다. 3편은 일종의 결말이자 혼합이다. 그러므로 아주 모호할 수도 있다. 1, 2편을 보면서 혼란을 느끼고 의문점을 가졌던 사람들이 이 영화를 보면서 그들이 원하는 것들을 찾게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세편 중 어느 편이 가장 맘에 드는가. 마지막 편이 가장 좋다. 가장 격렬하고 가장 흥미롭고 가장 스펙터클하다. 모든 것을 다 갖고 있다.

=당신이 생각하기에 이 영화가 <스타워즈>처럼 어떤 현상 혹은 미래세계를 창조했다고 생각하는가. 영화 속에서 보여지는 건 모두 책에 기초한 거다. 책에 모두 있는 것들이다. 책에서 영감을 얻어 주제를 떠올리고 그것을 쏟아부어 새롭게 창조한 것이다. 영화화하기 위해서 일부 타협한 부분들도 있지만 모두 책에 묘사된 것들이다.

-일반적인 질문인데 캐스팅은 어땠나.

=모피어스를 맡을 배우는 이미 감독들 마음속에 피시번으로 정해져 있었다. 그리고 네오의 배역을 정하기 위해 빅스타들을 많이 만나봤지만, 감독들이 키아누를 만났을 때는 키아누가 그걸 하고 싶어하고 그가 그 역할에 적격이라는 걸 알았다고 한다. 키아누는 영화를 완전히 이해하고 있었고, 그들이 느끼기에 키아누는 네오가 어떤 캐릭터라는 걸 가장 잘 보여줄 수 있을 것 같은 배우였다. 그리고 실제로 영화에서 제대로 됐다. 영화 초반에 키아누는 얼빠진 토머스 앤더슨의 캐릭터를 보여주지만 맨 마지막엔 우리가 그 존재를 믿을 수밖에 없는 네오의 모습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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