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매혹적 액션영화 <킬 빌> 그리고 쿠엔틴 타란티노 [3]
2003-10-31
글 : 김현정 (객원기자)

우마 서먼 포스터 붙여놓고 ‘아~뵤’

도쿄에서 만난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

쿠엔틴 타란티노는 헐렁한 검은 티셔츠와 검은 반바지 차림으로 나타났다.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탔던, 어느덧 불혹에 이른 감독에게는 어울리지 않을 수도 있었지만, 타란티노는 함부로 입은 듯한 그대로가 편안해 보였다. 인터뷰도 비슷했다. 그는 질문이 무엇이었는지 잊어버릴 정도로 길고도 분방한, 가끔은 어긋나기도 하는 답변을 수다스럽게 늘어놓았다. <킬 빌>이 그의 어떤 영화보다도 흥행에 크게 성공했다 하더라도 그저 영화광처럼 느껴지는 그 모습이 변할까 싶었다. 영화 만드는 일을 ‘모험’(adventure)이라고 표현한 타란티노는 영화 한편이 인기를 얻었다고 해서 그 모험을 포기할 생각은 조금도 없다고 말했다.

-<킬 빌> 1편은 브라이드와 오렌, 두 여전사를 중심으로 내세운다. 미국 액션영화로서는 드문 경우인데, 어떻게 이런 착상을 하게 됐는가.

=나는 일본영화와 홍콩영화를 무척 좋아하고 많이 보기도 했다. 쇼 브러더스가 제작한 쿵후영화나 일본 사무라이영화는 여성에게 비중있는 역할을 부여하는 경우가 많다. 여전사는 미국에선 낯선 개념이지만, 동양에선 하나의 전통으로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나는 내가 좋아한 그런 부분들을, 여전사가 존재하지 않는 미국영화에 가져오고 싶었다. 또 하나 이유가 있다면 내가 여성을 좋아하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여성에게 힘을 부여하는 영화, 그들에게 영감을 주는 영화를 만들고자 했다. 열서너살 먹은 소녀들이, 남자아이들이 슈퍼히어로 포스터를 벽에 붙여놓듯, 우마 서먼의 포스터를 붙여놓고 저렇게 강한 여자가 됐으면 하고 꿈꿀 수 있도록 말이다. 우마 서먼이나 루시 리우, 구리야마 치아키(오렌의 소녀 보디가드 고고)는 그 아이들에게 쿨한 모범으로 보이게 될 것이다.


-당신은 <킬 빌>을 올해 1월 타계한 후카사쿠 긴지 감독에게 바쳤다. <의리 없는 전쟁> <배틀로얄> 등을 포함하는 그의 영화는 당신에게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가.

=1992년 <저수지의 개들>을 홍보하기 위해 일본에 왔을 때 후카사쿠를 처음으로 만났다. 얼마나 큰 행운이었겠는가. 그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감독이었다. 그런데 막 갱스터영화를 만든 젊은 감독이 나이든 거장을 만나 질문을 퍼부을 수 있었다니! 그뒤 후카사쿠와 나는 12년 가까이 우정을 유지해왔다. 우리는 내가 일본에 올 때마다, 혹은 후카사쿠가 LA에 올 때마다 만났고, 소니 치바와 셋이서 팜스프링스에서 주말을 보낸 적도 있다. 그 무렵 후카사쿠는 미국에 거의 알려지지 않았었다. 하지만 나는 아시아영화들의 영향을 받아 <저수지의 개들>을 만들었고, 그건 조금도 고치지 않고 홍콩영화라고 소개해도 누구나 믿을 만한 영화였다. <저수지의 개들>에는 다카쿠라 겐이나 소니 치바가 출연한 야쿠자영화의 흔적도 있었는데, 후카사쿠 긴지가 바로 일본 야쿠자영화와 그 스타일에 중요한 영향을 끼친 감독이었다. 지금은 시네마테크들이 후카사쿠 긴지의 영화를 발견해서 미국에 소개하고 있다.

-<킬 빌> 역시 후카사쿠 긴지의 그늘 아래 있는 영화인가.

=영화를 봐서 알겠지만, <킬 빌>은 부모라고 부를 만한 영화목록이 무척 길다. (웃음) 후카사쿠 긴지의 <검은 도마뱀>은 오렌의 캐릭터를 만들면서 참고한 영화이고 액션장면을 연출하는 데도 도움이 됐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영화는 <배틀로얄>이었다. <배틀로얄>은 최근 5년 동안 나온 영화들 중에서 최고의 걸작이라고 부를 만하다. 나는 <배틀로얄>을 보면서 <킬 빌>을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했다. 특정한 장면이나 캐릭터를 인용한 건 아니고, 영감을 받았다고 표현하는 게 정확하겠다. 후카사쿠는 프리 프로덕션 과정에 관여하기도 했다. 그는 내가 건네준 시나리오를 읽고 코멘트를 달아주었고, 기술적인 부분, 특히 프로덕션디자인과 코스튬디자인에 대해 많은 조언을 해주었다. 구리야마 치아키를 소개해준 사람도 후카사쿠였다. 지금 이렇게 일본에 왔는데, 후카사쿠는 세상을 떠나 이 영화를 보지 못한다는 사실이 너무도 슬프다.


-일본과 홍콩의 액션영화는 서로 스타일이 다르다. 자신이 좋아하는 장르의 영화들을 어떤 식으로 <킬 빌>에 담았는가.

=미국에서는 홍콩 쿵후영화를 올드스쿨 쿵후라고 부른다. 언뜻 보기에 사무라이영화와 비슷한 것 같지만, 이 두 장르는 서로 상당히 다르다. 그래서 나는 <킬 빌>을 만들면서 균형을 잡아야 한다는 사실을 항상 염두에 두었다. 동전을 던지면 앞면과 뒷면이 교차하지 않는가. 그처럼 코미디와 드라마를 섞고 여러 가지 스타일을 적용하고 다양한 감정을 녹이고 싶었다. 예를 들면, 홍콩 쿵후영화는 전투장면나 엔딩신이 너무 길어서 처지는 실수를 하곤 한다. 청엽옥 전투는 그런 단점을 보완해 다양한 스타일과 비주얼을 섞은 장면이었다. 브라이드는 제일 먼저 오렌의 부하들인 ‘죽음의 88인회’와 사무라이 스타일로 싸우고, 고고와는 재패니메이션 스타일로 싸운다. 그 다음은 100여명의 야쿠자와 브라이드가 맞붙는 장면이다. 100 대 1의 싸움은 쇼 브러더스의 전매특허나 마찬가지라서 그 스타일로 찍었지만, 청엽옥이 일본 건물인 탓에 일본적인 비주얼과 조화를 이루는 문제가 중요했다. 마지막 눈내린 정원에서 오렌과 단둘이 벌이는 결투는 고전적인 사무라이영화 스타일에 동화적인 분위기를 더했고 세르지오 레오네의 마카로니 웨스턴을 섞었다.

-오렌의 과거를 애니메이션으로 만든 것도 그런 이유에서인지.

=나는 대단한 애니메이션 팬이다. <킬 빌>은 내 열정에 따라 마음에 드는 영화를 이것저것 넣어보고 싶었다. 큰 냄비에 스튜를 끓이는 것처럼 말이다. 그래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애니메이션인 <공각기동대> <블러드: 더 라스트 뱀파이어>를 제작한 프로덕션 I. G.를 찾아갔다. 나는 그림을 그릴 줄 모르니까 시나리오를 주고 한컷 한컷 설명하면 그들이 캐릭터와 콘티를 그리는 식으로 일했다.


2편에는 한국인 캐릭터도 등장

-<킬 빌>은 당신의 영화 중에서 개봉 주말 성적이 가장 좋았다. 폭력의 수위가 높아서 R등급까지 받았는데, 관객이 <킬 빌>의 어떤 점을 좋아했을까.

=미국 관객은 <킬 빌>처럼 와일드하고 동양적인 정서를 가진 액션영화를 접해본 적이 없다. 미국 언론은 이 영화를 센세이션으로 받아들이기까지 했다. 낯선 액션 스타일이지만, 미국적인 감각으로 소화했기 때문에 흥행에 성공한 것 같다. 재미있게도 <킬 빌>은 첫주 관객의 40%가 여성이었다. 미국 여성 관객은 폭력적인 영화를 즐겨보지 않지만 이번에는 강인한 여전사들에게 끌린 모양이다. <킬 빌>의 여전사들은 전사로서의 신념과 명예를 소중하게 여긴다. 그들은 진정한 전사다. 귀여운 여자들이 나와 몸에 붙는 옷을 입고 키득거리는 <미녀 삼총사>와는 다르다. 아마 아시아에서는 <킬 빌>을 다른 방식으로, 좀더 대중적인 영화로 받아들일 것이다. 아시아는 폭력을 다루는 영화에 익숙하고, 명예를 중시하는 전사들의 전통도 있기 때문이다. 동양과 서양의 시각 차이를 드러내는 재미있는 예가 하나 있다. <저수지의 개들>에서 위장수사 중이었던 형사 팀 로스는 경찰이 습격하기 전에 조직의 일원인 하비 카이틀에게 자신의 신분을 고백한다. 그는 그럴 수밖에 없었다. 하비 카이틀은 그를 선의와 명예로 대했기 때문이다. 서구 관객은 “왜 그가 그런 행동을 한 거죠? 그런 말을 뭐하러 한 거죠?”라고 묻곤 했지만, 아시아에선 누구도 그런 걸 궁금해하지 않았다.

-당신은 동양의 액션영화에 관심이 많다. 혹시 한국 액션영화도 본 적이 있는가.

=정창화 감독의 <죽음의 다섯손가락>은 미국에서 처음 개봉한 쿵후영화 중 하나였다. 그는 내가 좋아하는 감독 중 한명이다. 하지만 내가 좀더 좋아하는 한국 감독은 황풍(타란티노는 ‘홍펭’이라고 발음했지만, 황풍은 왕펑이라는 광둥어 이름 혹은 황펑이라는 만다린 이름으로 활동했다)이다. 황풍은 골든하베스트 소속이었던 여배우 모영(1970년대에 주로 활동했고 무술 실력이 뛰어났던 여배우. 이소룡의 <용쟁호투>, 정창화 감독의 <파계> 등에 출연했다)과 자주 일하면서 <태권진구주> <철장선풍퇴> 같은 액션영화들을 찍었다. 내용은 주로 일제 식민지 시기 한국에서 중국인과 한국인들이 함께 일본에 저항하는 이야기였다. 흥미로운 사실은 홍콩 액션영화에 중요한 영향을 끼친 황풍이 한국인이었다는 사실이다. 이건 70년대 미국영화에서 가장 뛰어난 감독이 흑인이었다는 이야기나 마찬가지다. 물론 그런 흑인 감독은 없었다.

-당신은 우마 서먼이 출산할 때까지 기다려서 <킬 빌>을 찍었다. 서먼은 당신에게 매우 중요한 존재처럼 보인다. 그녀는 U라는 이니셜로 <킬 빌>의 캐릭터 작가 역할을 하기도 했다.

=우마 서먼과 나는 친밀하고 다정한 사이다. 말로 설명하긴 힘들지만, 내가 그녀를 깊이 이해하고 있다고 할 수 있을 거다. 우마 서먼은 <킬 빌>을 촬영하면서 이런 이야기를 했다. 다른 영화를 찍을 때도 비슷한 과정을 거치고 비슷한 노력을 기울이는데, 왜 당신 영화에 나오면 내가 더 연기를 잘하는 것처럼 보이고 더 나아보일까라고. 나는 내가 당신을 이해하기 때문이라고 말해 주었다.

-<킬 빌> 홍보를 위해 한국을 방문하려던 계획이 취소됐다. 혹시 2편이 개봉하면 한국에서 당신을 만날 수 있을까.

=아직 2편을 완성하지 못해 한국에 갈 수 없었다. LA로 돌아가서 후반작업을 해야 하니까. 지금도 장담할 수는 없지만 <펄프 픽션>이 가장 먼저 개봉한 나라 중 하나였던 한국에 꼭 가고 싶다. <킬 빌> vol.2에는 LA의 코리아타운도 나오고 중요한 한국인 캐릭터도 등장할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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