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매혹적 액션영화 <킬 빌> 그리고 쿠엔틴 타란티노 [2]
2003-10-31
글 : 김현정 (객원기자)

“기모노 의상 제 고집이었죠”

도쿄에서 만난 이시이 오렌 역의 루시 리우

<타임>은 “<킬 빌>은 이시이 오렌에 관한 영화가 될 수도 있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열한살 나이에 부모를 죽인 남자의 배를 가른 오렌은 그만큼 매력적인 캐릭터지만, 눈밭에 선 루시 리우의 차가운 자태가 없었다면 그 매력은 조금 힘을 잃었을지도 모르겠다. <킬 빌>에서 입은 흰 기모노의 안부를 묻는 기자들에게 “세탁소에 가 있답니다. 피가 많이 묻었거든요”라고 농담을 던진 루시 리우는 또박또박하고 진지한 대답들을 들려주었다.

<킬 빌>은 일본 사무라이영화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오렌과 브라이드가 눈쌓인 정원에서 대결하는 장면에도 그 정신이 녹아 있는 것 같은데,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오렌은 검을 뽑기 전에 신발을 벗고 눈을 밟는다. 그것은 일종의 의식, 사무라이 정신이 드러나는 의식이다. 오렌은 브라이드를 동등한 전사로서 존중하고, 그녀의 복수심을 인정한다. 오렌 역시 부모를 살해한 야쿠자에게 복수를 했기 때문이다. 오렌과 브라이드는 같은 조직에 속한 킬러였으므로 서로를 잘 알고 있다. 오렌은 상처를 입은 뒤 “너를 비웃었던 걸 사과한다”라고 말하고, 브라이드는 “그 사과를 받아주마”라고 대답한다. 전사로서의 명예와 자존심이 배어나오는 대화다. <킬 빌>에는 또 하나 중요한 대사가 있다. 오렌은 죽기 직전 “하토리 한조의 검이 맞구나”라고 중얼거린다. 하토리 한조는 검의 명인이다. 오렌은 다른 무엇도 아닌, 명인이 만든 검에 의해 자신이 죽는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쿠엔틴 타란티노와는 처음으로 같이 일했다. 그와 작업한 느낌은 어땠는가.

=타란티노는 열정적인 감독이다. 그는 무술 훈련에도 동참했고, 자신이 좋아하는 걸 직접 보여주려고 애썼다. 그는 또한 배우의 의견을 들어주는 감독이다. 타란티노는 오렌이 남자아이 교복을 입기를 원했다. 하지만 나는 오렌이 여성적으로 보이는 편이 낫겠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기모노를 입어야 한다고 제안했다. 타란티노는 처음엔 거부했지만, 긴 대화를 통해 내 제안을 받아들여주었다. 이건 감독으로선 큰 양보일 수 있다. 나도 고집이 센 편인데 타란티노에게서 열린 마음을 배웠다.

-<킬 빌>에는 오렌의 과거가 담긴 애니메이션이 들어 있다. 그 애니메이션이 연기하는 데 영향을 주었는지.

=오렌은 사악한 여인이지만, 그녀의 과거를 알고 있기 때문에 공감할 수 있었다. 오렌은 어린 시절에 참혹한 일을 겪었다. 그걸 바탕으로 나는 좀더 풍부한 감정을 가진 캐릭터를 구축했고, 관객 역시 그녀를 단지 악마로만 보진 않을 거다.

-<미녀 삼총사> <엑스 vs 세버> 등의 액션영화에서 강한 여성을 많이 연기했다. <킬 빌>과 당신의 전작들이 다른 점이 있다면.

=<페이백> <미녀 삼총사> <엑스 vs 세버>는 재미있고 가족 모두가 즐길 수 있는 영화였다. 하지만 <킬 빌>은 성인을 위한, 액션에 섬세한 감정이 배어 있는 영화다. 머리 꼭대기만 잘리는 장면처럼 코믹한 부분이 있기는 하지만, 명예와 존경, 자긍을 표현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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