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매트릭스> 3부작 메가토크 [2] - 류승완이 말한다
2003-11-14
매트릭스의 액션, 무엇이 특별했나

매트릭스에서 쿵후(功夫)하기

20세기 말에 등장해 요란하게 세기를 이어온 <매트릭스>. 암울한 SF영화이자 철학적 논란까지 일으키는 이 거대한 영화를 구성하고 있는 액션장면의 가장 큰 특징은 적극적으로 ‘쿵후’를 활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예전에도 무수히 많은 미국영화에서 쿵후 파이터들을 볼 수 있었으며, 서양인들이 보기엔 별 차이없는 동양 무술을 소재로 한 영화들이 비디오 가게 진열장 한벽을 다 차지하고 있다. 하지만 <매트릭스> 이전까지는 ‘쿵후’가 할리우드 주류영화를 이끌 것이라고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다. 이런 풍토 속에서 탄생한 <매트릭스>가 새로웠던 점은 할리우드의 누구도 진지하게 접근하지 않았던 ‘쿵후’의 세계를 그들과 다르게 접근했다는 것이다. 그저 운동 좀 했다고 설치는 배우들 몇명 데려다가 카메라 앞에서 펼쳐놓고 좋은 동작들 몇개 건지면 그만인 그런 게 아니었다. <매트릭스>를 보고 있노라면 감독이 얼마나 ‘쿵후’의 세계에 심오하게 심취되어 있었는지가 느껴진다.

할리우드의 카메라로 찍은 홍콩의 쿵후


이번에 개봉된 <매트릭스3 레볼루션>을 마지막으로 3부작의 마침표를 찍게 된 이 거대 시리즈에 사용된 ‘쿵후’ 테크닉은 매번 다른 형식으로 펼쳐지기보다 1편에서 펼쳐진 테크닉을 원형으로 2편과 3편을 거치며 확장 혹은 반복해가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매트릭스>에서 처음 등장하는 액션신은 트리니티가 자신들을 둘러싼 경찰들에 반격을 가하고 탈출하는 장면이다. 여기서 제작진이 “더블 이글”이라고 명명한 트리니티의 유명한 점프 킥 장면이 펼쳐지는데, 이것은 마치 무협세계에서 내려오는 ‘공중부양’의 이미지를 구체화한 것처럼 느껴진다. 수백대의 스틸 카메라를 설치해 신체동작의 가장 아름다운 지점을 포착한 뒤 정지된 이미지를 360도 원형으로 돌려가며 표현한 이 장면은 <매트릭스>의 액션설계 방향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이다. 이 장면에서 보여진 트리니티의 자세는 사실 60년대 홍콩 무협에서 수도 없이 연출되었던 동작이다. 하지만 이 장면이 새롭게 느껴지는 이유는 동작을 바라보는 시선과 기술력 때문일 것이다. 홍콩에서 초빙된 무술감독이 연출한 동작을 재패니메이션 세례를 받은 감독의 상상력으로 콘티뉴이티를 구성하고, 할리우드의 기술력으로 잡아낸 이 장면은 <매트릭스>의 액션은 바로 이런 것이라고 말한다. 세기말에 태어나 세기를 이어가는 역사적인 시리즈의 시작은 말 그대로 글로벌하게 시작하는 것이다. 이 동작은 2편과 3편에서도 반복적으로 등장하지만, 모두 다른 방식으로 촬영되어 보여진다. 동양의 정신이 서양의 기술력과 만나는 역사적인 사건이 이렇게 벌어진 것이다.

서양인에 맞춘 동작 디자인


두 번째로 인상적인 장면은 네오가 <매트릭스>의 세계를 인정하고 태권도에서부터 취권에 이르는 각종 무술을 입력받은 뒤 모피어스와 도장에서 대련하는 장면이다. 전통적인 무술의 세계에서 수련의 과정을 결과보다 중요시한다는 것은 익히 알려진 상식이다. 그런데 <매트릭스>의 세계에서는 이 과정을 그저 키보드판을 몇번 누르는 것으로 뛰어넘는다. 왜냐고? 어차피 <매트릭스>의 세계는 정보로 이뤄진 체계일 뿐이니까. 그런데 재밌는 점 한 가지가 발견된다. 장이모의 최근작 <영웅>을 보면 이연걸과 견자단이 서로의 검세를 보고 상대가 펼칠 수를 읽으며 마음으로 대결을 펼치는 장면이 나온다. 이 두편의 영화가 보여주는 무(武)의 세계는 머릿속에 입력된 정보 체계이건 마음의 움직임이건 간에 육체를 앞서는 무언가가 인간을 지배하고 있다는 것이다. 도장 대련장면에서 또 하나 중요한 것은 네오와 모피어스의 육체가 충돌하는 합의 구성이다.

기본적으로 서양인의 신체구조는 동양 무술을 하기에 적합한 체형이 아니다. 특히 곡선의 움직임을 많이 활용하는 중국 권법들의 경우 아주 정교한 손가락 하나의 움직임까지도 전체 자세에 영향을 주게 마련인데, 브루스 리의 호쾌한 발차기를 동양 무술의 전부라고 생각해오던 서양인들에게 배우기도 어렵고 직접 수를 펼치기에는 더욱 까다로운 중국 권법의 수기 합들은 아예 고려대상에서 제외되어오던 항목이었을 것이다. 이런 까닭에 미국의 무술영화들은 속도나 리듬을 포기하고 오로지 큰 동작을 펼치는 방식으로 만들어져왔다(장 클로드 반담이 맞는 사람 기다리는 것도 힘든데 기어이 점프해 다리를 쫙 찢으며 회축을 날리는 장면을 생각해보라!). 원화평은 이런 식의 서구 액션동작 연출에 혁명을 가져왔다. 서양인들의 동작에 손의 움직임을 디자인해 연출함으로써 백인과 흑인이 펼치는 무술장면에 속도와 리듬을 붙인 것이다. 여기에 고속촬영으로 잡아낸 와이어 회전동작들과 인물이 바닥이나 기둥에 부딪혀 충격을 받는 순간 퀵 줌을 해 충격효과를 배가시키는 액션 촬영방식들이 속도에만 의존한 홍콩영화와 다른 무게감을 실어줌으로써 <매트릭스>만의 액션 리듬을 만들어내는 데 성공한다. 이 대결장면의 리듬과 형식은 <매트릭스> 시리즈 전체의 액션장면을 관통한다고도 볼 수 있는데, 이것은 <매트릭스> 시리즈뿐만이 아니라 이후 수많은 할리우드 주류영화에 영향을 끼친다. 이 영향으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은 아마도 성룡 정도가 아닐까 싶다.

신체동작의 반복을 극복하는 공간활용


세 번째로 기억되는 <매트릭스> 액션의 방점은 미술에 찍힌다. 모피어스와 스미스 요원의 화장실 격투, 네오와 모피어스의 지하철 격투, 네오와 트리니티가 습격하는 기관로비 총격전, <매트릭스2 리로디드>에서 메로빈지언의 집에서 펼쳐지는 병장기 결투, <…레볼루션>에서 클럽 결투 등등 <매트릭스> 시리즈의 수많은 액션장면에서 등장하는 공간의 이미지와 활용도는 매우 중요하다. <매트릭스> 액션 시퀀스의 배경이 되는 공간들은 크게 두 가지로 기능하는데, 첫 번째로는 순수한 미술적 측면에서 액션의 동선을 화려하게 보여줄 수 있는 공간으로 디자인되어 있는 것이고, 두 번째는 액션의 충격과 힘을 강화하기 위한 재료들로 세팅되어 있다는 것이다.

1편의 기관로비 장면이나 <…레볼루션>의 클럽장면의 경우 격렬한 총격전이 벌어지며 파편들이 사방으로 튀는 고속의 이미지들이 반복되는데, 자세히 보면 그 공간의 크기에 비해 기둥들이 지나치게 많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것은 총격전의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한 기둥의 배치와 파편의 재질에 상당한 공을 들였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또한 <…리로디드>의 메로빈지언 저택 대결장면을 보면 복층으로 되어 있는 구조의 공간에서 병장기 결투를 벌이게 되는데, 와이어를 이용한 신체동작의 한계를 공간을 통해 극복하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사실 이런 복층 미술구조는 홍콩영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들인데, 신체동작이 주는 한계를 공간을 이용해 변주해 새로운 신체동작을 만들어내는 방식이다. 예를 들어 <프로젝트 A>나 <황비홍>처럼 주로 인물의 신체동작을 통해 액션을 이루는 영화의 경우 무수히 많은 동작으로 이뤄진 것 같지만, 사실은 팔다리로 펼칠 수 있는 동작 자체에 한계가 있기 때문에 복층 구조물을 끊임없이 활용해 공간배경을 바꾸며 활동함으로써 동작이 달라 보이게 변주해가는 것이다. 여기에 인물이 타격을 입고 쓰러지는 범위를 특수재질로 마감해 특정범위에 부딪혀 충격을 받는 순간, 그 주변을 부서지게 만듦으로써 타격을 가한 자와 타격을 입은 자 모두 강한 힘을 느끼게 만들고 있다. 이것은 액션의 동선과 미술세팅이 행복하게 결합해 만들어낸 결과라고 볼 수 있다.

3D 기술의 적극적 활용


네 번째로 거론할 만한 것은 디지털 이미지이다. 1편에 나온 스미스 요원의 블러 펀치 장면들을 비롯한 기초 시각효과 장면들은 본격적인 CG기술이 사용되기 전에도 옵티컬 작업을 통해 볼 수 있었지만, <…리로디드>에 등장한 100명의 스미스와 대결을 벌이는 네오의 이미지는 3D 기술의 비약적인 발전이 아니면 불가능했을 장면이었을 것이다. 3D 캐릭터를 가장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는 것은 <…리로디드> 편인데, 표현범위의 한계를 무너뜨린다는 점에서는 기념할 만하지만 아직은 감정표현이나 구체적인 질감이 완벽하게 융화되지 못하고 있어 감정적인 풍부함을 표현하는 데는 실패했다고 생각된다. 과도한 CG 기술과 엄청난 물량공세는 결국 눈과 귀는 즐겁게 하지만 심장을 두근거리게 만드는 데는 성공하지 못한 셈이다.

<매트릭스>로 시작된 철학적인 액션은 <…리로디드>를 거치며 말 그대로 재장전을 하며 규모와 스타일을 점검하는 듯했지만, <…레볼루션>에 이르면 정작 이뤄야 할 혁명에는 실패했다는 인상을 남긴다. 그토록 참신하고 놀랍게 시작된 이들의 출발은 너무 많은 것을 표현하는 과욕과 넘치는 기술력과 자본을 주체하지 못한 채 시리즈가 전개되면서 원형을 극복하기보다는 비대하게 확장만 시키고 말았다. 야심차게 출발했지만 결국 그 모든 것은 욕심이었다….

글: 류승완/ 영화감독

관련 영화

관련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