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차하는 역사와 운명에 관한 영화다”
<라스트 사무라이>의 개봉을 앞두고 LA, 샌타모니카에 위치한 에드워드 즈윅 감독의 영화사를 방문했다. 전원풍의 가구와 책으로 둘러싸인 아담한 사무실에서 <라스타 사무라이>에 이르기까지의 여정을 들어봤다.
-<라스트 사무라이>는 서사극과 영웅의 스토리라는 점에서 전작들의 연장에 있다고 볼 수도 있다. 특별히 이러한 주제에 관심이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 방면에 관해 분명 내가 선구자는 아니다. (웃음) 어릴 적부터 항상 역사에 관심이 많았다. 특히 특별한 역사적 순간을 살았던 개인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들에 끌렸다. 13살 무렵에 <아바리아의 로렌스>를 처음 봤을 때의 감명을 잊을 수 없다. 이후에 1970년대 대학을 다닐 당시, 미국 내에서 막 아시안 문화에 대한 연구가 활발하게 시작되고 있었다. 순전히 학문적인 관심에서 동아시아 문화에 대한 수업도 듣고 역사책도 많이 읽었다. 그리고 구로사와 아키라가 있었다. 구로사와 아키라의 영화를 통해 영화만들기를 배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그의 영화는 내게 큰 영향을 끼쳤다. 이런 점에서 <라스트 사무라이>를 감독하게 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이 영화뿐 아니라 당신의 다른 영화에서도 서로 다른 인종간의 관계에 관심이 많은 것 같다. 소수 인종과 백인과 관계라든가….
=그렇다. 사실 그 문제에 대해서 깊이 생각해본 적은 없는데, 다른 사람들이 지적해줘서 깨달았다. 실제로 얼마 전 누군가가, “당신은 이전엔 미국의 인종 문제- 흑인과 인디언- 에 대한 영화를 만들더니 이젠 아시아인에 대한 영화를 만드는군요”라고 지적하더라. 기본적으로 미국은 이민자들의 나라이다. 내 조부모 역시 이민자들이었다. 그런 연유로 나는 이곳, 미국과 내 가족이 살았던 다른 곳의 연관성을 항상 느낀다. 그렇기에 미국에 대한 영화를 만들려면 반드시 인종에 대한 이야기를 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당신 영화의 주인공들은 대개 남성이다.
=여성을 주인공으로 한 TV물들도 몇편 만들었다. 멕 라이언이 주인공인 <커리지 언더 파이어>는 여성이 주인공이었고, <리빙 노멀>은 여성의 우정에 관한 영화이다.
-그러나 당신 영화의 영웅적인 남성들과 그 여성 캐릭터들은 매우 다르지 않은가.
=그렇다. 사실이다. 언제가 여성이 영웅으로 등장하는 영화를 만들 수도 있겠다.
-영화와 관련해서 영웅이나 영웅주의를 과거 역사의 맥락에서 정의하는 시도가 흥미롭다. 그렇다면 현대적 맥락에서 영웅의 의미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매우 좋은 질문이다. <시지>나 <커리지 언더 파이어>에서 사실 그러한 시도를 했다. <커리지 언더 파이어>는 개인의 행위에 대한 책임을 다룬 영화이다. 개인의 행위의 결과에 대한 신념은 현대 사회에서 점차 사라지고 있는데, 이러한 결과는 20세기의 산물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쾌락만을 추구하는 것 같은 사회에서 금욕적이고 이상을 추구하는 삶을 산다는 것은 더욱 힘들어 보인다. 영웅주의는 어느 정도의 희생을 수반할 수밖에 없다. 현대사회에서는 다수가 동의하는 안락, 타협적인 만족이 좀더 중요해 보인다. 이런 점에서 오늘날 대중문화에서 영웅이 천하무적의 슈퍼영웅과 같은 주로 만화적이고, 상상적 캐릭터로만 표현되는 것이 흥미롭다고 생각한다.